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세계 어디에서든 사고팔 수 있는 ‘디지털 금’…기관투자가의 포트폴리오 편입 본격 개시
왜 블록체인보다 비트코인이 먼저인가
(사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7월 18일 열린 비트코인 선물 출시 기념식에서 연설 중인 켈리 뢰플러 백트 최고경영자(CEO)./트위터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비해 중요도가 평가절하되고 역기능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비트코인은 사기지만 블록체인은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기술로 취급 받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따라 일반 대중과 기득권은 일단 비트코인에 거부감부터 느낀다. 그리고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비트코인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하다고 자처하는 알트코인 관련 생태계 조성에 열을 쏟는 양상이다.

빠르게 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용의주도하게 비트코인 관련 신사업을 진행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모습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국내 상황과 큰 괴리가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현상에 대해 개방적이고 수준 높은 담론이 형성돼야 할 때다.

다소 급진적인 발상인 것은 알지만 한국도 이제 블록체인보다 비트코인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는 개인·기업·정부 등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이 주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자 밖에서 사고’ 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며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야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앞으로 ‘한국이 블록체인보다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은 개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평범한 개인은 사실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 권력을 분산하고 탈중앙화를 실현할 기술, 비트코인의 사상적 토대가 된 사이퍼 펑크 등 따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개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비트코인에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는지 여부다. 그러면 언제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모른다.


기관용 비트코인 인프라 ‘백트’ 9월 출범

여기에 비트코인에 대해 좀 더 알고 있다면 다음이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이 주류가 인정하는 디지털 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비트코인이 전통 금융권이 취급하는 금융자산이 될 수 있을까. 분명 그렇다.

마지막 질문에 내가 이처럼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암호 자산 관련 규제와 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월가의 전통 금융회사들 역시 비트코인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보유한 ICE는 스타벅스·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제휴해 2018년 기관용 비트코인 인프라 백트(Bakkt)를 출범했다. 출범 후 1년이 지난 최근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9월 23일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인 백트는 비트코인 실물 인수도 방식의 매매·수탁·결제 솔루션을 제공한다. 백트의 비전은 비트코인이 밀레니얼 세대의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적법한 금융자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참고로 ICE의 최대 라이벌 나스닥 또한 백트와 유사한 형태인 에리스 X에 투자하며 비트코인 기관 인프라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면 비트코인에 대한 실제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있을까.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2개월 전까지만 해도 기관투자가가 암호 자산을 채택할지 여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답을 알고 있다. 기관투자가로부터 매주 2억~4억 달러(2428억~4856억원)의 새로운 자금이 예치되고 있다.”

글로벌 자산 운용사 피델리티 역시 기관투자가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코인베이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피델리티가 2019년 5월 400곳 이상 미국 소재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2%는 이미 암호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40%는 향후 5년 내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 자산 투자에 열려 있다고 답했다.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비트코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된다면 어떻게 될까. 회계·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펀드 자산의 운용 자산(AUM : Asset Under Management)은 111조2000억 달러(약 13경5000조원)다. 이 중 1%의 자금이 비트코인 시장에 신규 유입된다면 1조1000억 달러(1357조 원)다. 참고로 2017년 말 암호자산 시장의 버블이 최고치였을 때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3000억 달러(364조1700억원)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양적 완화 이후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 버블이 심화된 이때 마땅한 신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비트코인에 쏠리는 이유다.

기관투자가는 왜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바로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 때문이다. 복수 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주식·채권·상품·법정화폐·금 등 다른 자산군과 가격 연관성이 거의 없다. 즉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하는 멀티 애셋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추가하면 위험을 낮추고 기대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주식·채권과 같은 전통 자산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는 환경에서 기관투자가가 새롭게 부상한 대체 자산인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트코인의 ‘리스크 헤지’ 기능 주목해야

또 영리한 기관투자가는 비트코인이 글로벌 리스크의 헤지 수단으로서 지니는 잠재력도 고려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비트코인은 위기에 강했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 키프로스 사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그리고 최근의 미·중 무역 전쟁까지 비트코인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가격이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리스크 헤지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금융 인프라가 열악하거나 치안이 불안정한 국가에서 환 헤지, 인플레이션 헤지 역할을 하며 일종의 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정화폐 가치가 불안정하고 치안이 불안정한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비트코인이 대안적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반(反)중국 시위가 심화되고 있는 홍콩에서는 비트코인이 타국 대비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이는 비트코인을 통해 자산을 해외로 손쉽게 이전하려는 수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극복하지 못하는 사고의 한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비트코인이 글로벌 리스크를 헤징하는 대안적 안전 자산으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하면 대부분은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면 금이나 달러를 사면 되지 왜 비트코인을 사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국인들처럼 전통적 안전 자산인 금·달러·부동산 등에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 세계인 중 17억 명의 사람들은 은행 계좌가 없다. 또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형편없는 금융 서비스를 이용한다. 폭압적인 정권이 집권하는 국가에 산다면 개인의 사유재산권도 보장 받지 못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금융 위기가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바이러스처럼 번진 공포가 세계 금융시장을 덮치고 증시는 폭락할 것이다. 이때 한국처럼 치안이 튼튼하고 법정화폐의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이며 금융 인프라가 훌륭한 국가에 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은 발 빠르게 자신의 재산을 전통적 안전 자산으로 옮길 것이다.

하지만 짐바브웨·아르헨티나·몽골 등에 사는 사람들은 재산을 지킬 뾰족한 대안이 없다. 법정화폐의 가치는 휴지 조각이 되고 수준 높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으며 최악에는 치안마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때 비트코인이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금처럼 희소하고 특정 주체에 귀속되지 않는 중립적인 돈, 국가가 일방적으로 몰수하기 쉽지 않고 국경을 초월하는 가치 전달이 용이하며 개인의 경제적 자주성을 고양시키는 돈이 바로 디지털 금으로 비유되는 비트코인에 대한 올바른 정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