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어떤 협상 파트너라도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

상대의 ‘배후’를 찾아야 협상이 쉬워진다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각자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바로 협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협상에 임할 때 갖는 생각은 비슷할 것이다.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내고 말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협상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 듣지 못했다. 물론 본인이 속한 조직이 ‘슈퍼 갑’의 자리에 있다면 예외일 수 있다.

비장한 각오로 협상에 임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협상은 자기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무언가를 내줘야만 한다. 그것이 상대에게 적합하고 가치 있는 행동이라면 그 힘은 더 커진다.

그래서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상대의 주변을 함께 탐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조력자를 설득해 유치한 ‘88 올림픽’

1988년 올림픽 유치를 놓고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가 경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무모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 초반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의 스포츠 외교는 걸음마 단계였다. 유치 기간 동안 한국의 올림픽 유치단이 대접 받은 수준을 보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한국 유치단은 유치 기간 동안 시내가 아닌 외곽의 호텔에 숙소 배정을 받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일본은 이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배출했을 만큼 스포츠 외교에서 ‘귀빈’ 대열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본이 쉽게 올림픽 유치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국 유치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대한 인지도가 바닥인 상황을 우호적으로 바꿔 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의 매력을 최대한 나타낼 수 있도록 한국 전시관을 만들고 안내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IOC 위원들 개개인에게 한국의 매력과 서울 유치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치 위원들의 가족을 총동원해 정성스러운 화환을 만들고 이를 유치위원장 명의로 IOC 위원들에게 보내는 등의 노력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런 감성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IOC 위원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IOC 위원들을 직접 만나는 것과 함께 또 다른 방법을 쓰기로 결정한다.

IOC 위원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 유치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나서도록 한 것이다. 고민하다 한국 유치단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당시 아디다스의 창립자였던 아돌프 다즐러 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아디다스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키며 IOC 위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스포츠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당시 IOC를 이끌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다즐러 회장과 의논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는 후문이다.

만약 다즐러 회장을 한국 편으로 돌리면 올림픽 유치 또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던 중 한국 유치단이 다즐러 회장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인물과의 중요한 미팅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한국 대표단에 이런 요구를 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한국을 적극적으로 밀어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켜 준다면 TV 방영권과 기타 사업권을 줄 수 있습니까.”

이 제안을 들은 한국 유치단은 “올림픽만 유치되면 중계권 등은 큰 문제가 아니다”고 그에게 답하며 다즐러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이 서울의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이 됐다.

결과는 모두 아는 것처럼 ‘쎄울, 꼬레아’라는 사마란치 위원장의 발표로 마무리됐다. 유치단은 IOC 위원을 움직이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했고 성공적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한국 유치단이 다즐러 회장의 상업적 술수에 넘어간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 유치단엔 ‘올림픽 유치를 통한 상업적인 이익’보다 ‘올림픽 유치를 통한 국가 홍보’라는 욕구가 더 강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협상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제3의 힘’을 활용해 IOC 위원들과의 협상에 성공했다.

◆판 움직이는 ‘키맨’ 찾아야 뛰어난 협상가

협상을 해결하는 데는 많은 방법이 있다. 상대의 선택지를 없애 버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 수도 있고 상대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절묘하게 만족시키는 대안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런 방법은 힘이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확실한 논리를 제시해도 움직이지 않는 상대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대안임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협상 상대를 만났다’며 답답해한다.

하지만 프로 협상가는 다르다. 협상 상대의 ‘배후’, 즉 또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협상을 풀어간다. 그 사람을 직접 설득함과 동시에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다른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찾는다. 그래서 협상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내세워 협상을 풀어간다.
비즈니스 상황을 한 번 보자. 많은 제조사들은 가능한 한 자사의 많은 제품이 소매점에 깔리기를 원한다. 고객들에게 자주 노출돼야 자연스럽게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조사는 편의점 본사 등 유통사와 매일같이 협상한다. ‘신제품이 나왔으니 구매 물량 좀 늘려 달라’, ‘판매 실적이 저조하니 판촉 행사 좀 기획해 달라’는 등의 요청이다.

하지만 이런 요청을 받은 유통 업체 측에서 ‘알겠다’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일은 없다. 이들 역시 괜히 주문 물량을 늘렸다가 재고만 쌓이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대응한다.

“우리도 구매하면 좋겠지만 실제 점주들이 주문하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유통사 담당자의 이 말에 대한 반응에서 영업 담당자가 우수한 역량이 있는지 그저 그런 직원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일 잘하는 제조사 영업 담당’은 이번 협상의 키맨이 본사 담당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한다. 결국 ‘소매점주’가 주문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제품 판매를 좌우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협상 상대를 바꾼다.

본사 담당자에서 소매점주로 말이다. 이때부터 그의 고민은 ‘어떻게 소매 점주들이 자사 제품을 좋아하게 할까’로 바뀐다. 그래서 점주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교육을 하기도 하고 효율적 매장 진열 방식에 대한 조언도 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매점주로서는 만약 비슷한 제품이 있다면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 회사의 제품을 먼저 구매하지 않을까. 하나만 살 계획이었더라도 큰 무리가 안 된다면 2개, 3개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유통사 본사에 더 많은 주문이 올라갈 것이고 제조사의 매출 기회가 커진다. 이게 눈앞의 협상 상대에만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동물원에 갇힌 맹수 한 마리가 뭐가 불만인지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으르렁거린다. 그 맹수를 진정시키고 당신을 지켜 줄 보디가드로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수와 싸워 힘으로 이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바보다. 맹수를 통제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맹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조련사다. 아무리 성질 나쁜 맹수라도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조련사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아무리 ‘이상한’ 협상 파트너라도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를 찾고 그 사람을 당신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협상 결과도 당신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맹수와 싸울 것인가, 조련사를 활용해 맹수를 진정시킬 것인가. 여기에 대한 선택은 결코 어렵지 않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0호(2019.06.24 ~ 2019.06.3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