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쇄적이던 조직 문화 싹 바꾸고
- 8년 만에 무파업 임단협 타결도 이끌어내
1년 만에 확 바뀐 현대차그룹…정의선 리더십 ‘통했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고객 중심, 서비스 기업, 미래차 대응, 조직 문화 혁신, 가치 공유’ 등 현대차그룹을 총괄한 지 만 1년을 맞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일으키고 있는 혁신의 바람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9월 14일 현대차 담당 부회장에서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품질 경영’을 내세워 차량의 품질 향상을 이끌어 냈다면 정 수석부회장은 이 기조를 이어 가면서도 ‘고객 가치 집중, 미래 트렌드 대응, 조직 문화 혁신, 가치 공유’ 등을 접목하며 새로운 현대차그룹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정 수석부회장의 리더십을 등에 업은 현대차그룹은 과거의 양적인 성장을 넘어 이제 질적 성장을 통한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호칭·서열·절차·조직 대대적 수술
1년 만에 확 바뀐 현대차그룹…정의선 리더십 ‘통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에 불어넣은 혁신은 가히 파격이다. 보수적 한국 기업 문화의 대명사로 불리던 현대차그룹은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을 이끌면서 호칭·서열·절차 등의 조직 내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꿨고 정장 차림 일변도였던 임직원들의 복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현대·기아차는 9월부터 일반직 직원의 호칭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 등 2단계로 통합했다. 지난 4월 임직원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해 2단계를 가장 선호한다는 반응이 나온 데 따른 조치다.

호칭은 물론 직원 직급도 조정해 현행 5급사원(초대졸)·4급사원(대졸)·대리·과장·차장·부장인 6단계에서 4단계(G1~4)로 줄였다. 5·4급사원을 하나로 묶고 차장·부장을 통합했다. 지난 3월에는 전무 아래 임원 직급도 이사대우·이사·상무에서 모두 상무로 합쳤다.

이 밖에 현대차그룹은 ‘줄 세우기식’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를 도입했다. 또 승진 연차까지 폐지했다. 현재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할 때 4년, 차장·부장 승진에는 5년씩 지나야 한다. 승진 연차를 없애면 역량 있는 직원을 빨리 승격 발탁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대·기아차는 올해부터 대졸 신입 사원 공개채용 방식도 ‘정기 공채’에서 ‘상시 공채’로 전격 전환했다. 채용 주체도 본사 인사부문에서 현업 부문으로 바꿨다. 각 직무에서 필요한 인재를 수시로 뽑겠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통해 기수와 연공서열에 얽매여 온 전통의 기업 문화를 극복하고 전문성 위주로 보다 수평적이고 자율·창의·혁신적인 분위기로 바꾸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또한 정 수석부회장은 연구·개발본부 조직을 대폭 개편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제품통합개발담당·시스템부문·PM담당의 삼각형 구조로 단순화해 차량 개발의 복잡성을 줄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디자인담당과 상용담당은 별도 조직으로 운영한다.

정 수석부회장은 조직의 유연성을 늘리기 위해 출퇴근과 점심 시간 유연화, 복장 자율화 등 기업 문화 혁신도 추진했다. 지난 3월부터 현대차그룹은 서울 양재동 본사 등에서 임직원들의 근무 복장 완전 자율화를 도입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던 전통적 복장에서 탈피해 간편 근무복인 일명 ‘비즈니스 캐주얼’ 차원을 넘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도 가능해졌다.

정 수석부회장이 조직 분위기를 바꾸려는 배경에는 달라진 경영 환경이 자리한다.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글로벌 무역 전쟁 등의 예측하기 어려운 대외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슬림화되고 유기적인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정 수석부회장은 이른바 ‘CASE’인 연결(Connected)·자율주행(Autonomous)·공유(Shared)·전기(Electric)’로 대표되는 미래차 대응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3월 인도의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인 ‘올라’에 이어 4월에는 국내의 스타트업인 ‘코드42’, 5월에는 유럽의 고성능 전기차 기업 ‘리막’ 투자 등에 직접 나섰다. 외부와의 협력이 강조되면서 기존에 ‘수직 계열화’로 대표되던 현대차그룹의 사업 전략이 변화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파격 행보는 현대차그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특히 답답하고 더디던 일처리가 속도를 내면서 직원들이 활기를 갖고 움직이고 있고 경쟁사보다 한 발 빠른 움직임으로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 실적 상승에 호재 겹친 현대차그룹
1년 만에 확 바뀐 현대차그룹…정의선 리더십 ‘통했다’
이는 실적이 보여준다. 현대차그룹 상장사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5조7753억원)은 작년 동기(4조8694억원)보다 18.6% 증가했다. 이 같은 실적 개선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다. SK그룹(-59.8%)·삼성그룹(-53.0%)·한화그룹(-50.6%) 등과 비교하면 대비는 더 뚜렷하다.

국내 다른 완성차 업체와의 격차가 너무 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8월 들어 판매가 주춤하긴 했지만 현대·기아차의 내수 시장점유율은 81.2%를 기록했다. 현대차 쏘나타, 기아차 K7과 셀토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당분간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해 현대·기아차가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판매 단가가 높은 신차(팰리세이드, 제네시스 G90, 모하비)가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올해 하반기 현대차그룹의 실적 상승 기대치는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노조도 정 수석부회장을 적극 돕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9월 3일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8년 만에 파업 없이 완전히 타결했다.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파업권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실행하지 않고 사측과 대승적 합의를 이뤘다.

현대차 노조는 지금은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국내외 판매 실적이 떨어지는 것,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한국 자동차 산업의 침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국가적 재난이 추가됐다. 노조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여긴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4만원 인상, 성과급 150% 조건을 내건 사측의 1차 제시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 대신 통상임금 미지급 소급분을 받아내는 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1차 제시안이 최종 합의안까지 유지되는 것은 어쨌든 유례없는 일이다.

현대차 노조의 임단협 타결은 곧장 실정 호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가 무분규로 임단협에 잠정 합의하면서 현대차그룹이 얻게 될 영업이익은 최대 634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3년간 현대차의 연평균 파업 일수는 17일, 생산 차질 대수는 8만829대”라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피함으로써 현대차는 최소 3838억원에서 최대 6342억원 수준의 영업이익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 현대차그룹을 둘러싼 호재는 즐비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수소차·수소경제 육성의 최대 수혜자로 현대차가 꼽히고 일본차 기피 현상에 따른 반사이익도 예상된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2호(2019.09.16 ~ 2019.09.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