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신재생에너지 활용도 74% 달해…비수기에 낭비되는 전기 활용하는 훌륭한 옵션
비트코인 채굴, 전기와 컴퓨터를 쓰는 ‘전 지구적 게임’
(사진)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장/AP연합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전기를 소모하는 지구적 게임이다. 채굴 혹은 마이닝은 컴퓨터에 일을 시켜 새로운 비트코인을 얻기 위한 작업이지만 시스템적으로는 금고의 외벽을 두껍게 만들어 금고를 깨고 내용물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전기 소모에 의한 작업 증명(PoW) 방식의 독특한 점은 금고 내용물의 가치에 비례해 금고의 외벽이 두꺼워지거나 얇아진다는 점이다. 만약 내용물의 가치가 작다면 금고 자체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압착기로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용물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압착기로는 금고를 파괴할 수 없다.

이 게임의 요지는 내용물의 가치만큼 비용을 들여야 금고를 파괴할 수 있는데다 설사 금고를 파괴하고 내용물을 탈취한다고 해도 그렇게 획득한 내용물의 가치가 폭락할 것이기 때문에 금고를 파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이 수학 문제를 푸는 경연 대회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썩 유용한 설명은 아니다. 채굴자의 컴퓨터는 무작위 숫자를 넣어 게임이 요구하는 값을 우연히 찾는다. 초당 넣는 무작위 수의 개수를 ‘해시레이트’라고 한다. 이 게임이 무한 반복되기 때문에 해시레이트에 비례해 코인을 획득할 수 있다. 해시레이트는 컴퓨터의 성능과 전기 파워에 의해 결정된다. 즉 비트코인 채굴은 전기를 투입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채굴이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해 왔기 때문에 채굴자들은 불법적인 수단도 멀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2016년 중국 안위현에 있는 한 발전소는 생산 전기의 97%가 누전되고 있다고 당국에 신고했다. 인근 지역을 샅샅이 뒤지던 공안은 흰 케이블이 회벽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는데 회벽을 부수자 그 안에 50여 대 이상의 컴퓨터 서버가 채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들어 중국의 한 정부 기관은 최근 비트코인 채굴이 전기를 낭비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공해를 유발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채굴 자체를 불법화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로 전기료 낮출 수 있어

그럼 과연 비트코인 채굴은 얼마의 전기를 소모하고 있을까. 비트코인의 해시레이트는 알려진 값이다. 해시레이트는 지난 10년간 크게 증가했다. 해시레이트의 증가가 바로 전기 소모의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컴퓨터 기술도 발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전기 소모를 추산하기 위해서는 채굴자들이 사용하는 채굴기의 성능으로 해시레이트를 나눠야 한다. 채굴자들이 모두 최신 기기를 사용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했을 때 비트코인은 최소한 36.72TWh를 소모한다(2019년 2월 기준, digiconomist.net). 이 수치를 현실화해 대략 50TWh로 추산한다면 한국 전기 소모량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할수록 더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론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비트코인이 전기를 낭비한다고 비난할 만한 수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채굴업의 속성은 물론 전기 산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다. 전기 산업은 효율성이 생각보다 낮다. 생산하고 바로 버리는 전기가 많다는 뜻이다. 특히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재생에너지일수록 효율이 낮다. 전기를 오래 보관하거나 멀리 보내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엄청난 자본을 투하해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그냥 흘려보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사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설비에서조차 처음 보일러를 데우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에너지 때문에 전기 수요가 없는 시간대에도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소비량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전기 시설은 이상적론에 불과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비트코인 채굴은 궁극적으로 수력·지력·풍력발전소의 경영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발전소는 비수기에 낭비되는 전기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성수기에는 채굴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버리는 전기로 비트코인을 생산해 얻은 수익은 전기료 인상 요인을 제거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기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채굴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코인셰어(Coinshares)는 6월 6일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현황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채굴 중 74%가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며 이 비율은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4배나 높다고 밝혔다. 특히 비트코인 채굴의 50%를 차지하는 중국의 쓰촨성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90%에 달하는 곳이다. 비트코인 채굴이 활발한 곳들은 캐나다 동부와 미국의 북동부, 노르웨이인데 이들 지역의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은 100%에 육박한다. 연구자들은 중국의 채굴자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현상도 발견했다. 중국 남서부 지역에 수량이 풍부한 우기에는 전기 요금이 저렴해지므로 건기에 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신장이나 내몽골지역으로부터 채굴자들이 유입된다는 것이다. 우기의 수량이 풍부해 중국의 남서부 지역에서만 1년에 100TWh가 버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비트코인의 채굴은 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환경론자들과 여론의 눈치를 보는 캐나다의 중앙 정부가 채굴업을 비판할 때도 풍부한 전기를 그냥 버려야 하는 주정부들이 채굴업자들에게 특혜를 주면서까지 유치했던 일들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설계에 관여했거나 초창기에 뛰어든 이론가들은 이런 현실을 예측했을까. 비트코인이 전기를 소모하는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이들은 비트코인 채굴이 전기 산업을 합리화할 뿐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보급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내다보고 있었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속성과 정보가 공개돼 있으므로 마음을 열고 관찰하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다만 문제는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 전기와 컴퓨터를 쓰는 ‘전 지구적 게임’
[돋보기] 비트코인 일물일가와 전기료 단일화 압력
비트코인은 전 세계 주요 화폐와 24시간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적 수준에서 일물일가( 一物一價)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 자산이다. 아직 미성숙했기 때문에 김치 프리미엄과 같은 국경에 따른 국지적인 격차가 존재하지만 주류 금융권이 차익을 노려 개입하는 즉시 사라질 현상이다. 비트코인의 물리적 이전에는 보관이나 운송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 전기료를 단일화하는 방향의 압력이 될 것이다. 전기료를 보조하는 국가에서는 개인들이 채굴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장을 역행하는 규제에 보복할 것이다. 전기료를 보조하면 비수기의 버리는 전기만이 아니라 성수기의 전기를 가지고도 채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추가로 얻기 위해 필요한 전기료는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에 수렴할 것이므로 석유나 원자력 심지어 수력·풍력 등 소모하는 자원과도 무관한 거대한 압력이 전기료를 지구적으로 단일화하려고 할 것이다.

다만 전기료는 국경에 따라서가 아니라 위도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채굴기를 식히는 데 사용되는 냉각기가 채굴 전기의 20%에 해당하는 전기를 추가로 소모하기 때문인데 그만큼 추운 지방은 전기료가 비싸도 된다. 냉각기를 돌리지 않아도 채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추운 지방은 더운 지방에 비해 냉각기가 소모하는 전기료 한도 내에서 전기료를 올릴 수 있을 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9호(2019.06.17 ~ 2019.06.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