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한국지역난방공사 2700억원 들여 2017년 준공한 SRF 발전소
-이해당사자 간 갈등 탓 2년째 지역 내 ‘뜨거운 감자’
-LNG로 연료 전환하면 매몰비용·손실 ‘눈덩이’
[르포] “쓰레기 발전소가 웬 말?”…환경 논란에 첫 가동도 못한 나주 SRF 발전소
[한경비즈니스=나주(전남)=안옥희 기자]‘자원 순환형 에너지 도시’로 조성된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에 들어선 한국지역난방공사(난방공사)의 고형 폐기물 연료(SRF) 열병합발전소가 가동 문제를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2년째 올 스톱 상태다.

주민들은 환경오염·유해물질·미세먼지 배출 우려로 생활폐기물로 만들어진 SRF 연료 사용을 반대하며 비싸지만 친환경적인 액화천연가스(LNG) 연료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는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따른 2007년 자원 순환형 에너지 도시 조성이라는 공익 목적으로 추진되고 탄생했다. 난방공사는 혁신도시의 열 공급을 위해 2700억원을 들여 LNG 및 SRF 열병합발전소를 준공했다.

이 발전소는 나주·순천·목포의 SRF 제조 시설에서 만든 고형 연료(SRF)를 공급받기로 협약을 맺고 고형 연료를 태워 만든 열을 1.6km 떨어진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에 공급하기로 돼 있었다.

2017년 9월 20일 시험 가동을 한 뒤 2018년부터 정상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지역 주민의 반대로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난방공사는 나주시가 시민의 환경권 문제 등을 이유로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2017년 12월 준공한 발전소를 아직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발전소 미가동 문제로 2018년 난방공사는 사상 최대인 226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미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SRF 발전소를 준공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와 약 15년간 SRF 공급 계약을 한 난방공사는 발전소를 매몰할 수도, 가동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두 가지 모두 운영 주체인 난방공사의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안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발전소 미가동 상태 장기화로 난방공사를 상대로 한 지자체들의 손해배상 소송전도 이미 시작됐다.
[르포] “쓰레기 발전소가 웬 말?”…환경 논란에 첫 가동도 못한 나주 SRF 발전소
◆ “쓰레기 발전 OUT” SRF 반대 현수막 즐비

가연성 쓰레기를 연료로 사용하는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전남 나주 혁신도시를 7월 31일 찾았다.

혁신도시에는 국내 최대 전력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인터넷진흥원·한국농수산물식품유통공사·국립전파연구원·한국농어촌공사 등 16개 공공 기관과 관련 기업들이 이전해 있다.

혁신도시 인구는 2018년 기준 3만 명을 넘어섰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근린 시설이 생겨나 정주 여건이 좋아지면서 인근 지역에서 오거나 공공 기관 임직원과 그 가족들의 이전으로 인구 유입이 늘었다.

LH·부영·중흥 등 아파트 단지 입구 곳곳에는 “타 지역 쓰레기 97%, 나주 쓰레기 3% 납득이 됩니까”, “쓰레기 연료(SRF) 시험 가동 즉각 중단하라”, “쓰레기 연료(SRF) 태우고 우리는 빛가람동 떠나고”, “다이옥신이 몰려온다. 기관장은 대책을 마련하라”, “뛰어노는 아이들에 생체실험이 웬 말이냐” 등 SRF 열병합발전소 가동을 반대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날 만난 혁신도시 주민들은 SRF 열병합발전소 가동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하나같이 낯빛이 어두워졌다. 특히 미취학 아동과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들의 발전소 가동에 대한 공포감은 상당했다. 이들은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유해 물질에 대해 크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난 주부 정 모 씨는 “SRF 열병합발전소는 쓰레기를 태워 발전하는 방식인데 각종 환경오염 물질 배출에 대한 대책이 없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혁신도시가 살기 좋다고 해서 몇 년 전 이사왔는데 발전소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부 서 모 씨 역시 “왜 우리 지역 쓰레기도 아니고 광주나 타 지역 쓰레기까지 받아서 쓴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60대인 남 모 씨는 “발전소는 이미 다 지어져 없애려면 큰 비용이 든다고 알고 있다”며 “지자체와 공기업이 운영하는 발전소이고 배출 기준을 정확하게 지키고 정화 시설을 갖췄다면 가동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적인 문제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발전소가 한전공대 유치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혁신도시 내 외곽 쪽에는 한전공대가 들어설 예정인 부영CC 부지가 있다. 한전공대 부지와 발전소는 1km 거리도 채 되지 않는다.

