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영속성과 확장성’이 차별화 포인트…넘어야 할 산은 ‘게임 자체의 재미’
블록체인 게임, 진정한 ‘대안 현실’ 만든다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2017년 말 등장해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마비시켰던 최초 블록체인 게임 ‘크립토키티’를 시작으로 블록체인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몇몇은 아직 완성된 제품 없이 수십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큰 규모로는 미국의 미시컬게임즈가 작년 11월 1600만 달러(188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모았다. 5월에는 암호화폐 시가총액 기준 3위의 리플(XRP)을 개발한 리플(Ripple)도 블록체인 게임에 뛰어들었다. 리플은 모바일 게임사 카밤의 공동 창업자이자 e스포츠 구단 젠지의 회장인 케빈 추가 대표로 있는 블록체인 게임사 포르테와 함께 1억 달러의 블록체인 게임 펀드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블록체인 투자 기업 해시드 또한 올해 초부터 ‘해시드 랩스’라는 블록체인 게임 회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서비스 종료’가 없는 블록체인 게임

블록체인 게임은 아직 잘 정리되지 않은 분야다. 같은 ‘블록체인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끼리도 그 설계가 상이한 것이 많다. 하지만 블록체인 속성을 면밀히 살펴보면 적어도 어떤 속성들이 게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블록체인 게임은 크게 볼 때 영속성과 확장성의 두 가지 속성이 기존 게임과 다를 것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시조 격인 비트코인이나 최근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 모두 블록체인을 ‘금융자산 인프라’로 규정한다. 블록체인이 금융자산을 다루는 데 적합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블록체인의 영속성에 있다. 자기 통장 잔액이 기록된 은행의 데이터베이스가 어느 날 사라지거나 조작될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 회사의 주식을 경영진이 임의로 발행해 타인에게 나눠 줄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그런 금융회사나 인프라를 신뢰하고 금융자산을 맡기기 어려울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 속에서 구매하거나 획득한 게임 아이템을 비롯한 자기의 자산을 누군가 마음대로 없애버리거나 조작하거나 발행 규칙을 바꾼다고 하면 그 누구도 그 게임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에 누가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에서는 소수의 고과금 사용자가 매출의 대부분을 일으키는 것이 상식이다. 게임에 수천만원, 수억원을 쓰는 사용자들로서는 게임의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언제든 게임 속의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게임 서비스 종료’로 게임 속 자산을 모두 잃어버린 유저들의 하소연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권에서 사용되는 블록체인이 영속적이고 중립적인 분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금융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듯 블록체인 게임은 게임 내 사용자의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될 것을 약속한다. 이론상으로는 블록체인 게임이 온전히 블록체인 프로토콜 위에서만 작동된다면 ‘서비스 종료’가 불가능한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개발사가 서비스를 종료해도 게임 내 자산들은 여전히 존재해 차후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여지가 있다. 영속성은 크립토키티를 비롯해 현재까지 블록체인 게임들이 가장 크게 강조하는 속성이다.

그다음은 확장성이다. 블록체인의 ‘대체불가능한 토큰(NFT : Non-Fungible Token)’ 개념을 이용하면 게임 내 자산의 역사가 모두 기록된다. 다시 말해 해당 자산이 발행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그 자산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게임과 그 자산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다.

예컨대 세계적 e스포츠 스타인 페이커 선수가 착용했던 아이템은 성능이 다른 아이템과 같더라도 팬들에게는 더 값진 것이 될 수 있다. 스포츠에서 일반 공과 사인구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더리움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이제는 블록체인의 기본 기능 중 하나가 된 ‘스마트 콘트랙트’를 사용하면 게임의 개념을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 크립토키티 위에 제3의 개발자들이 모자 액세서리나 경주 게임, 대전 게임 등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박성과 사행성이 가장 큰 고민거리

물론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암호화폐를 제외하고 현재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댑(Dapp :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은 바로 도박(Gambling)이다. 특히 이오스와 트론에서 도박성 댑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댑닷컴(Dapp.com)을 비롯한 통계 사이트에서도 활동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행성 요소를 강화한 게임도 여럿 등장했다.

블록체인 게임은 자산의 온전한 소유권을 제공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아이템 거래 기능을 허용한다. 문제는 이 거래가 암호화폐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쉽게 법정화폐로 환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환금성 자산으로 볼 수 있다.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 상자를 열어 받게 되는 아이템이 환금성 자산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이 아이템 상자가 근본적으로 즉석복권이나 도박과 다르다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

극단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도박성과 사행성이 근본적으로 나쁘지 않고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요 목적이 스토리, 문제 해결, 목표 성취 등으로 얻어지는 ‘재미’가 아니라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이 된다면 외적인 보상 때문에 내적인 동기가 파괴되는 전형적인 보상의 부작용을 겪게 된다. 그 누구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임이라면 누가 돈을 내고 싶을까. 돈을 내는 사람이 없다면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는 보상이 지속 가능할 리도 없다.

현재 나와 있는 블록체인 게임들의 품질이 너무 낮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블록체인 인프라는 계정 생성, 지갑 설치, 개인 키 관리, 백업, 블록체인 사용료 지불 등 사용자가 불편해할 만한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상황에서 블록체인 게임이 사용자를 끌어들이려면 일반적인 서버 기반의 게임보다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블록체인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 암호화폐 결제 기능만 붙인 게임들이 많고 블록체인 게임으로서의 창의성은 발휘했지만 게임으로서의 기본기가 부족한 게임들도 많다. 가장 인기 있는 블록체인 게임들조차 2000명 수준의 일간 활성 사용자(DAU)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속성과 확장성이 보장되는 블록체인 게임은 기존의 게임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탄생할 블록체인 게임은 ‘실존하는 대안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게임들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아직 산더미처럼 많다. 눈에 띄는 상업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오랜 실험 끝에 블록체인 게임은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립토키티가 나온 후 불과 1년 반 남짓 해온 실험에 대해 섣불리 비판할 필요는 없다. 블록체인 게임 실험에 동참하고 있는 창업자들 또한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기보다 정말로 블록체인으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 또 결과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치열한 고민과 자기성찰의 과정에서 어쩌면 모바일 게임의 왕도를 제시한 슈퍼셀 같은 회사가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2019.07.15 ~ 2019.07.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