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한·일 무역 갈등을 ‘타산지석’ 삼아야…ICO 제도 확립하고 합의 알고리즘 개발할 때


[한경비즈니스=유성민 동국대 국제정보호대학원 외래교수] 국내 경제 상황은 무역 갈등으로 시끄럽다. 대외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내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한·일 간 무역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블록체인도 ‘원천 기술 확보’가 미래 경쟁력
일본은 8월 2일 한국을 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8월 7일 공식적으로 공표한 상황이고 효력은 8월 28일부터 발생한다. 백색 국가는 일본이 우방국에 제공하는 수출 특혜다. 한국을 제외하면 26개국이 명단에 포함돼 있는 셈인데 해당 국가는 수출 허가를 3년 단위로 하는 특혜를 받는다. 한국은 이러한 명단에 제외됐기 때문에 6개월 단위로 받아야 한다.


심사 기간이 통상 90일임을 고려하면 한국 기업에는 수출 허가 심사가 상당히 번거로워졌다.
물론 한국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한국은 8월 12일 일본을 백색 국가 명단에 제외한다고 밝혔다. 정리하면 한·일 무역 전쟁은 일본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발 방식이 어처구니없다. 무역 전쟁은 보통 무역 보호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수입 규제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일본은 수입 규제가 아닌 수출 규제를 선택했다.

갑을 관계를 생각해 보자. 이상적으로는 두 관계는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갑이 우세하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일본의 무역 도발은 을이 갑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일본은 한국의 기술 수준을 얕잡아 보고 오히려 특정 물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식당 주인이 손님을 내쫓는 격이다. 반도체 기술과 시장이 그만큼 일본에 의존적이었던 것이다.

한국은 이번 사건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사업과 기술 측면에서 특정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이는 블록체인 산업에도 해당한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은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블록체인 선도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술 수준에서 다른 국가에 얕잡아 보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국내 블록체인 상황은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 블록체인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다른 국가에 그냥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공개(ICO)와 합의 알고리즘이 이에 해당한다. 참고로 전자는 사업 기반에 해당하고 후자는 기술 기반에 해당한다.
블록체인도 ‘원천 기술 확보’가 미래 경쟁력
ICO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 돼
ICO는 블록체인 산업의 주요 화두다. 블록체인 기업 종사자라면 ICO를 원할 것이다. ICO만큼 명확한 블록체인 사업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추크를 떠올려 보자. 추크는 ‘크립토 밸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암호화폐와 ICO 산업이 크게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블록체인으로도 유명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암호화폐와 ICO와의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블록체인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암호화폐와 ICO를 육성해야 한다. 암호화폐와 ICO를 무분별하게 허가하자는 뜻이 아니다. 실증 사업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고 규제를 만들어 나가자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특히 ICO는 무조건 반대하고 본다.

정부는 7월 23일 부산시를 블록체인 자유특구로 지정했다. 부산시는 해당 지정을 통해 블록체인 산업 규제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ICO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필자만 느낀 게 아니다. 해외 여러 언론사도 이러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코인데스크는 부산 블록체인 자유특구를 완전한 규제 완화로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비트코인니스트는 부산 블록체인 자유특구는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 크립토브리핑, 크라우드펀딩 인사이더, 더 머클 해시 등이 부산의 블록체인 자유특구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유는 ICO를 규제 자유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블록체인 기업이 해외 법인 설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BS&C는 2017년 10월 자회사로 ‘에이치닥(Hdac)’을 설립했다. 에이치닥은 블록체인 전문 기업이다. 에이치닥은 설립 당시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ICO도 성공적이었다. 에이치닥은 2017년 12월 ICO로 1만6786개의 비트코인을 모집했다. 이는 당시 시세로 3억 달러(약 360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는 2018년까지 기준으로 다섯째로 큰 ICO 성과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에이치닥은 스위스 법인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 보면 현대BS&C는 매국노 기업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국이 ICO를 반대하는 사실을 알면 이해가 갈 것이다. 현대BS&C는 ICO를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해외 법인 설립 말고는 답이 없었던 셈이다.

