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하고 ‘썸’도 타고 미드처럼 펼쳐지는 ‘백악관 리얼 스토리’

[서평]유쾌발랄 백악관 속기사와 함께 여름휴가를
◆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벡 도리-스타인 지음 | 이수경 역 | 한국경제신문 | 1만5800원

[한경비즈니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8월의 시작이다. 새로 넘어간 달력이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을 알린다. 그리고 이맘때면 인사말 목록에 새로 추가되는 몇 가지가 있다. “언제 휴가 쓰세요.” “휴가 때 어디 가세요.”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무릅쓰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휴가 때 무슨 책 가져가세요.” 맞다. 뚱딴지같은 질문이다. 어떤 이는 고민과 걱정은 다 내려놓고 한없이 즐거워야 할 여름휴가에 따분하게 무슨 책이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가만 보면 여름휴가를 맞아 떠나는 여행은 책 읽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오가는 데 드는 긴 시간만 해도 책 한 권은 너끈하다. 문제는 어떤 책을 고르느냐다. 막상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일과 관련한 책을 가져가자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갑갑해지고 공부 목적의 어려운 책을 들고 가는 것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휴가 차 떠나는 여행에서만큼은 ‘미드’나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다양하게 즐거움을 주는 책이 아무래도 제일이다.

한 젊은 직원의 눈을 통해 바라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는 여름철 여행지에서 읽을 책으로 제격이다. ‘사실 이것은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근무하는 일입니다’로 시작되는 e메일 한 통으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회사에서 타이피스트를 뽑는다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백악관의 속기사를 뽑는 공고였던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이자 이 책의 저자 벡 도리-스타인이 실제 겪은 일이다. 그렇게 그는 5년간 백악관에서 일하게 된다.

벡 도리-스타인이 그려낸 백악관에는 암투·비리·폭로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변의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핑크 슈즈를 신고 자신의 방식으로 일하고 우정과 사랑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는 백악관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달콤하고 따뜻하며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되레 ‘하우스 오브 카드’로 접한 백악관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하기야, 백악관 생활도 여느 직장 생활과 다르지 않은 점이 한두 개는 있지 않겠는가. 처음 만난 동료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우정이 싹트고 그중 누군가와 ‘썸’을 타고 연인이 되고 헤어지는 일의 반복….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기대와 설렘, 실망과 상처 사이에서 하루하루 성장해 간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에서 벌어지지만 오히려 특별하지 않아서,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잡아당긴다.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와 청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이야기가 책의 한쪽 면이라면 다른 한쪽 면은 그녀와 발걸음을 함께하는 세계 여행기 또는 오피스 드라마다. 인도·캄보디아·미얀마·탄자니아,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멕시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떠나는 출장길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모든 직원과 친근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TV 화면에서 보던 나렌드라 모디, 아웅 산 수지, 조지 W. 부시의 모습이 아닌 진짜 캐릭터를 엿볼 수 있다.

에어포스 원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고 오바마 대통령 옆자리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발랄한 저자의 ‘백악관 여행기’는 읽는 이에게 여행 속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고 어느새 자신도 에어포스 원 안에서 오바마와 마주치는 상상을 선물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7호(2019.08.12 ~ 2019.08.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