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원격진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 의료 단체 등의 반대로 정권마다 추진 → 원점 회귀 반복
中·日은 원격 수술까지 하는데 … 한국, 원격진료 20년간 ‘시범’만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정부가 7월 23일 강원도를 무대로 원격진료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원격진료 실험 대상으로 삼은 환자는 강원도 오지에 사는 고혈압·당뇨 환자 400명이다.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앞으로 2년간 원격진료 실험을 한 뒤 전국으로 확대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환자들은 재진(再診)부터 집에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원격진료는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기를 이용해 의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그간 원격진료 시범 사업은 원격 모니터링만 가능했다. 진단과 처방을 받으려면 환자가 보건소 등을 찾은 뒤 의사 또는 간호사가 1차 의료기관의 의사와 화상으로 연결해 줘야만 했다. 이에 비하면 이번 정부의 방침은 진전된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여전하다. 원격진료의 핵심인 진단과 처방은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방문해야 가능하다. 의사와 환자 간 전면적 원격진료와 거리가 있다. 만성 질환자로 2년간 400명으로 한정한 것이나 재진 환자라는 제한이 붙은 것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시범 사업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년 뒤 원격진료가 확대될지도 미지수다. 원격진료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려면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돼야 하지만 의료 단체와 시민 단체의 반대에 가로막혀 논의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진료가 첫발을 뗀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이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지식정보화 사회 구현’을 적극 추진했다. 이를 위한 규제 개혁 과제 중 하나가 원격진료였다. 그해 강원도 16개 시군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이 실시됐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고령화사회에 대비하고 소프트웨어 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원격진료를 추진했다. 하지만 의료 단체 등의 반발로 논란만 거듭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中·日은 원격 수술까지 하는데 … 한국, 원격진료 20년간 ‘시범’만


◆ 대통령, 원격진료 필요성 강조 불구 여당 의원들 반대

원격진료가 시범 사업에 머무르는 것은 의료법 34조 때문이다. 이 조항엔 의사와 의사 간 원격진료는 허용하지만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는 금지하고 있다. 원격진료가 가능하려면 환자 옆에 의사 또는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

주변에 병원이 없는 산간 지역에 사는 노인이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해도 약 처방을 받기 위해선 직접 병원에 가야 한다. 섬에 사는 어린 아이가 한밤에 아파도 영상통화로 의사에게 상담 받을 수도 없다.

이런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는 2016년 섬·벽지 주민, 거동 불편 노인, 장애인 환자에 한해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정부안에서 해상 선원 환자를 추가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원격진료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4월 18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타슈켄트 인하대를 찾았다. 한국에 있는 인하대 병원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모니터 화상을 통해 원격진료를 하고 있는 곳이다.

원격진료 시연을 본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원격진료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도서벽지 환자들을 원격진료하는 것은 선(善)한 기능”이라고 했다.

하지만 원격진료는 국회에 막혀 요지부동이다. 의료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9명)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다. 복지위 소속 22명 의원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8명)들만 찬성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의 태도 변화 없이는 문 대통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안 처리는 이번 정부에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위 소속 민주당 한 의원은 “원격진료의 필요성과 문 대통령의 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당 지지층인 시민 단체와 의료계를 설득하기 전에 법 통과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1차 사업에서는 고혈압과 당뇨 등 재진 환자 84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당시 환자의 78.9%가 시범 사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보통 이상은 91.8%에 달했다.

2차 사업은 의료인 간 원격 협진과 도서벽지·군부대·원양선박·교정시설 등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환자들의 88.9%가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의사 도움이 용이하다’는 응답은 80.7%, ‘향후 원격진료 서비스 이용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0.2% 등 원격진료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中·日은 원격 수술까지 하는데 … 한국, 원격진료 20년간 ‘시범’만
◆ 해외에선 치료 앱 등장·원격 로봇 수술까지 실시

정부는 이런 시범 사업의 긍정적인 결과를 내세워 의료계와 국회를 설득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원격진료 반대 측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의료 서비스 질 저하다. 옆에 의사나 간호사 없이 고령의 노인·장애인 등 환자들이 자칫 의료 정보를 잘못 입력하게 되면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고 의료사고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기 마련에 환자의 부담이 크고 오진과 개인 정보 유출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들은 특히 원격의료를 의료 영리화와 연결해 일부 대형 병원과 대기업의 배만 불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의료 ICT 시장을 장악해 독과점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또 대형 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돼 동네 중소형 병원들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찬성 측은 반대 측의 논리가 억측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고령자나 장애인 환자는 원격진료 시 옆에 의료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보호자가 있으면 가능한데 반대 측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2016년 148개 참여 기관, 환자 5300명을 대상으로 2차 원격진료 시범 사업을 벌인 결과 오진이나 부작용 등 안전성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찬성 측은 원격진료가 전면 도입되면 약 120만 명의 의료 소외 계층이 혜택을 볼 수 있어 국민의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원격진료가 첨단 신산업 발전의 촉매제가 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는 것도 찬성 측이 내세우는 주요 논리다. 원격진료가 정보통신·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스태티스타는 세계 원격진료 시장 규모가 2015년 181억 달러(21조3525억원)에서 2021년 412억 달러(48조5995억원)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원격진료 허용 등 의료 규제를 풀면 일자리가 최대 37만4000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원격진료 규제 개혁이 지지부진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2015년 원격진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했다. 5월엔 로봇을 활용한 원격 수술도 할 수 있게 했다. 영상 진료뿐만 아니라 처방약까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 시스템 설치를 2020년까지 마칠 계획이다.

일본의 재택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진료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면 의료비 지출이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또 병 치료를 목적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의료기기로 인정했다. 원격진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마트폰 앱이 의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원격진료가 도입하기 시작해 현재 전체 진료 6건 가운데 1건이 원격진료로 이뤄지고 있다. 원격진료 뒤 약을 집에서 배달받을 수 있다.

중국은 2016년부터 원격진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스마트폰으로 진료 받은 사람이 1억 명을 넘어섰다. 최근 5G 기술을 이용해 3000km 떨어져 있는 환자의 뇌수술에 성공해 주목 받은 바 있다.

프랑스는 2017년 원격진료를 허용한 뒤 내년까지 노인 복지시설과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원격 진단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5호(2019.07.29 ~ 2019.08.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