해외 법인 설립은 블록체인에서 낯설지 않다. 블록체인 전문 기업이 ICO를 발행하기 위해 해외 법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업 ‘더루프’는 스위스 추크에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ICO 발행 때문이다. 더루프는 2017년 9월 스위스 법인 자격으로 ICO를 발행했고 15만 이더리움을 모집했다. 당시 시세로 약 45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 밖에 메디블록·한빛소프트·직토·거번테크 등 블록체인 기업이 해외 법인을 설립해 ICO를 발행했다. 심지어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도 일본에 법인을 설립해 ICO를 추진하고 있다. 라인에서도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라인은 알다시피 일본 법인이다. 거대 정보기술(IT) 두 기업이 일본을 기반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셈인데 블록체인 ICO 또한 반도체 산업처럼 일본에 의존할 위험이 충분히 있다.

물론 국내 블록체인 기업이 해외 법인 설립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국내 ICO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지난해 10월 ICO 클럽을 발족했다. 에이치닥·메디블록·글로스퍼·더루프 등이 창립 기업으로 참여했다. 목적은 국내 ICO 생태계 확산이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이 이처럼 ICO에 목을 매달면 정부는 이를 들어줄 법만도 하다. 산업의 요구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ICO 전면 개방이 아니다. 실험적으로 추진해 보자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위험 요인을 제거하자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스위스·러시아·일본 등에서 ICO 규제를 찾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이에 따라 ICO 생태계가 자리 잡게 되는 날 국내 블록체인 산업은 다른 국가에 밀릴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블록체인 사업 기반인 ICO를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블록체인도 ‘원천 기술 확보’가 미래 경쟁력
합의 알고리즘 경쟁력 강화 필요
사업 기반뿐만 아니라 기술 기반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원천 기술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 그러면 블록체인의 원천 기술은 무엇일까. 당연히 ‘합의 알고리즘’이다. 인공지능(AI)의 원천 기술이 기계 학습 알고리즘인 것처럼 말이다.

AI는 인위적으로 만든 지능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능은 알고리즘에 의해 구현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기계 학습은 시스템의 학습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지능을 구현할 수 있게 한다. 정리하면 기계 학습은 시스템을 학습시키고 지능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AI의 경쟁력이 지능 수준임을 고려하면 기계 학습은 원천 기술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블록체인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합의 과정을 거쳐 데이터 무결성을 보증하는 플랫폼 기술이다. 합의 알고리즘이 이를 동작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합의 알고리즘 구현에 따라 블록체인 무결성과 가용성이 달라질 수 있다. 합의 알고리즘 수준이 블록체인 경쟁력이 되는 셈이다.

물론 공개된 합의 알고리즘을 가져다 쓰면 된다. 수많은 합의 알고리즘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다. 작업 증명 알고리즘(PoW), 지분 증명 알고리즘(PoS), 용량 증명 알고리즘(PoSP), 권한 증명 알고리즘(PoA) 등 수백여 개의 알고리즘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블록체인 선도 국가라면 다른 국가에 인정받는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합의 알고리즘은 해외에서 개발된 것이다.

다행히 지금도 늦지 않았다. 블록체인은 신생 기술이기 때문에 보완할 부분이 많다. 합의 알고리즘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블록체인 산업은 트릴레마를 풀 수 있는 합의 알고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이 이러한 합의 알고리즘을 최초로 구현한다면 기술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트릴레마는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최초로 언급한 개념으로, 현재 모든 블록체인이 3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3가지 요소는 확장성·탈중앙성·보안성이다.

블록체인 산업은 한·일 무역 갈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블록체인 선도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기반 사업과 기반 기술의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ICO 생태계 활성화 연구와 트릴레마를 해결할 합의 알고리즘 발굴이 시급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9호(2019.08.26 ~ 2019.09.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