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제인스빌 이야기’의 저자 에이미 골드스타인…GM 공장 폐쇄 이후 변화 추적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2018년 5월31일, 군산 GM공장이 문을 닫은 지 꼭 일 년이 지났다.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가동이 중단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또 다시 한국 GM의 군산 공장이 문을 닫으며, 군산의 지역 경제는 한순간에 위기를 맞았다. GM 군산 공장에서 일하던 2000여명을 포함해 부품·협력 업체까지 대략 1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의 위기에 처했다. GM공장 페쇄 이후 감소한 군산지역의 총생산액만 2조3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군산뿐만이 아니다. 창원, 울산 등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중공업도시들의 위기와 함께 ‘한국판 러스트벨트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자주 언급되는 책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공업지대의 실상을 담아낸 ‘제인스빌 이야기’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깊게 관심을 두고 읽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제인스빌이라는 우리에게 낯선 미국의 중공업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군산을 포함한 국내에서는 ‘이제 막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인구 6만3000명의 도시 제인스빌은 세계 1차 대전 이후 1910년대부터 가동되던 ‘가장 오래된 GM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이다. 이곳 주민들 대다수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식 대까지 2~3대에 걸쳐 GM공장에서 일을 하며 꽤 괜찮은 월급을 받고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꾸려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이 지역을 집중 취재한 이 책의 저자 에이미 골드스타인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5년 후에도 불면증 호소…실직자들의 감정적 상처 살펴야”

-미국의 수많은 러스트벨트 지역들 가운데 ‘제인스빌’을 당시 미국 중산층들의 삶을 대변하는 지역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실직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는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이 사람들의 삶에, 그들의 가족에게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제인스빌에서는 2008년과 2009년 사이에만 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제인스빌은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러스트벨트’에 한번도 포함된 적이 없던 곳입니다. 그 이전부터 경제적으로 조금씩 쇠퇴해 오던 다른 러스트벨트 지역과 달리, 오롯이 금융위기와 같은 암울한 시대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겁니다. 무엇보다 당시 제인스빌의 실직 형태는 당시 미국 전역에 나타나는 실직의 패턴과 맞아떨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008년 제인스빌의 GM공장 폐쇄 이후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조치는 무엇이었나요.
“제인스빌의 GM공장 폐쇄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제인스빌 시, 지역의 자동차노조, 위스콘신 주 정부, 그리고 폴 라이언과 같은 연방정부 인사들은 모두 힘을 합해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GM의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매우 애를 썼습니다. 시에서는 GM공장을 되살리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고, 주 정부에서도 GM(제너럴 모터스)에 당시로서는 기록적일만큼 큰 금액의 인센티브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죠. 당시 GM은 제인스빌 보다 5배나 더 많은 인센티브를 약속한 미시건 지역에 새로운 소형차 생산을 위한 공장을 열기로 결정했었죠.”
“5년 후에도 불면증 호소…실직자들의 감정적 상처 살펴야”
제인스빌 GM공장 폐쇄 후 근로자들의 상당수는 다른 지역의 GM공장에서 일을하는 ‘GM집시’의 삶을 택했다. 초창기, 이들 대부분은 지역 대학과 연계한 직업 전환 교육 등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뒀다. 이를 통해 다른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뿐더러, 어차피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GM공장에서 일하는 것만큼의 임금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가족의 품을 떠나 단칸방 등에서 생활하며, 주말이면 4~5시간씩 도로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갔다.
-GM공장의 폐쇄는 GM공장 근로자들의 삶만 바꿔놓은 것이 아닙니다. GM공장 폐쇄 이후 시민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네 맞습니다. GM공장의 폐쇄는 제인스빌 시민들의 삶 전반에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GM공장에서 근무하던 3000명뿐 아니라,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GM공장에 부품을 공급하던 하청업체 등에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예를 들어, GM공장에 차량용 의자를 납품하던 공장은 GM공장이 폐쇄되기 3시간 전 문을 닫고 800명의 직원들이 실직자가 됐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지역의 음식점들과 가게들도 손님을 잃고 문을 닫는 곳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주유소 등에서 일을 해야 했고, 이는 또 다시 기존에 패스트푸드 등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결과를 낳앗습니다.”