한 주민은 “한전공대 학생과 교직원들이 쓰레기를 태워 발전하는 발전소가 코앞에 있는 것을 달가워할 리 없지 않겠느냐”며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발전소를 가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논란이 환경오염과 유해 물질 배출 우려, 이해관계인 갈등 사이에서 장기간 표류하면서 주민들의 피로감이 상당한 상태다.

혁신도시 주민들은 2017년부터 ‘나주 열병합발전소 쓰레기 연료 사용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해 매주 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반대 집회를 열고 전남도청 앞 촛불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르포] “쓰레기 발전소가 웬 말?”…환경 논란에 첫 가동도 못한 나주 SRF 발전소
범대위 관계자는 “나주 역시 환경 기준에 부합하게 발전소 시설을 짓고 기준치를 넘으면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그 영향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라며 “하루 466톤의 SRF를 태우는 방식인데 최대 가동하면 20~30% 더 소각한다고 한다. 1년이면 양이 어마어마하고 1일 치는 환경 기준에 부합하겠지만 그게 누적되면 총량이 토양과 인체에 축적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발전소 문제는 정부의 미흡한 정책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난방공사 혼자 책임지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전남도·나주시 등 관련 기관들도 모른 체하지 말고 같이 대책 마련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공회전 거듭, 난방공사 손실 눈덩이

표류하는 발전소 가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난방공사·지자체·지역주민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현안 해결을 위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 위원회’가 꾸려져 지난 7월 기준 총 11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출범 8개월 차에 접어든 현재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이 문제가 정부 정책, 운영 주체인 난방공사와 각 지자체 간 계약 관계, 주민 동의 절차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자가 얽히고설켜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거버넌스 위원회에는 산업통상자원부·전남도·나주시·한국지역난방공사·나주 SRF 열병합발전소가동저지범시민대책위원회와 외부 전문가 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7월 30일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발표한 시험 가동, 환경영향조사, 주민 수용성 조사를 시행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난방공사가 거부하면서 다시 사태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날 발표된 잠정 합의안은 6월 27일 열린 10차 민·관 협력 거버넌스 회의를 통해 도출된 1차 합의안이다. 주민들은 잠정 합의안에 찬성하는 쪽이다. 하지만 난방공사는 손실 보전안에 대해 이뤄진 합의가 없다며 합의안을 거부한 상황이다.

난방공사는 7월 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마련한 시험 가동을 통한 정상화 방안에 대한 의결을 보류했다. 손실 보전 방안이 반영되지 않은 합의안을 이사회에서 승인하면 배임 문제와 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난방공사 측은 그동안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통해 손실 보전안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으나 최대 현안인 시험 가동, 환경영향조사, 주민 수용성 조사 실시부터 먼저 논의하고 손실비용 문제 해결을 단계별로 협의해 나가자는 요청 때문에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르포] “쓰레기 발전소가 웬 말?”…환경 논란에 첫 가동도 못한 나주 SRF 발전소
난방공사 신재생에너지부 관계자는 “난방공사는 손실 보전책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조건부 LNG’에 대해 어느 정도 결정 된 다음 주민투표를 해야 하는데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발표한 잠정 협의안에는 주민 수용성 조사를 벌인 뒤 결과가 LNG 사용으로 나오면 그때 손실비용을 얘기하자고 돼 있었다”며 “원칙에 어긋나고 난방공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어서 이사회가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난방공사가 주장하는 ‘조건부 LNG’ 안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매몰되는 시설에 대한 보상비용, LNG만 연료로 사용하게 된다면 난방공사의 운영 손실 보상 문제와 지자체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다.

난방공사가 SRF 열병합발전소를 지으면서 이미 지자체로부터 SRF를 가져오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매몰로 계약 사항을 이행하지 않게 되면 변상해야 할 손해배상 의무가 생긴다. 이 때문에 손실비용 문제 논의가 제외된 민·관 협력 거버넌스의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난방공사의 주장이다.


◆ 천덕꾸러기 전락한 SRF 발전소

난방공사가 손실 보전안이 없다는 이유로 합의안에 반기를 들자 주민들도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다시 거리로 나왔다.

