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근로기준법 개정안…시행 시기 늦추는 ‘속도 조절 법안’ 잇달아 제출 불구 논의 한 발짝도 못 나가
與·고용부·노조에 막힌 주52시간 근무제 보완법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국회에 주52시간 근무제 보완 법안들이 30여 개 제출돼 있다. 지난 7월 1일부터 상시노동자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근무제가 전면 시행된 뒤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기술(IT)·건설·전자 등 특정 시기에 초과근무가 필요한 산업 현장에서는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기업들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건비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고 위반 시 불법 사업자로 낙인 찍혀 사법 처리까지 받아야 하는 위험도 안고 있다.

내년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순차적으로 확대되면 중견·중소기업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이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이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생산을 줄이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답했다. 노동자들도 초과근무·특근수당 등을 받지 못함에 따라 소득이 감소하면서 ‘투잡’에 내몰린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주52시간 근무제를 속도 조절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한 배경이다.

아무런 정책적 보완 없이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일자리 축소와 범법자 양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까지 겹쳐 어려움이 가중되는 기업의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 “보완 없이 주52시간 시행은 일자리 축소·범법자 양산”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제3정조위원장은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 직종을 주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업 특성에 따른 사유로 추가적인 연장 근로가 불가피한 경우와 자연재해·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송석준 한국당 의원은 노동능력과 노동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 적용을 예외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곽대훈 한국당 의원은 시·도별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원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주52시간 근무제 속도 조절을 위해 적용 대상 사업장을 세분화하고 도입 시기를 연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300명 미만 사업장의 주52시간 근무제 적용 시기를 규모에 따라 1년에서 3년까지 늦추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라 300명 이상 사업장은 이미 지난 7월부터 적용됐다.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5명 이상 50명 미만은 2021년 7월 1일부터 각각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야 한다.

개정안은 300명 미만 사업장의 규모를 세분화해 △200명 이상 300명 미만은 2021년 1월 1일부터 △100명 이상 200명 미만은 2022년 1월 1일부터 △50명 이상 100명 미만은 2023년 1월 1일부터 △5명 이상 50명 미만은 2024년 1월 1일부터로 시행 시기를 각각 늦추도록 했다.

예를 들어 직원 55명이 일하는 회사는 현행법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될 예정이지만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2023년으로 3년 늦춰진다.

이 의원은 “주52시간 근무제가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됐지만 일선에선 아직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특히 대기업에 비해 노동조건이나 재무 상태가 취약한 중소벤처·소상공인들은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행과 같이 법이 적용된다면 일자리 축소와 범법자 양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법안 마련 취지를 설명했다.
與·고용부·노조에 막힌 주52시간 근무제 보완법
◆ 기재부 “유연하게”·고용부 “연기하면 노동정책 흔들려”

추경호 한국당 의원도 기업 규모별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시기를 늦추는 법안을 제출했다. △노동자 10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1년 1월 1일 △50명 이상 100명 미만은 2022년 1월 1일 △5명 이상 50명 미만은 2023년 1월 1일로 각각 연기하는 것이다.

노동자 30명 미만의 사업장에 대한 특별 연장 근로 제도를 2023년 1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추 의원은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제도를 갑작스럽게 도입해 제도 시행에 대한 준비가 여전히 미흡한 상태”라며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생산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오르면서 기업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의 임금 총액이 감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완적 개선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보완 법안들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민주당 내에서 시행 시기 연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라는 당직을 맡고 있고 법안 발의에 최운열 제3정조위원장 등 일부 당직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당론을 거치지 않고 개별 의원들 소신에 따라 법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도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데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입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국가 위기를 빌미로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 역행하는 주52시간 근무제 유예 법안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여당 일부 의원은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은 주52시간 근무제 관련 완화 법안을 발의했다”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부분을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석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변인은 “일본의 무역 규제를 핑계 삼아 궁색한 노동 개악 끼워 넣기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재계는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저임금에 따른 사회 갈등을 보면서 주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보완책을 좀 더 서둘러 마련해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도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시간 단축까지 겹쳐 기업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를 보완하는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8월 20일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시기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건의서를 정부에 전달했다. 경총 관계자는 “산업구조와 기업의 대응 능력을 감안할 때 주52시간 근무제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내에선 경기 하강을 막고 일본의 수출 규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유연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주52시간 근무제 관련) 업종별 특성이 있어 유연성을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시기 연기에 대해 “노동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8월 20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이 주52시간 근무제 연기를 당론으로 추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주52시간 근무제를 통으로 연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주52시간 근무제 보완 입법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