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바른미래·민평당發 정계 개편 바람
…보수빅텐트·제3지대 신당·범여권 연대론 등 분분
선거 다가오니 … 또 새 짝 찾는 ‘떴다방·가설 정당’들 등장?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A와 B는 서로 상대에 대한 호감은 없었다. 궁합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있었다. 우선 각기 부모들과 가정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 힘에서 밀렸다. 홀로 독립하기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생존을 위해 서로 손을 잡았다. 일종의 정략결혼을 한 것이다.

애정 없이 결혼하고 보니 오순도순 잘살 리 만무하다. 취미도 성격도 서로 추구하는 길도 달랐다. 만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부딪치는 바람에 가훈(정당으로 치면 이념적 좌표)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화합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제 각자 새로운 살 길을 찾으려고 한다. 혼자 황야로 나갈 때 생존이 걱정된다. 그래서 다시 손잡을 사람을 이리저리 찾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처지가 이런 상황이 아닐까.

내년 4월 실시되는 총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다시 ‘헤쳐 모여’ 바람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다. 바른미래당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과 안철수 전 의원이 주도해 창당했던 국민의당이 합당해 탄생했다.

민주평화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합당에 반대한 국민의당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과 지역위원장들이 탈당해 2018년 2월 만들어진 정당이다.

하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창당 이후 각기 바람 잘 날 없었다. 바른미래당은 정강·정책과 2018년 6·13 지방선거 공천, 선거제도 개편, 당 혁신 문제 등을 놓고 각 정파 간 사사건건 부딪쳤다.

손학규 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안철수·유승민계 등 반(反)당권파 간 갈등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안건마다 계파 간 다툼으로 결정하지 못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두고 ‘바미스럽다’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선거 다가오니 … 또 새 짝 찾는 ‘떴다방·가설 정당’들 등장?
◆ ‘새정치’ 구호 어디가고 창당 뒤 아귀다툼만 횡행

이게 당인가 싶을 정도의 이해하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했던 국민의당 출신 비례대표 의원 3명(박주현·이상돈·장정숙)은 바른미래당 출범 뒤 다른 당(민주평화당)에서 활동해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비례대표는 탈당 때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의원 ‘배지’는 떼기 싫으니 몸은 이 당에 있고 마음은 저 당에 가 있는 것이다. 박선숙 의원은 바른미래당 간판만 달고 있을 뿐 당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출범 협상 당시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가 이념 좌표를 놓고 갈등을 겪다가 ‘보수’ ‘중도’ ‘진보’ 등 이념적 표현을 강령에서 빼는 것으로 막판 타결을 봤다. 애초부터 각자 살기 위해 손잡다 보니 추구하는 이념적 좌표가 뭔지 제대로 알기 어려운 정당이 돼 버린 것이다.

민주평화당은 제3지대 정당 추진 문제를 놓고 내홍을 벌이고 있다. 자강론을 펴는 정동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제3지대 정당 창당을 주장하는 비당권파가 갈등을 빚고 있다. 신당 추진파는 대안정치연대를 구성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유성엽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한국당을 누르고 1당이 될 수 있는 튼튼한 경제정책을 만들어 대안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양 세력 간 갈등 이면에는 정 대표와 박지원 의원 간 파워 게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판에서 거론되는 새판 짜기는 ‘보수 빅텐트’, 호남 주도의 제3지대 창당, 범여권 연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보수 빅텐트론은 바른미래당 내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계·우리공화당 등과 한국당이 보수 대통합을 하자는 주장이다.

보수 진영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내년 총선도, 대선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대 반문재인’ 전선을 형성해 보수 결집을 이루자는 것이다. 보수 빅텐트론은 지난 4·3 창원성산 보궐선거 당시 보수 성향 후보들의 표 잠식으로 한국당에 후보가 석패하면서 강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을 뿐만 아니라 당을 뛰쳐나간 바른정당계 의원들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바른정당에 갔다가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온 복당파 의원들은 주요 당직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정당계 의원들도 친박계인 황교안 한국당 대표 체제에서 친정으로 돌아가더라도 불편한 동거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다.
선거 다가오니 … 또 새 짝 찾는 ‘떴다방·가설 정당’들 등장?


◆ 이혼도, 계속 같이 살기도 어려운 처지로 몰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 정당들 간 특정 지역에서의 선거 연대론도 제기되고 있다. 2012년 총선 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정책 연합 명분을 내세워 일부 지역에서 공천 안배를 통해 연대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제3지대 신당은 호남 출신 의원들이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와 바른미래당 내 호남 출신 의원들이 우선적으로 손잡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민주평화당 의원 10명으로 구성된 대안정치연대는 바른미래당 박주선·김동철·주승용 의원과 손금주·이용호 무소속 의원 등이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이 꼴 저 꼴 보지 말고 빨리 새 집을 짓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제3지대 신당 창당 역시 난관이 적지 않다. 바른미래당 분당이 전제돼야 하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다. 바른미래당이 창당 1년 반 동안 줄곧 내홍을 겪으면서도 쪼개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분당 땐 당장 교섭단체 지위(의석 20석 이상 보유)를 잃게 된다. 50억원에 달하는 당의 자산도 ‘이혼’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당법상 분당 땐 당 간판을 갖고 남아 있는 쪽이 자산을 갖는다.

신당 추진이 정상 궤도에 오르더라도 파급력 있는 당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민주평화당 신당파와 바른미래당 당권파, 무소속 일부 의원들이 손잡는다고 하더라도 20~30명에 불과하다. 민주당·한국당 양당 체제를 흔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대선 주자급 거물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차기 집권 가능성이 약하다면 의원들을 유인하는데 뚜렷한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소속 일부 호남계 의원들은 민주당에 합류할 것이라는 설들도 나온다.

국민에게 감동과 대안, 비전을 보여주는 것도 관건이다. 하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모두 창당 당시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새 정치를 보여주겠다고 해놓고 아귀다툼만 벌인 끝에 와해 직전에 와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채 헤쳐 모여만 한다고 달라질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신당파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가 변수다.

그러나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들이 이념보다 선거 유불리에 따라 ‘헤쳐 모여’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정치판에서 선거를 앞두고 으레 등장했던 1회용 ‘떴다방·가설(假設) 정당’ 추진이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것은 정치 후진성을 보여주는 징표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4호(2019.07.22 ~ 2019.07.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