[비트코인 A to Z]
-공급보다 수요가 절대적 영향…‘무역분쟁·경제위기·전쟁’ 불안 커질수록 가격 치솟아
비트코인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사진) 2018년 12월 열린 미중 정상회담/AP연합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암호화폐 가격이 회복세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2017년 고점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두 나라 모두 정정 불안과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예측할 수 없고 심하게 요동치지만 아르헨티나와 수단의 종이돈에 비하면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율이 연 50%가 넘는다. 수단의 비트코인 가격은 고점보다 가격이 두 배가 높다. 수단은 얼마 전 30년 철권통치 독재자가 군부에 의해 축출된 이후 군부와 야당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철권통치가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정국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초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의 평범한 시민들은 그간 인플레이션에 대항해 땀 흘려 얻은 수익을 지킬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평소 달러·금·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경제가 붕괴로 치달으면 정부는 대체로 개인의 소유권을 무시한다. 금융망을 이용해 해외에 송금하거나 입금 받을 수도 없다. 달러를 몸에 지니고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금융망의 도움 없이 입금과 송금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오르는 추세이므로 단순히 가치 저장 수단으로도 정부가 마구 찍어대는 종이돈보다 낫다.

이런 용도에 대해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은 ‘특수한 경우’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비트코인은 특수한 상황에서 항상 그 쓸모를 인정받으면서 성장했다. 키프로스 은행 지급불능, 그리스 국가 부도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짐바브웨의 통화 위기, 베네수엘라 위기, 인도의 화폐개혁에 따른 혼란 등이 비트코인의 수요를 자극했다.

비트코인은 발행량과 유통량이 적다. 이 때문에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에서 수요가 조금만 늘어도 전체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더구나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 상승은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됨에 따라 중국인들의 외환 수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만약 이 분석이 맞아 향후 중국인들이 위안화의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책으로 비트코인을 선택하면 엄청난 가격 상승 압력을 예측할 수 있다.


‘내재 가치’를 인정하고야 만 JP모간

세상은 따분할 때가 별로 없다. 평온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예외적인 경우다. 지구 어디에선가는 정정 불안, 경제 위기, 전쟁 등으로 한 국가나 지역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몰리기 마련이다. 이때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통해서는 정부의 방해를 뚫고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바깥의 안정적인 경제와 연결해 줄 수 없었다. 평온한 나라의 국민에게 비트코인은 한낱 투기 수단이거나 흥미로운 발명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위기에 처한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삶과 직결되는 심각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금융회사 JP모간의 애널리스트가 비트코인의 내재 가치를 인정하는 분석을 내놓아 화제다. 세계 금융의 주류를 상징하는 이 회사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2년 전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기라고 폄하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2년 동안의 시각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최근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이 비트코인 채굴에 들어가는 전기료와 장비 유지비에 비해 턱없이 비싸기 때문에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하려고 했다. 시장가격과 생산비용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결국 ‘내재 가치’를 인정하고야 만 셈이다. 아무튼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니 결국 0원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완고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전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석이다.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의 가격이 튤립 거품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하곤 한다. 튤립 구근 하나가 마차 몇 대 값에 팔렸다는 최초의 자산 거품 사건이다. 튤립 거품과 비트코인 현상은 차이점이 꽤 많아 두 현상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이 비유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튤립과 비트코인을 가르는 가장 대표적인 요인은 바로 JP모간의 분석가가 제시한 생산비용이다. 튤립 거품의 당사자들은 튤립의 생산비용이 얼마인지 잘 몰랐다. 투르크제국에서 들여온 튤립이 유럽의 습하고 추운 기후에서는 재배하기가 쉽지 않았고 당시 네덜란드의 사치품 수요를 생산이 따라갈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유포됐다. 한 계절만 볼 수 있는 꽃이고 현지 재배가 어렵고 냉장 시설도 없던 시절을 고려할 때 비용 요소만 놓고 보면 튤립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사실 투기적 거품이 일기 전에도 오랫동안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비극은 가격이 폭등하면 장기적으로 생산도 늘어난다는 시장 원리에 있었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기대로 우수한 자원들이 생산에 투입된다. 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나므로 생산비용은 낮아진다. JP모간의 분석대로 생산비용과 간극이 큰 가격은 결국 붕괴하기 마련이다.