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반대·등교 거부를 위한 학부모 모임은 8월 1일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난방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조건 없는 ‘거버넌스 1차 합의안 수용’을 강력하게 촉구하며 2학기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등교를 전면 거부하는 등교 거부 투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범대위 관계자는 “정치인들은 법과 제도가 잘못됐으면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하며 “주민들이 추운 날 더운 날 가리지 않고 거리 집회를 하면서 왜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잠정 합의안을 통한 최종 합의 불발로 사태가 또다시 꼬이면서 난방공사도 근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발전소를 장기간 가동하지 못하면서 생긴 누적 손실액은 2019년 7월 말 기준 310억원에 이른다.
[르포] “쓰레기 발전소가 웬 말?”…환경 논란에 첫 가동도 못한 나주 SRF 발전소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LNG 방식을 사용하면 해마다 손실비용으로 140억원이 발생하고 다른 지자체에 손해배상 비용 등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광주 지역만 연간 180억원의 손해를 배상할 것으로 추산된다.

계약 기간 15년을 더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요금의 인상도 불가피하다.

난방공사 관계자는 “발전소가 건설 단계라면 정리할 수 있지만 준공 상태에서는 모든 기관과 촘촘하게 연계한 각종 시스템이 계약된 상태에서 준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정리할 수 없다”며 “이미 준공된 상태에서 가동을 못하게 하니 막대한 손실비용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초 계획대로 SRF 시설을 가동하지 못하면 그 원인 행위자에게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SRF 발전소는 현재 혁신도시 외곽에 있지만, 도시계획부터 혁신도시 안에 설계될 예정이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호혜원에 오폐수가 고여 있던 곳을 전남도가 산업단지로 다시 리모델링 하면서 발전소가 혁신도시가 아닌 산업단지에 들어갔던 것이다.

난방공사 관계자는 “과거 호혜원에서 발생되는 축산 악취로 혁신도시 정주 환경이 좋지 않다는 민원이 많아서 공공성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발전소 부지가 현재 위치로 변경된 것”이라며 “환경 문제로 외곽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건립 당시 환영 받으면서 들어갔다”고 말했다.

발전소가 나주 지역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데에는 달라진 환경 정책도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SRF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았다.

당시 정부에서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면서 민간 사업자들이 이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었고 그 결과 나주, 청주, 대구, 포항, 원주, 전주 등 전국에서 SRF 시설을 놓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달라진 정책 등의 영향으로 각 지역의 골칫덩이가 돼 버린 것이다.

발전소 가동 여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다고 해도 해결 과제가 산적하다. 발전소 미가동에 따른 천문학적인 손실비용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문제지만, 쓰레기 대란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SRF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을 경우 인근 4개 지자체는 쓰레기 해결을 위해 소각장을 지어야 하는데 이 문제 역시 이해당사자 간 협의가 쉽지 않다. 각종 오염물질과 미세먼지 배출로 당연히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SRF 발전소 가동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이후 또 다른 지역·주민 갈등 가능성이 농후하다.
[르포] “쓰레기 발전소가 웬 말?”…환경 논란에 첫 가동도 못한 나주 SRF 발전소
충남 내포신도시는 SRF 열병합 발전소를 지으려다가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2018년 9월 LNG로 연료를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내포신도시의 매몰비용은 1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발전 시설 착공 전에 연료 전환 결정이 나온 내포신도시와 달리 나주 SRF 발전소는 이미 다 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매몰비용이 내포신도시의 5~6배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난방공사 관계자는 “딱 끊어서 정리가 되면 공공성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지만, 발전소 가동 문제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슬로 연결돼 있어서 문제 해결이 굉장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난방공사가 1차 합의안 수용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가 또 다시 도돌이표를 거듭하자 범대위는 거버넌스 탈퇴를 시사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결국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답보 상태에 빠진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공인 기관을 통해 배출 성분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차인수 동신대 에너지전기공학부 교수는 “주민들에게 전문가와 기관 관계자들이 발전소 가동이 환경과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가 공인 기관을 통해 SRF를 연소시켜 어떤 물질이 얼마나 배출되고 환경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 사례는 어떤지 데이터를 주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측정 결과 환경오염 물질이 많이 나온다면 과감하게 발전소를 폐쇄하는 게 맞고 기준치 이하로 나온다고 해도 무해한지 따져봐야 한다”며 “결론적으로 지역 주민이 소외감 느끼지 않는 차원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6호(2019.08.05 ~ 2019.08.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