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소송으로 시작된 노후 차 운행 금지, 판결 불복에 항소도 많아
독일, 정부의 ‘디젤차 옹호’ 속 지자체 운행 규제는 제각각
[베를린(독일)=박진영 유럽 통신원] 최근 독일 베를린시는 도심 일부 구간에서 기준치 이상의 배기가스를 방출하는 디젤차 운행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도심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조치로 유럽연합(EU)의 배기가스 기준인 유로5 이하의 디젤차가 그 대상이다. 오는 9월부터 베를린의 주요 도심을 통과하는 9개 거리가 운행 금지 구역으로 적용된다.

이러한 베를린시의 결정은 다른 독일 주요 도시에 비하면 그리 이른 편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이미 지방법원들이 획기적인 대기 질 개선을 위해 디젤차 운행 금지가 필요하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일정 배기가스 기준 이하 디젤차의 도심 운행을 금지하는 도시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함께 베를린은 주요 도심을 포함한 33개 거리의 최고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고 연말까지 버스를 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도록 전환하는 등 환경 개선을 위한 추가적 조치도 내놓았다.

◆디젤차 규제에 일관되게 보수적인 독일 당국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온 낡은 디젤차의 운행 금지 문제는 지난해 초 한 환경 단체의 행정소송으로 본격화됐다. 독일환경행동(DUH)이 슈투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시 당국을 상대로 낡은 디젤차의 운행 금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대기 질 개선 계획이 미흡하다며 행정소송을 냈고 법원이 1심에서 환경 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

법원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의 통행금지가 대기 질 개선을 위해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판결에 대해 시 당국은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환경 단체가 이겼다.

이 일이 있기 전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 중인 슈투트가르트시 당국은 일찌감치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세웠지만 디젤차 소유자들의 반발과 시민들의 부담 증가를 고려해 운행 금지보다 디젤차의 소프트웨어 개선이 우선이라는 방침으로 선회한 바 있다.

이처럼 환경 단체가 낡은 디젤차의 운행 규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간 독일 정부의 태도가 디젤차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 후 전국적으로 노후 디젤 차량의 운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모든 운전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들과 향후 조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태도는 일관된 것이었다. 2017년 총선 과정에서 2015년 터진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쟁점화됐을 때도 “디젤엔진을 악당 취급해선 안 된다”며 ‘디젤차 옹호’ 주장을 편 뒤 2020년까지 전기차를 100만 대 보급한다는 기존 정책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메르켈 총리의 이러한 반응은 디젤차에 강점을 가진 독일 자동차 산업과 디젤차 소유주인 유권자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메르켈 총리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 소속인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 또한 도심에서 디젤차의 운행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방침뿐만 아니라 디젤차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 폐지에도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는 등 당국은 일관되게 디젤차를 보호해 왔다. 각 내각의 당국자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슈투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에 대한 연방행정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DUH는 지속적으로 다른 도시들에 대해 같은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이에 일부 도시 등은 일부 구간의 노후 디젤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도시가 함부르크다. 함부르크시 당국은 지난해 6월부터 일부 도로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기준치 이상인 노후 디젤차는 운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금지 대상은 EU 배기가스 규제 단계 중 유로6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으로, 당시 함부르크에 등록된 차량 중 16만8000대가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규제가 이뤄진 두 개 도로 중 한 곳은 트럭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도심 내 거주자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등 미미한 조치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불복 선언한 지자체들…국가도 항소 방침

법원의 관련 판결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환경 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1월께 도심뿐만 아니라 도심을 통과하는 고속도로에서도 노후 디젤차를 금지한다는 판결이 내려져 주목 받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공업도시인 에센을 통과하는 A40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낡은 디젤 차량 운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 법원은 각각 시행 일시를 2019년 7월과 9월로 하고 배출가스 기준 유로4와 유로5 디젤차의 운행 금지를 결정했다.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일부 도시들 역시 올 들어 디젤차 운행 규제에 가담하는 모양새다. 독일 내에서 공기 오염이 가장 심각한 슈투트가르트는 법원 결정이 있은 지 1년여 만인 올해 4월부터 노후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금지 대상은 EU의 배기가스 기준 유로4 이하 차량으로 도심 내 거주자도 규제 대상에 해당된다. 슈투트가르트시는 유로5 차량에 대해서도 올해 배기가스 배출 결과를 검토한 뒤 금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에 관련 규제를 결정, 9월 시행을 앞둔 베를린시와 본·다름슈타트·에센·겔센키르헨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행정법원 명령 등에 따라 일부 구간에서 일정 기준을 총족하지 못하는 디젤차에 대한 운행 규제를 시작했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일부 도시는 행정명령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이뤄지지 않거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등 각 시 당국 간 시각차가 명확하다. 지난해 슈투트가르트시와 함께 법원으로부터 노후 디젤차 운행 금지 판결을 받은 뒤셀도르프는 여전히 관련 계획이 도입되지 않고 있고 프랑크푸르트 역시 법원 명령에 의해 구형 디젤차 운전이 금지됐지만 시 당국이 판결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면서 디젤차 운행 규제는 사법기관의 최종 판단이 있을 때까지 중단된 상태다.

뮌헨 바이에른 주 정부 또한 최근 2년간 공기 질이 크게 향상됐다는 사실로 디젤차 운행 규제 거부를 정당화하며 위약금 지급을 받아들일 예정이다. 쾰른 시도 올 4월과 9월 각각 기준치가 다른 차량에 대해 운행 금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관할 정부는 이에 반대하기로 결정했고 국가 역시 판결에 항소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8호(2019.08.19 ~ 2019.08.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