완전경쟁 시장에서 가격은 한계비용에 수렴한다는 것은 미시경제학의 공리다. 한계비용은 역사적인 비용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인데 마지막 한 단위를 생산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이 한계비용에 수렴한다는 JP모간의 분석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비트코인 생태계는 이상적인 완전경쟁 시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격증과 같은 진입 장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JP모간이 간과한 것은 비트코인의 한계생산비용은 시장가격에 빠르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 탄력성 때문에 비트코인의 한계생산비용을 추론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글로벌 시장가격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교과서 속 ‘완전경쟁 시장’인 비트코인

어느 가격도 균형가격이 될 수 있다는 이런 특성은 생산량이 늘어나는 대신 생산비용이 올라가는 비트코인 채굴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장난삼아 유휴 설비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채굴업자들은 전기요금과 장비 유지비용을 당시의 시장가격에 코인을 팔아 조달해야 한다. 채굴자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내리면 설비 가동률을 낮춰 비용을 절감하려고 할 것이고 가격이 오르면 가동률을 높이거나 설비를 확장하려고 한다. 채굴은 완전경쟁에 노출돼 있으므로 시장가격이 한계비용보다 높으면 채굴 경쟁이 심화되고 시장가격이 한계비용보다 낮아지면 경쟁이 완화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비트코인의 총생산량은 변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자산을 분석하는 이들이 비트코인을 괴물처럼 여긴 이유는 자산 가격을 분석할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가격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확장하면 가격이 제로가 될 수도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도약은 마치 자신들에게 분석 도구가 없으므로 비트코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과 같다.

총생산량은 변하지 않고 생산비용만 변하므로 비트코인의 가격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가격에서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가격 변화를 예측하려면 수요에 자극을 주는 사건을 고려하는 것이 생산비용을 따지는 것보다 타당하다. 즉 최근의 가격 상승은 생산 요인이 아니라 경제 불안정에 따른 수요 요인이었다.

비트코인의 용도를 평온한 사회에서의 일상적인 거래에서 찾는 대신 경제 위기를 주목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다. 게다가 국지적인 경제 위기는 일상화돼 있고 지구적 차원의 경제 위기도 주기적이라는 역사적 증거를 애써 무시하고 비트코인을 평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위험하다.

[돋보기] 채굴업자들의 유연성과 생산의 탄력성

채굴은 컴퓨터가 난수를 생성하는 작업에 가깝다. 초당 생성하는 난수가 많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 단위시간당 난수 생성 수를 해시레이트라고 한다. 초당 1테라해시, 즉 1테라해시레이트초의 설비를 운영하는 채굴업자가 하루에 기대하는 수익을 마이닝 수익률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채굴한 비트코인을 바로 달러로 처분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최근 마이닝 수익률은 0.3달러 정도다. 1테라해시초의 설비를 가지고 있다면 0.3달러 내에서 전기료와 설비 유지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3월에는 0.16달러에 머물렀다. 비트코인 가격은 그 사이 두 배가 넘게 올랐으므로 마이닝 수익률은 코인의 시장가격보다 증가가 완만하다. 가격이 오르면 채굴 경쟁이 늘어나므로 난이도가 높아져 테라해시당 채굴 확률이 낮아지는 것만큼 수익률 증가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물론 채굴의 설비 확장이나 축소가 완전히 탄력적인 것은 아니므로 가격이 올라가면 채굴업자의 수익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굴자들은 언제나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유연하게 적응하려고 하는데 이런 채굴업자들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것이 암호화폐들의 마이닝 수익률 수렴 현상이다. 특히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의 마이닝 수익률은 두 코인의 가격 차이와 무관하게 언제나 일치한다. 채굴자들은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 중에서 수익률이 가장 좋은 코인을 선택해 바로 옮긴다는 의미다. 사실상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이 한계비용과 일치한다고 여길 수 있는 실증적 근거다.
비트코인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글 =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6호(2019.05.27 ~ 2019.06.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