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시작만큼 중요한 협상의 마무리…협상에 동의할 ‘타이밍’ 찾는 것도 중요

노련한 협상가는 동의하는 표현도 ‘전략적’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합의를 목적으로 시작한 협상의 끝에는 ‘타결’과 ‘결렬’이 있다. 타결은 상대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시점에서 결정된다. 반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결렬을 고려해야 한다.


◆‘어설픈 타결’보다 협상 포기가 낫다





먼저 협상의 결렬부터 살펴보자. 협상의 결렬에는 협상 연기와 포기가 있다. 협상의 연기는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상태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할 때 일단 냉각 기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세세한 조건에 매달리기보다 넓고 긴 안목으로 보면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는 얘기다.


이 카드는 협상을 그만두기에는 아깝다고 판단될 때 사용하면 좋다. 그렇다면 언제 협상을 포기하는 것이 최선일까.


첫째, 상대가 당신의 마지노선을 강요하거나 원리원칙을 허물려고 할 때다. 불법행위를 해야 한다든지 회사의 규칙을 위반해야 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는 당신이 가진 다른 대안보다 좋지 않은 조건일 때도 협상을 멈춰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신뢰가 가지 않을 때도 협상을 그만둬야 한다. 상대방이 협상을 이행할 능력이 없어 보이거나 비현실적인 이익과 운이 좋기를 기대하는 합의는 위험하다. 이때는 한 걸음 물러서 현실성 여부를 따져 봐야 한다.


그들이 정말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혹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자신이 계속 재촉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 답변이 ‘글쎄’, ‘아마도’라면 협상을 멈춰야 한다.


셋째,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문제가 예상될 때도 협상을 멈출 필요가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 저녁 식사 후의 아이스크림은 순간적으로 달콤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검진을 할 때 약간의 죄의식이 느껴질 수 있는 것과 같다.


단언하건대 ‘위험한 합의’나 ‘어설픈 타결’보다 협상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결렬이라는 심리적 부담 그리고 조직에서 받게 될지도 모르는 비난이 두려워 마지못해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과감히 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뜰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협상가다. 계속 진행해 봐야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면 결렬을 선언하는 것이 백 번 낫다. 무의미한 협상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서로를 지치게 만들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언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협상에 동의하고 “예스”라고 말해야 할까.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고 당신에게 더 매력적인 대안이 있다면 끝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을 때는 그 타이밍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상대 제안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울 때 그것을 수락하고 협상을 마무리해야 할까, 아니면 더 나은 조건을 위해 더 밀어붙여야 할까. 협상에 동의하며 “예스”를 말해야 할 타이밍 그리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협상 성공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상대가 제안한 조건이 썩 괜찮아 보인다. 이때 “예스”라고 말할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거래를 결렬시키지 않고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이를 시험해 보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 제안보다 더 나가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105km로 달린다고 해도 속도위반으로 걸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운이 좋아 시속 115km까지도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시속 120km를 넘긴다면 자신의 운을 과신하는 것이다.


◆협상에서 “예스”를 표현하는 4가지 방법


협상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제한선은 가늠하기 어렵다. 물어 본다고 상대가 순진하게도 밝힐 리 없으므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이를테면 의사결정 트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수락하는 것과 수정 제안하는 것으로 일단 나눈다. 그리고 수정 제안한다면 상대가 수용할지 거절할지 아니면 제안 개선을 요청할지 등 경우의 수로 나눠 보는 것이다.


그다음 다른 선택, 즉 상대 제안을 그대로 수락하는 대신 추가 조건을 붙이는 방안이 있다. 예를 들어 “네, 좋습니다. 그대로 하시죠. 그런데 애프터서비스 기간을 6개월 늘리는 것은 어려울까요”라고 넌지시 다른 조건을 슬쩍 걸어 보는 것이다. 이 선택의 결과는 상대의 반응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더 나을 수도, 더 나쁠 수도, 아니면 동일할 수도 있다. 선택 방안이 현실화될 확률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잃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을 비교하면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조건을 추가로 요구할 때 상대 또한 당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협상은 상호작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를 물고 늘어지려고 한다면 그에 따른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협상에 동의하며 “예스”라고 말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상대 제안을 수락하는 것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다르다. 단순히 동의한다는 것 이상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노련한 협상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 표현 방법을 사용한다. 이 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아래 네 가지를 서로 비교해 보자.

