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파종하고 수확하는 새로운 농사꾼의 등장…말랑말랑한 과일도 딴다
농사 현장의 차세대 주인공, 농업용 로봇
[한경비즈니스=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지구온난화, 농경지 축소, 고령화에 따른 농촌인구의 감소 등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 농업에서도 스마트 팜과 같은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첨단 농업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로봇이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농업은 수급 양면에서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농업 생산성 감소나 재배 작물의 변화 현상이 많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들에서는 고령화 추세에 따른 농촌인구의 감소세도 진행되고 있다.

건강 지향적 식습관이 확산되는 선진국에서는 과일과 채소 등 고부가 작물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에 따라 전 세계의 농산물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2050년쯤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은 농산물 수요 폭증까지 예상하게 한다.

농업에서는 여건 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조업처럼 첨단 IT를 활용한 자동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농업의 자동화는 유리온실, 스마트 팜 등 농사 현장을 제조업 공장과 유사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성하는 방향뿐만 아니라 노지 농사의 자동화까지 포함한다. 그 과정에서 자동화의 필수 요소인 농업용 로봇의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파종·수확·운반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
농업용 로봇(agriculture robot)은 농작물의 생산·가공·유통 등 전 과정에서 필요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의미한다. 농업용 로봇이 담당할 작업은 농작물의 파종·접목·수확·운반 등 직접 작물을 다루는 것에서부터 농사 과정의 모니터링, 농작물 재배를 지원하는 작업인 제초·방제와 비료·퇴비 살포 등 다양하다. 한 대의 로봇이 다양한 작업을 모두 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는 좋겠지만 기술적으로는 아직 어려운 일이다. 현재 개발되는 농업용 로봇은 모두 제각각 특정 작업에 적합한 구조를 띠고 있다.

농업용 로봇의 종류는 여타 로봇처럼 용도나 작업 내용에 따라 파종용·수확용·운반용·방제용 로봇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농업용 로봇의 또 다른 구분 기준은 투입되는 작업 환경이다. 수확이라는 동일한 작업을 하더라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로봇을 구성하는 기구부·센서 등의 부품과 로봇의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지 농업용 로봇은 상대적으로 대규모 면적의 파종·수확·운반 작업을 주로 수행하게 되므로 대형 로봇이 많은 편이고 노지의 특성상 비바람 등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므로 내구성도 좋아야 한다. 또 한겨울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등 가동률 면에서 계절성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 스마트 팜 등에서 사용될 실내 농업용 로봇은 비교적 소규모 면적에서 딸기 등 과일류와 같은 고부가 작물의 재배에 주로 사용되므로 크기도 소형이고 실내에서 사용되므로 작업의 계절성이 적어 그만큼 가동률도 높은 편이다.

농업의 작업 여건과 작업 공정은 제조업·유통업 등 여타 산업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농업용 로봇은 산업용 로봇이나 여타 서비스 로봇들과 상이한 특성을 지닌다. 첫째, 농업용 로봇은 작동 환경과 작업 대상이 되는 농작물 및 작업 용도에 따라 각각 맞춤화된 기술·부품으로 구성된다. 제조업의 실내 공장과 달리 농업의 작업 환경은 외부 여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노지 농사는 날씨·일조량·온도·습도·바람·토양 등 자연환경의 영향에 그대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반면 비닐하우스·유리온실 등 실내 농업장이 비록 공장보다 덜 정형적이지만 상대적으로 환경적인 요인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동일한 기능을 하는 농업용 로봇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술과 부품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파종이라는 동일한 목적의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이더라도 모내기 로봇에는 진흙탕에서 움직일 수 있는 무한궤도를 달아야 하는 반면 일반 노지용 로봇에는 일반적인 바퀴를 달아도 충분하다. 수확 작업의 경우에도 벼와 밀 등 작고 단단한 곡물을 수확할 때와 딸기와 토마토 등 부피가 크면서도 말랑말랑한 과일을 수확할 때는 각각 다른 로봇 손을 장착한 로봇이 투입돼야 한다. 농작물의 크기와 강도 등 물성에 따라 엔드 이펙터(end effector : 로봇 손)의 구조와 동작 방식이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농업용 로봇에서는 작업 효율 못지않게 안전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농사 현장에서는 로봇이 인간이나 동물과 항상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제조 공장에서는 로봇이 고정된 장소에서만 작업해도 되므로 로봇 전용 공간을 따로 마련하거나 안전 펜스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농업에서는 작물을 가공 처리하는 공정을 제외한 대부분을 로봇의 이동을 수반할 때가 많다. 그래서 로봇 전용 공간을 마련한다거나 로봇을 따라다니면서 안전 펜스를 일일이 이동 설치하는 것이 곤란하다. 따라서 농업용 로봇은 인간이나 동물이 접근하면 동작을 멈추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로봇 자체가 안전을 위한 동작을 취할 수 있는 협동 로봇에 상응하는 수준의 대폭 강화된 안전성을 갖춰야 한다.

