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답 없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보다 ‘일단 시도해 보는’ 조직 문화 만들어야

‘빠른 실패가 성공 지름길’…‘애자일’하게 일하는 법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만약 당신이 길을 모르는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길, 미로를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통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소 의외일 수 있겠지만 정답은 ‘빨리 실패하기’다. 이유는 이렇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1초 고민’하는 것과 ‘1분 고민’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갈림길에서 신중한 분석을 통해 ‘더 나은 길’을 찾아갈 수 있다면 고민의 시간이 의미 있지만 정답은 모른다. 결국 분석적 사고가 의미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실패해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앞이 아닌 옆’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게 미로를 통과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비즈니스 환경을 들여다보자. 몇 년 전부터 이른바 ‘VUCA 시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VUCA는 변동적이고(Volatility) 불확실하며(Uncertainty) 복잡성이 높고(Complexity) 모호한(Ambiguity)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육군 대학원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인데 전장의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즉각적이고 유동적 대응 태세가 중요함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것이 지금은 경영 현황을 설명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빠른 기술혁명 때문에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고 고객의 니즈 역시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치밀한 분석과 기획은 얼마나 중요할까. 오랜 시간 트렌드를 분석하고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한다. 그래서 A라는 방향으로 신사업의 방향을 정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분석과 조사 기간 동안 시장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요즘이고 이것이 VUCA 시대의 특징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빠른 실패’다. 고민하느라 시간을 헛되게 쓰기보다 ‘일단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다른 말로 ‘애자일(agile) 경영’이라고 말한다.

◆‘최소한의 목표’ 정하고 업무 추진해야

애자일 경영의 핵심은 작게 실행하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빨리 피드백을 받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재실행을 하는 것이다. 철저한 기획과 전략을 세우느라 시작을 늦출 게 아니라 ‘일단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이다.

그럼 궁금해진다. 이렇게 일하기 위해 조직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애자일에서 얘기하는 대표적인 방법론 2가지를 살펴보며 그 힌트를 찾아보자.

애자일하게 일하는 조직이 수행하는 방법 중 하나는 ‘스크럼(scrum)’이다. 쉽게 얘기하면 우선 해야 할 일을 찾아 정해진 업무 수행 기간 동안 서로 협력해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다.

스크럼에서 강조하는 첫째는 프로젝트 멤버들 간의 소통이다. 대표적인 세션이 ‘스크럼 미팅’이라고 불리며 매일매일 이뤄지는 업무 공유 미팅이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많은 리더들이 반문할 수 있다. “우리 조직도 이미 매일 각자 업무를 보고하는 미팅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기존 회의와 스크럼 미팅은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방향’이다. 기존의 회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리더(일반적으로 팀장)’에게 각자의 현황을 보고하는 시간이다. 즉 지시 사항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관리자가 점검하는 ‘한 방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스크럼 미팅은 다르다. 리더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양방향’이다. 어제까지 자신이 하기로 했던 일의 진척도가 어떤지, 업무 진행에서 어려운 상황은 무엇인지, 어떤 부분에서 지원이 좀 더 필요한지 등을 ‘서로’ 공유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리더 역시 구성원의 한 명으로 참여해 고민을 얘기하고 아이디어를 나눈다. 즉, 리더는 판단하고 평가만 내리는 게 아니라 조직원의 일원으로서 정보를 공유하고 결정이 필요할 때 교통정리를 해 주는 사람이다. 이게 과거 일반적 조직의 리더 그리고 1일 회의와 다른 점이다.

스크럼 미팅에서 중요한 둘째는 기간이다. 이들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명확한 마감 기한을 갖고 있다. 통상 2주를 데드라인으로 둔다. 길어도 1개월을 넘기지 않는다는 게 애자일 조직의 특징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 사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을 두고 그 안에 ‘무엇이든’ 만들어 내도록 독려한다.

이런 방식에 대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거창한 것, 완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최소 요건 제품(MVP : Minimum Viable Product)’이면 충분하다는 게 이들의 철학이다.

처음부터 모든 캐릭터가 완벽한 게임을 만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복잡한 모든 기능이 담긴 제품을 바라지도 않는다. ‘제한된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하면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도의 목표를 정하고 ‘최소한 이것까지는 만들자’는 방침으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

스크럼 미팅에서 간과하면 안 되는 마지막 셋째는 ‘소통’이다. 앞서 첫째도 ‘소통’을 말했지만 지금의 소통은 대상이 다르다. 첫째 소통이 ‘과정’에서의 아이디어 나눔이었다면 여기에서의 소통은 ‘결과물’에 대한 복기다.

약 2주간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다음엔 어디에 좀 더 집중해야 할지 등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는 시간이다.

주의할 점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아닌 ‘일’이 대상이 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견된 개선 아이디어를 그다음 세션에 적용해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조금씩 더 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상황에 대한 빠른 대응력이 관건

애자일하게 일하는 조직이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론은 ‘간반(kanban)’이라는 일하는 방식이다. ‘시각화를 통한 업무 관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떤지 등을 도식화해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익숙한 비즈니스 용어로 설명하자면 일종의 ‘비주얼 플래닝(visual planning)’이다.

이처럼 업무가 시각화되면 불필요한 미팅이 줄어든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개개인에게 물을 필요 없이 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 과정에서의 ‘병목’이 어디인지도 쉽게 파악된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궁금해진다.

비주얼 플래닝은 예전에 유행하던 업무 방식인데, 그게 요즘 세상에서 애자일하게 일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간반의 핵심은 일을 보이게 하는 것과 함께 ‘일을 제한한다’는 철학이다. 쉬운 예로 설명해 보자. 지난 5월 중국 노동절 연휴에 화제가 됐던 영상이 있었다. 만리장성을 빽빽하게 채운 관광객들과 태산·상하이 등 유명 관광지 앞에 물밀 듯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일본 오사카의 한 공원에서는 입장객에게 동그란 코인을 나눠준다. 그래서 그 코인이 떨어지면 더 이상 입장객을 받지 않는다. 한 사람이 공원을 나가며 코인을 반납해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 예상했겠지만 제한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면 ‘누구도’ 구경을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간반의 철학은 바로 오사카 벚꽃 공원의 운영 방식이다. ‘할 수 있는 만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게 효율을 높인다는 믿음이다. 이게 과거 우리가 해 왔던 비주얼 플래닝과의 차이다.
과거엔(물론 요즘도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지만) ‘일단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빠른 실패가 성공 지름길’…‘애자일’하게 일하는 법

밀려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성과를 낸다고 믿었다. 물론 그 덕분에 성장해 왔고 성과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번아웃’이 되기도, 불량이 생기기도 했다. 휴식이 아닌 고문이 됐던 중국 노동절 연휴처럼 말이다.

그래서 애자일 조직에서는 ‘할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중요시한다. 진행 가능한 업무량을 통제해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는 게 핵심이다.

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 일을 대하는 우리의 철학도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예측이 가능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명확한 목표점이 있으면 우사인 볼트처럼 100m를 총알같이 달려 나가면 해결됐다. 하지만 이젠 곳곳에 허들이 있다. 얼마쯤 달리고 나면 갑자기 웅덩이도 나온다.

더 심각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90도 방향이 확 틀어지는 트랙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우사인 볼트의 스피드가 아니다. 상황에 대한 빠른 대응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애자일하게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해 봐야 하는 이유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4호(2019.07.22 ~ 2019.07.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