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유한 100만 비트코인…테더의 기소 여부도 촉각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비트코인 가격이 1만 달러(1169만원)를 오가고 있다. 2017년 11월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했었는데 1년 6개월이 지나서도 1만 달러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기준점을 삼을 만한 내재 가치가 없다 보니 상대방의 눈치를 보면서 선택하는 전형적인 ‘무리 행동’의 양태를 보여준다.


1달러나 10달러, 100달러, 1000달러는 모두 연속된 수의 한 지점일 뿐이지만 사람의 인식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특별한 기준점 역할을 한다. 참여자들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의미를 갖는 정수를 기준점으로 삼아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무리 행동은 다수가 선택하는 기준점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뉴스에 일정한 패턴으로 반응하기도 하는데 설사 그 뉴스가 인과관계를 야기하지는 않더라도 신호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에 악재로 작용하는 뉴스가 몇 개 있다. 만성질환처럼 평소에는 잊혀 있지만 수면 위에 올라오면 참가자들의 심리에 압박감을 주므로 결국 가격 상승의 모멘텀을 빼앗는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붙들어 놓는 3대 악재
#1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크레이그 라이트 개발자
6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중요한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크레이그 라이트 엔체인(nChain) 수석 개발자가 자신이 비트코인을 창안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미국 법원에서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트 개발자는 비트코인 채굴 기업 엔체인의 수석 개발자이자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원래 이 소송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사토시 나카모토와 협력했지만 오래전 사망한 사람의 동생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100만 비트코인의 일부를 돌려받기 위해 라이트 개발자를 미국 법원에 소송했다. 라이트 개발자는 자신이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확신하는 이로부터 소송을 당한 셈이다.

라이트 개발자는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맞지만 100만 비트코인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항변해 왔다. 미국 법원은 라이트 개발자가 미국 법정을 모독하고 있다고 경고했고 100만 비트코인과 관련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라이트 개발자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사토시 나카모토만이 제시할 수 있는 자료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겼다.
비트코인은 뚜렷한 리더십이 없다. 아무도 비트코인의 재산적 가치에 영향을 미칠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없다. 사실 리더십의 부재는 비트코인을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캐시를 비롯한 여타의 코인들과 구별해 주는 특징이자 장점이다. 라이트 개발자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 특징은 옅어질 수밖에 없다.

라이트 개발자는 그간 독선적인 면모를 드러내 왔다. 그래서 그는 비트코인의 충실한 주창자들과 끝없이 대립할 것이고 결국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라이트 개발자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맞는다는 것이 확인되면 호주 정부와 미국 정부가 그를 상대로 법적인 실력 행사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라이트 개발자가 2016년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홍보한 후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바로 호주의 세무 당국이었다. 그들은 라이트 개발자의 가택을 압수수색했다. 만약 미국이나 호주 정부가 사토시 나카모토의 100만 비트코인 중 상당액을 징벌적으로 압류한다면 이를 한 번에 시장에 내다 팔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압류를 통해 확보한 비트코인을 시장에 내다 팔아 왔다. 비트코이너들은 미국 정부의 비트코인 투매가 암호화폐 시장의 침체를 의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붙들어 놓는 3대 악재
#2 미국 수사 당국의 USDT 청산 가능성
테더가 발행하는 USDT는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미 발행량이 36억 달러에 달한다. 달러를 받고 일정량의 코인을 내주는 행위는 은행 예금을 유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규제가 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테더 본사는 실체가 모호하지만 홍콩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피넥스의 경영진이 테더의 실질적인 주인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은 테더가 비트코인 거품을 조장하는 주범이라고 지목하곤 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기 전에 USDT의 발행량이 증가하고 대량으로 거래소 지갑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근거다. 미국 수사 당국은 테더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테더를 기소하기도 했다.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이 예금을 유치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코인의 발행량만큼 달러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논란의 중심이다. 은행도 고객들이 맡긴 예금을 고스란히 현금으로 금고에 넣어두고 있지는 않지만 고객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청구하지 않는 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 수사 당국이 테더를 청산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바로 문제가 된다. 이렇게 되면 USDT를 보유한 이들이 달러를 청구하기 시작할 것이고 테더가 보유한 달러를 소진하고 나면 지불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 수사 당국이 테더와 비트피넥스의 경영자들을 은행법 위반과 자금 세탁 혐의로 기소하고 그 여파로 테더가 지불불능에 빠진다면 암호화폐 전체는 신뢰의 위기를 겪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지난 10년간 수많은 거래소 해킹 사건을 극복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럼에도 테더의 청산과 부도는 이전과 차원이 다른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에 대해 마땅한 제어장치를 확보하지 못했던 미국의 금융 수사 당국으로서는 비트코인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도구를 확보한 셈이다. 적절한 제어장치로 아껴 쓸지 여부는 미국 수사 당국에 달린 일이지만 테더의 기소와 부도는 암호화폐 세계를 갑작스러운 빙하기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붙들어 놓는 3대 악재
#3 마운트곡스의 청산과 20만 비트코인

마운트곡스는 일본 도쿄에 주소를 두고 있었지만 비트코인과 달러 기반의 거래소였다. 마운트곡스는 2014년 해킹으로 비트코인 85만 개를 잃어버리며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곧 따로 보관해 둔 지갑에서 20만 비트코인을 발견했다.

회사는 일본 법원에 의해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데 그 사이에 비트코인 가격이 20배 이상 오르는 바람에 청산 가치가 영업할 때보다 더 높아져 버린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2018년 1월 마운트곡스 신탁 관리인인 고바야시 노부아키 변호사가 비트코인을 일부 현금화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했다. 마운트곡스의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 비트코인 처분 정지를 요청했고 자산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우려한 일본 법원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마운트곡스가 보유한 막대한 자산은 현재 동결 상태지만 회사를 다시 살리지 않는 한 언젠가 피해자들에게 전달될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이 과정이 한꺼번에 진행돼 오랫동안 피해에 신음하던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시장에 내다 판다면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트코이너들은 비트코인캐시나 비트코인SV의 가격이 더 많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피해자들은 잃어버린 개수보다 적은 비트코인을 받게 되겠지만 반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비트코인캐시와 SV를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비트코인 캐시나 SV부터 처분해 그간의 배고픔과 손실감을 일부 달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는 대부분이 일본인들이 아니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청산 절차는 일본의 사법 시스템을 따른다. 이 때문에 타협과 조정 과정이 더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예정돼 있던 채무 배상 제출 기한도 일단 10월로 연기된 상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2호(2019.07.08 ~ 2019.07.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