(1)“그래요. 정말 좋습니다. 이 거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셨고 저도 최고의 거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좋습니다.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시죠. 감사합니다.”

(3)“아주 좋아요. 거래가 성사됐네요. 마지막 한 가지 문제만 도와준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4)“좋아요! 월말까지 납품해 주신다면 거래는 성사된 겁니다.”


(1)은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상대가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대한 감사다. 이는 상대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협력 관계의 기초를 다지는 데도 도움이 된다.


(2)는 (1)보다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서는 상대가 당신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상대에게 유리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승리감을 주기 때문에 당신에게도 유리하다. 그렇지 않고 밋밋하게 감사의 표시만 한다면 상대의 상사나 고객이 추가 협상을 해오라고 지시할지도 모를 일이다.


(3)은 양다리 전술을 보여준다. 거래 결렬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더 나은 거래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거래가 성사됐다는 것을 명확히 한 뒤 “마지막 한 가지 문제를 도와달라”고 말하면 이 문제는 거래 성사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부탁’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그 부탁은 들어줄 수도 있고 안 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은 해 둘 필요가 있다.


(4)는 조건부 거래 성사를 의미한다. 거래가 완벽하게 성사된 것은 아니고 마지막 조건을 수락할지 아닐지를 결정해야 한다. 상대가 이 조건에 동의한다면 더없이 좋다. 물론 이 마지막 장애물이 큰 문제일 수도 있고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표현은 협상 전체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조건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때로는 상대방을 승자로 만들어라


이같이 “예스”를 말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위의 네 가지 방법은 각각 다른 스타일과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향후 거래를 기대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상황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가 어떤 형태이냐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협상에서의 대화는 언제나 전략적이어야 한다.


합의를 도출하고 협상을 마무리할 때는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여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잃을 수도 있다. 상대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물어서 손해 볼 일이 없는 문제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될 문제도 있을 것이다.


결국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서 더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계속 밀어붙이면 곤란하다. 협상에 이런 말이 있다. “거래에 걸린 돈을 당신이 다 가지려고 하지 마라. 당신이 모든 돈을 다 가져간다는 소문이 돌면 당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감각이 뛰어난 노련한 협상가들은 자신이 지나치다 싶을 때를 감지하고 거래가 결렬되기 전에 한 발짝 물러난다.


최종 합의를 하기 전에 타결 조건이 과연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는 절차도 놓치지 말자. 당초 목표와 비교해 보는 것은 기본이다. 아마 대부분이 달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기치 않았던 변수가 있고 상대에게 일부 양보는 불가피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합의 전에 점검해 봐야 하는 포인트는 당신의 흥미(iterest)를 충족시켰는지 그리고 당신이 가진 대안(BATNA)보다 나은 조건인지 복기해야 한다. 흥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노련한 협상가는 동의하는 표현도 ‘전략적’


협상이 이제 끝나간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이때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승리했다고 상대가 보는 앞에서 만족감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이나 의사 표명을 하는 것이 좋다.


협상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몇 가지 대목 중 하나다. 승리의 쾌감은 잠시 접어 두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상대방 역시 좋은 거래를 했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이번 협상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회사에 돌아가면 질책 받을 것 같아요” 또는 “우리에게 이런 조건은 처음입니다. 특별히 이번에만 허용한 겁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 측이 많이 양보했다는 것을 각인시킬 수 있다. 최고의 협상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거래를 성사시키지만 상대방 역시 매우 멋지게 해냈다고 믿게 만들어 준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