셋째, 농업용 로봇은 누구든 쉽고 편리하게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농업용 로봇의 주사용자는 엔지니어나 로봇 전문가가 아닌 일반 농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등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들에서는 고령의 농민이 농업용 로봇을 사용하는 경우를 상정해야 하므로 사용상의 편의성이 농업용 로봇의 사업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농업용 로봇에는 사용자의 정확한 의도를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HRI(Human-Robot Interaction : 인간로봇 상호작용)가 필요하다.

출발점은 농기계의 로봇화
농업용 로봇의 작업은 목표 장소로 이동해 작업 여건과 작물의 상태를 파악한 다음 파종·방제·수확·운반 등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려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동과 관련해서는 위치 인식과 주행 제어 기술이 필요하고 위성항법장치(GPS)와 카메라, 각종 3D 센서 등의 부품이 장착돼야 한다. 또 작물을 다루는 과정에서는 농작물의 크기·형태·색상 등 생육 상태와 작업 전반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3D 카메라, 촉각 센서, 힘 제어 센서 등 각종 센서류와 인공지능(AI)이 필요하다. 직접 농작물을 다루는 과정에는 기구부를 제어하는 힘 제어 센서와 매니퓰레이터, 인간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엔드 이펙터가 동원된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농업 현황에 맞춰 로봇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농업용 로봇의 개발 방향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면모를 보인다. 농경지의 면적이 넓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대규모 경작에 적합한 로봇 개발이 주류를 이룬다. 존 디어(John Deere)나 보쉬(Bosch)와 같은 글로벌 업체들은 대단위로 경작하는 밀·콩 등 곡물류의 파종·수확에 적합한 기능을 갖춘 자사의 대형 트랙터에 GPS와 AI로 구성된 자율주행 모듈을 추가한 로봇화된 트랙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좁은 경작지에서 논농사를 많이 짓는 일본은 중소형 콤바인이나 이앙기 등 논농사용 기계에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한 로봇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과 농업 환경이 유사한 한국에서도 농촌진흥청 등에서 벼농사용 제초 로봇 등을 개발하고 있다.

지역별로 농경지의 면적 등 작업 환경과 주요 농산물이 다르다 보니 국가별로 개발을 서두르는 농업용 로봇의 특징은 상이해 보인다. 하지만 기존에 사용되는 농기계를 로봇화한다는 점에서는 세계 각국이 공통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농사 현장에서 성능이 입증된 기계를 로봇화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직 농업용 로봇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규격화 수준이 높고 육질이 단단해 다루기도 쉬운 벼·밀·옥수수 등 곡물류의 파종·수확·운반과 농약 방제 등 한정된 용도에 그치고 있다. 농산물은 대부분 비정형적인 사물이므로 지금의 로봇 기술로는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딸기·토마토·사과·수박은 모두 과일로 분류되지만 각 종자마다 크기·형태·색상·경도 등이 완전히 다르다. 또 같은 밭에서 자란 딸기들조차 크기와 경도 등이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의 로봇 기술로는 딸기와 토마토 등 말랑말랑한 물체를 손상시키지 않고 잡는 작업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빈 피킹(bin picking) 기술과 AI는 새로운 농업용 로봇의 등장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크기·형태·색상·경도 등 물성이 제각각인 비정형적 사물을 다루는 빈 피킹 기술은 규격화가 힘든 농산물을 다루는 데 필수적이다. 작물의 상태와 작업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시각·촉각·청각 등의 신호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AI도 필요하다.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최근에는 인간처럼 수확할 수 있는 농업용 로봇의 상용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상용화가 발표된 미국 어번던트 로보틱스(Abundant Robotics)의 사과 수확 로봇은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사과의 발육 상태를 점검하고 사과나무와 열매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수확할 수 있도록 진공 흡입식 엔드 이펙터를 장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인간의 손이 다양한 작물을 수확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 농작물 수확의 최종 과정을 담당하는 엔드 이펙터가 인간의 손을 닮을수록 유리한 것이다. 이에 근접한 로봇 손의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영국의 기술 컨설팅 업체인 케임브리지 컨설턴트의 행크(Hank)는 정교한 촉각과 미끄러짐을 감지하는 감각 시스템이 내장된 공압식 손가락을 가진 엔드 이펙터다. 인간의 손을 모방한 행크는 인간의 손가락처럼 물체를 직접 만져 가면서 움켜쥘 위치를 선정하고 사물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적당한 힘을 주다가도 미끄러짐이 감지되면 즉각 손가락에 힘을 더 주는 식으로 작동하므로 기존 로봇 손에 비해 더 많은 종류의 물체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행크의 표면은 실리콘으로 돼 있어 사물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위생적으로도 안전하다. 원래 물류 작업용으로 개발됐지만 비정형 물체를 섬세하게 다루는 데 적격이므로 농업용 로봇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사 현장의 차세대 주인공, 농업용 로봇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