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개·망·신 3법’
-시민단체 반대·국회 공전에 국회에서 발 묶여
‘빅데이터 3법’ 가명 정보 도입해 빅데이터, 산업 활용 길 터줘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이자 글로벌 경제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빅데이터는 PC·인터넷·모바일 기기 등이 일반화된 디지털 시대에 수많이 생성되는 수치·문자·영상 등 흔적(데이터)을 포함한 대규모 데이터를 뜻한다.

규모가 방대해 아날로그 시대의 기존 기법으로는 수집·저장·분석하는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금융·의료·정보통신·에너지 분야부터 국세청 사업자 정보, 경찰의 차량·교통 정보까지 빅데이터의 산업적 활용도와 가치는 매우 크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과 신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빅데이터가 산업 판도와 기업의 생존 전략까지 좌우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12개 업종 120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빅데이터 도입률은 10%에 불과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2018년 빅데이터 활용 역량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63개국 중 31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 이상인 31개국 중에서는 21위에 그쳤다.

한국에서 빅데이터의 경제적 활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빅데이터 활용을 제한하는 규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포레스터리서치가 매년 발표하는 개인 정보 활용 규제 지도에 따르면 한국의 규제는 2016년 최고 등급인 ‘규제 심각’으로 평가됐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족쇄들을 풀어 빅데이터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말 “데이터를 가장 잘,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한 이후 여러 지원책을 내놓았다.

2018년 말엔 2019년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 1조2205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5월 22일엔 2025년까지 바이오 헬스 산업 연구·개발(R&D) 투자를 연간 4조원 규모로 늘린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6월 3일 핀테크 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이 금융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금융 빅데이터 인프라 개설과 구축 방안을 내놓았다.
‘빅데이터 3법’ 가명 정보 도입해 빅데이터, 산업 활용 길 터줘


◆ 국회 통과 땐 비식별 데이터 활용한 비즈니스 가능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해 2018년 11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이른바 ‘개·망·신’법으로 불리는 ‘빅데이터 규제 완화 3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업자가 정보 주체의 동의, 법령상 의무 준수, 계약 체결과 이행 등 일정 요건을 갖췄을 때만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외의 목적으로는 개인 정보 수집과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개인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익명 정보에 비해 데이터 분석력을 높인 가명 정보 개념을 도입했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과 같이 개인 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가공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한 뒤 이런 가명 정보를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 개발 등 산업에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름과 주민등록 정보 등 개인을 추정할 수 있는 데이터는 개인 정보를 침해할 수 있어 제외하되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보안 시설을 갖춘 전문 기관을 통해 데이터 결합이 가능하도록 했다.

개인 정보 활용 범위를 확대한 만큼 책임성도 강화했다.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가 나오면 즉시 처리를 중지하게 했다. 이를 어기면 전체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개인 정보의 효율적인 관리와 오·남용, 유출을 막기 위해 각 부처로 분산된 개인 정보 관리·감독 기구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중앙 행정기관으로 만들어 개인 정보 컨트롤 타워로 삼고 위원회에 조사권과 행정처분 의견 제시권을 부여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되면 기업들은 비식별 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예컨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누가 언제 어떤 상품을 구매할지 예측하고 미리 물건을 배송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에 산재된 법체계를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관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온라인상 개인 정보 보호 관련 규제와 감독 주체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변경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가명 정보의 금융 분야 빅데이터 분석과 이용을 위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통계 작성(시장조사 등 상업적 목적의 통계 작성을 포함),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 등을 위해 가명 정보를 신용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 분야에서 빅데이터 분석·이용을 활성화할 수 있게 했다.
‘빅데이터 3법’ 가명 정보 도입해 빅데이터, 산업 활용 길 터줘
◆ “빅데이터 활용 기준 모호, 신규 비즈니스 개발 역부족”

하지만 법안들은 관련 상임위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이뤄지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 있다. 국회 파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 단체들의 반발이 큰 걸림돌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 단체들은 개인 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민간의 빅데이터 활용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정보의 오·남용과 악용에 대한 걱정은 가명 정보 처리로 예방하는 만큼 빅데이터 이용을 활성화할 법 제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과 정부의 주장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 활용이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법에 막혀 인력과 인프라 모든 면에서 뒤처진 상태”라며 “국회에 상정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을 하루 빨리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기업들은 다급해졌다. 특히 EU에 진출해 있거나 EU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업체들은 좌불안석이다.

EU의 개인정보보호법(GDRP)이 2018년 5월부터 시행되면서다. EU는 GDRP 규정을 위반하면 2000만 유로(약 260억원) 또는 해당 기업의 전 세계 매출의 4%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면하기 위해선 국가의 개인정보보호 체계가 GDPR과 동일하다는 ‘적정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받으면 해당 국가의 기업들은 EU 국민의 개인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2016년과 2018년 연이어 평가에서 탈락했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엔 GDRP 적정성 평가 통과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독립적인 컨트롤 타워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설립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규정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반면 일본은 올해 1월 GDRP 적정성 평가를 획득해 EU의 데이터 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국회에 제출된 법 개정안 내용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학적 연구와 함께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개발 등 산업적 목적에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줬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고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도 이에 동의하고 있어 법안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송희경 한국당 의원은 “개인 정보 활용 범위에 의학 분야를 비롯한 국민이 활용할 수 있는 상업적인 분야도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상직 의원은 정보 주체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을 제외하고 가명 정보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분명하게 못 박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기업의 가명 정보 활용 유인책이 부족해 데이터 경제 활성화에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1호(2019.07.01 ~ 2019.07.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