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주요 자산 하락 속 나 홀로 상승…‘체계적 위험’ 회피하는 기관투자가에 매력
비트코인을 규정하는 또 다른 단어 ‘비상관 자산’
(사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 AP연합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2018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크립토애셋들이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에 주류가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암시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금융권과 규제 당국자들이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기술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에서 주류 중의 주류에 해당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비트코인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물론 ‘비트코인은 사기’라는 주장도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거품은 꺼지고 가격은 언젠가 0원이 될 것이라는 경고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비트코인 가격은 장기적 상승 추세를 재확인해 줬다.

게다가 4월과 5월에 걸쳐 진행된 가격 회복은 특별한 이유로 미국 월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 세계 주요 자산들이 하락하고 있는 와중에 비트코인의 가격은 올랐다. 혹자들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에 따라 중국인들이 자산을 해외로 반출하려는 용도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자금 유입 경로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 흐름이 중요한 것은 이 상승이 조만간 불어 닥칠지도 모를 거대한 상승의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난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많은 형태의 크립토애셋을 쏟아내고 있다. 채권·주식·부동산 등 전통적인 투자자산들과 유사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자산을 어떤 유형으로 규정하고 어떤 기법으로 분석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면이 오히려 전통적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다.



◆연금·퇴직금 관리는 ‘셈법’ 달라야

거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은 ‘비상관 자산(uncorrelated asset)’을 찾는다. 체계적인 위험(systemic risk)을 헤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고정된 가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비교할 수 있는 표준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이데아’일 뿐이다. 로마시대 때 비숙련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오늘날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과 비교해 당시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를 어림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비숙련 노동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자본재를 활용하는 오늘날의 생산성과 로마시대 생산성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추정은 제한적인 쓸모밖에는 없다. 사실 한 시대 내에서 20~30년 전의 자산 가치를 현재의 자산과 비교하는 것도 벅찬 일이다. 널리 사용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지표도 통계청이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소비 바구니의 품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정된 기준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자산의 가치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과업이다. 화폐나 화폐에 준하는 자산에 묶어 놓는다고 해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한 사람이 먹고사는 정도 수준이 아니라 한 세대의 저축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금이나 퇴직금을 관리하는 이들의 셈법은 독특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투자를 시도해야 한다. 이때 무조건 많이 오르는 자산만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격 변동과 위험이 제각각일수록 자산의 가치를 지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포트폴리오는 변화무쌍하고 확고한 기준이 없는 가치의 세계에서 거대 자산을 지키는 최선책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자산들은 속도만 다를 뿐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다양한 와이너리에 투자하면 특정 와이너리에서 생기는 의외의 사건들로부터 자산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와인 자체에 대한 소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에는 대비할 수 없다. 특정 와이너리에 대한 선호 변화에 따른 위험을 비체계적 위험이라고 하고 이는 여러 와이너리에 투자하는 것으로 수학적으로는 없앨 수 있는 위험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와인 자체를 멀리하는 파도를 헤쳐 나가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이를 체계적 위험이라고 하고 포트폴리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가르친다.

일반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주식과 채권이 상보적이지만 경제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사건이라면 주식과 채권 포트폴리오는 의미가 없다. 둘 다 폭락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부분의 자산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거시 경제지표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자산이 존재한다면 기관투자가들은 이런 자산을 일부 확보함으로써 ‘블랙 스완’ 사태에 대비하고 자산의 전체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사실상 달러와 같은 미국 재무부 채권이나 금이 기관투자가들이 고려해 온 ‘비상관 자산’이다

비트코인이 비상관 자산으로서 전통적인 투자에서 오는 위험을 어느 정도 헤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새롭지 않다. 국내에도 번역 출판된 서적 ‘크립토애셋’의 저자들은 과거의 통계를 가지고 비트코인의 헤지 능력을 실증했다. 10만 달러(1억1700만원)를 70%의 주식과 30%의 채권으로 보유하는 유형의 투자자가 단지 1%를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4년 동안 2만 달러를 더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 시뮬레이션은 1년 동안 10배가 넘게 올랐던 2017년의 상승장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위험 대비 수익률을 수치화한 샤프지수로 봤을 때 비트코인은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보상을 제공한다. 같은 기간 페이스북 주식에 비해서도 성적이 좋았다.

이번 비트코인 가격의 회복이 중요한 것은 ‘크립토애셋’ 저자들의 관점이 월가 전체에 전파되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비트코인의 가격이 지난 4~5월처럼 앞으로도 미국의 주요 주식이나 여타의 다른 주요 자산과 반대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다른 자산들에게 비슷한 영향을 미치는 거시 경제지표와 무관하게 움직인다면 기관투자가들은 자산의 1% 이상을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투자하려고 할 것이다. 팜비치그룹의 티키 티와리 편집장은 기관투자가들이 자산의 1%를 비트코인에 묻어둔다면 8490억 달러(1000조1200억원)가 새롭게 유입되기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이 35만 달러(4억1200만원)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수치들은 사실 의미가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암호화폐들이 전통적인 자산과 상관없이 움직인다는 사실만큼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을 마약이나 자금 세탁과 연결 지어 생각하던 미국의 금융권에서 비상관 자산이라는 언급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돋보기] 비트코인의 투자위험 회피 능력

비트코인은 5월 한 달 동안 63.1%의 수익을 올렸다. 금이 1.6%, 달러는 0.1%에 불과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마이너스 6.1%, 나스닥 100은 마이너스 7.9%다. 원유(크루드오일)는 마이너스 14.2%다. 그나마 전통적인 자산들 중 선전했다고 하는 일본의 엔화도 2.9%의 수익률에 불과하므로 비트코인에 견줄 만한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안전 자산 혹은 비상관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기관투자가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만약 비트코인을 안전 자산으로 보고 기관투자가들이 자산 포트폴리오에 포함하고 나면 이런 특성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 기관들은 유동성이 뛰어난 비트코인을 처분해 자신의 투자 성적표를 윤색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격 역시 폭락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비트코인 투자자들을 머뭇거리게 할 만한 논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기관투자가들이 비트코인을 충분히 보유해 결과적으로 비트코인도 전통적인 자산에 대세 추종할 수준이 되려면 현재의 비트코인 가격 수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유동성이 뛰어난 반면 공급량은 적다. 발행량 자체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기 보유자들이 단기적인 이익 실현을 위해 매물을 쏟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에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컴퓨터와 함께 버리거나 비밀 키를 망각해 발행량에서 차감해야 할 로스트 코인의 비율 역시 높기 때문에 비트코인은 가격이 오른다고 공급량이 폭증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안전 자산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