-제인스빌은 인근 대학 시설과 연계해 상당히 체계적인 ‘직업 교육 훈련’을 제공했습니다. 이와 같은 직업 교육 훈련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나요. “‘실직’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이들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길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정부와 전문가들 모두 이에 대해 하나의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한 ‘직업 전환 훈련’이죠. 미 정부는 실직자들을 돕기 위해 상당한 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GM공장을 떠난 사람들은 대학에서 ‘형사사법기관 공무원’ ‘용접공’ ‘컴퓨터 전문가’ ‘의학연구소 기술직’ 등의 새로운 직업을 찾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에는 어떻게 컴퓨터를 다뤄야할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상당했으니까요. 이와 함께 그 지역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실질자들 중 직업 훈련을 받은 이들과 아닌 이들에 대한 통계자료 분석을 했습니다. ‘직업 훈련’이 실직 노동자들에게 예전만큼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게 분명한 결론이었습니다. 적어도 경제 침체기에 상대적으로 괜찮은 일자리의 숫자 자체가 줄어들어있는 제인스빌과 같은 상황에서는 ‘직업훈련’의 성과를 얻기가 더욱 힘들었습니다.”

-직업 훈련을 통해 비교적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반대로 ‘자살’과 같은 비극적인 결론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경제 불황으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더 빨리 회복할까,라는 질문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관심이 높아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정확히 떨어지는 하나의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 개개인의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인스빌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도 GM공장을 떠나 직업훈련을 받는 과정에서도 학생으로서 충실하고, 이후 새로운 직업을 받아들이고 비교적 만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현재 그들의 달라진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고해도, 기존과 비교해 매우 낮은 임금 수준에서 다시 출발해야 했습니다. 직장을 잃는다는 건 개인의 인생에 ‘불확실성’과 ‘공포’를 가져오는 큰 사건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냐에 따라 개인들의 삶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5년 후에도 불면증 호소…실직자들의 감정적 상처 살펴야”
GM공장 폐쇄 후 5년, 제인스빌은 ‘두 개의 세상’으로 나뉜다. 지역 내의 대표적인 금융기관과 기업을 이끄는 CEO들은 지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지역 경제는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충분히 않은 급여의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낙관론'은 그저 '있는 자들의 사치'일뿐이다.
-제인스빌은 역사적으로 ‘할 수 있다(Can-do spirit)’을 지닌 근로자들이 성공의 터전을 닦아왔던 도시입니다. 제인스빌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박혀 있던 ‘낙관론’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제인스빌이라는 지역을 알아가면서 놀라웠던 건 바로 이 지역에 흐르는 낙관론과 회복력입니다. 제인스빌이 경제적으로 성장해 온 역사를 보면 두명의 걸출한 지역 출신 사업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만년필 회사인 ‘파커 펜’을 키워낸 조지 S.파커와 GM이 제인스빌에 공장을 짓도록 만든 조지프 크레이그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제인스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GM공장 폐쇄 이후에도 오랫동안 제인스빌의 노동자들이 GM공장 폐쇄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GM공장을 다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데는 이와 같은 ‘할 수 있다’ 정신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GM공장 폐쇄 후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도 ‘낙관론의 격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표현돼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전역에서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됐습니다. 제인스빌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제인스빌에서는 지역 기업과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록 카운티 5.0’이라는 조직이 설립됐습니다. 제인스빌 지역에 일자리를 되찾고 더 많은 기업가들이 제인스빌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한 역할을 맡았죠. 이들 지역의 리더들은 도시의 회생을 위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왜 희망이 필요한지와 같은 칼럼을 써서 지역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메시지는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제인스빌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돋우는 결과를 낳고 말죠. GM공장의 폐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경제 상황에 대한 ‘체감’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제인스빌의 GM공장 폐쇄 이후 5년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감정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설문결과가 나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전역에 걸쳐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통계상으로는 아주 천천히 상당수의 일자리들이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낮은 임금의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제인스빌의 3가족 중 1가족은 GM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식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중 상당수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면증을 겪고 있으며, 가족들과 말다툼이 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었다는 수치심으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지장을 받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겁니다. 당시 제인스빌에서는 수천 명이 동시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실직자들에게 이와 같은 경험은 매우 개인적인 것입니다. 수천명이 동시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 개인의 수치심을 적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GM공장의 폐쇄 이후 제인스빌에 나타난 모습들을 단지 ‘사회적인 현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