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유행하는 관리 기법만 갖다 쓰면 회사는 더 엉망이 된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애써 만든 전략을 실천하려면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성과를 점검해 조직을 움직이게 만드는 관리 통제가 필요하다. 재무나 회계에서 주로 공부하는 목표 관리(MBO)와 예산 제도가 대표적인 관리 통제의 수단이다.


사업 활동의 여러 요소들을 성과지표(KPI)로 측정해 종합적으로 성과를 관리하는 곳도 있다. 구성원의 행동을 목표에 부합하도록 성과 보상을 설계하기도 한다.


기업이든 국가든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고 목표를 향해 이끌어 가는 데 관리 통제를 위한 나름의 체제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과 전략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없이 유행하는 기법만 갖다 쓰면 회사는 더 엉망이 된다. 철 지난 성과 목표를 들이대며 기업의 미래를 오히려 구속하거나 억지로 짜 맞춘 성과 목표를 어명 삼아서 휘두르는 ‘기업관료’들의 권력 수단이 되곤 한다.

◆피라미드 현장의 신분과 보상

돈 벌러 모인 회사에서 성과 보상은 분명 강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경영진이 가져가는 막대한 성과 보상은 ‘죽어라 일해도 늘 쪼들리는’ 실무자들에게는 ‘착취의 증거’로 보일 수도 있다. 실무자도 마음만 먹으면 대형 사고를 칠 수 있는 세상에 중요한 일이라 더 받는다는 얘기는 황당할 뿐이다.

시야를 넓혀 보자. 전쟁이 없는 군대에서 무엇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부하들에게 줄 보상이 없고 벌도 함부로 못 주는 소대장은 어떻게 부대를 이끌까. 훈련하다 사고 나면 문책당하는 군대라면 지휘관은 강당에서 빤한 정신교육만 하게 된다.


흔한 걸그룹 공연도 군기 운운하는 잔소리가 귀찮아 피하면 종교 행사만 남는다. 강의 평가나 연구 업적으로 교수를 마구 몰아세운다고 좋은 대학이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쓸모없는 논문만 잔뜩 찍어내고 학생들에겐 재미있는 얘기, 빤한 시험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경영은 숫자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성과 관리’는 관리 체제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시스템과 관리 체제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동기부여와 리더십 같은 우아한 말로만 조직의 힘을 모을 수도 없다. 그럴듯한 말만 둥둥 떠다니는 얼치기 경영학은 일하는 사람들만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현장을 생각해 보자. 왕자님은 기한 내에 피라미드를 완성해야 아버지 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3000명의 공사 인력은 노예들이다. 무리해 일하다 다치면 버려질 뿐이고 자칫 열심히 해 목표 기준이 높아지면 그다음 날부터 더 고단해진다.

100명에 불과한 경비병들이 현장을 구석구석 감독할 수도 없다. 채찍을 휘두르면 잠시 열심히 하는 척은 하겠지만 정말 열심히 일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리는 경비병이나 멀리서 보는 왕자님이나 돌 쌓는 일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무작정 채찍질을 하면 노예들이 다쳐 일을 못할 수도 있고 맞아서 죽기보다 차라리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오늘날의 기업 현장과 비슷하다는 눈치 빠른 반응도 나오는데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고 ‘무난한 생존’이 목표인 조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현명한 왕자님은 먼저 돌 쌓기 대회를 열어 우승한 노예 3명을 해방시키고 현장 감독으로 임명해 자립 기반을 마련해 준다. 노예들은 우승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테니 건설 현장의 잠재성장률이 확인된 셈이다.


영리한 경비병은 돌 쌓는 방식을 눈여겨보고 공사 기법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왕자님은 이들 현장 감독들이 올린 성과를 전체 공사 현장의 성과 기준으로 삼는다. 요즘으로 말하면 인간공학을 활용한 과업 분석을 목표 설정에 도입한 셈이다.

왕자님은 노예해방이라는 신분적 보상과 자립 기반이라는 금전적 보상을 결합해 우수한 노예를 찾아내고 그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이끌어 낸다.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면 노예제라는 본질적으로 억울한 상황을 인간 평등의 당연한 상태로 바꾼 것이고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도 피라미드 공사 전체에 비하면 매우 작다. 하지만 구조적 본질적 문제보다 당장의 현실이 중요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신분을 보상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인류사의 오래된 관행이고 오늘날 신분 변화가 주는 자율성과 혜택은 동기부여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과거 급제로 팔자를 고치고 하급 무사가 공을 세워 영주가 되는 것은 유서 깊은 성공 스토리이고 기업 조직의 임원이나 파트너 지위가 되는 것도 비슷한 면이 있다.

최선을 다한 성과가 다음 기간의 일반적 기준이 되는 것은 과거 기록의 추세선으로 성과 기준을 삼는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노예 노동자 모두에게 음식이나 오락을 보상으로 주면 개인적 차원의 동기부여일 뿐이지만 제한된 숫자의 대상을 선별적으로 보상하면 경쟁이라는 새로운 동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신분적 차이에 더해 지휘 감독의 권력을 주면 동력은 더욱 강해진다.

◆집단적 경쟁과 성과 압력

왕자님은 돌 쌓기 대회에서 우승한 노예들을 중심으로 인력을 1000명씩 3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서로 경쟁시킨다. 공사 현장의 이모저모를 파악한 경비병들을 각각의 집단에 배치해 노예 출신 현장 감독을 감시하고 이들을 통해 필요한 돌과 음식을 공급한다.


돌 쌓는 일은 잘하지만 관리능력은 부족한 현장 감독은 왕자님 밑에서 훈련된 유능한 경비병의 도움이 절실할 수도 있다. 현대 기업에서 ‘사업부(SBU)’ 제도를 두고 경영 지원 부문을 둬 감독과 지원의 연결고리로 삼는 것과 같다.

3개의 집단을 경쟁시켜 우승한 집단에서는 30명을 해방시켜 주고 살림도 갖춰주는데 꼴찌한 집단은 가혹한 처분이 기다린다면 어떻게 될까.

각각의 집단 내부에서는 동료들 사이의 ‘압력(peer pressure)’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게으른 노예에게는 경비병이 채찍을 휘두르지 않아도 집단 내의 동료들이 나서 다그친다.


경쟁에서 진 집단에 주는 처분이 가혹하면, 특히 ‘일벌백계’의 시그널링 전술이 더해지면 동료들의 압력은 더욱 강해진다.

집단의 성과를 위해서는 돌 쌓기 우승자가 서툰 노예들을 직접 가르치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준다. 언제부터 감독이기에 군림하느냐고 반발하면 경영 지원을 맡은 경비병이 개입해 채찍을 휘두른다. 현장 감독은 이 채찍질을 말리면서 노예의 충성을 얻어낼 수도 있다.


현장 감독은 우수한 노예들을 중간관리자로 선발해 가르치고 바로잡는 일을 시킬 수 있는데, 작업 현장에서의 ‘상하관계(hierarchy)’가 진전되고 통제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우승한 집단에서 포상 대상자 30명을 선발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더 이상 이런 집단 경쟁은 효과가 없게 된다. 체제에 대한 불만이 성장 동력을 무너뜨리는 셈이다.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다양한 수준의 경쟁과 협력이 전개되면서 새로운 과제들도 나온다. 왕자님의 지도를 본받아 돌 잘 쌓는 노예에게 관리 책임을 맡겼더니 관리능력이 없어 현장을 엉망으로 만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작업 현장에 익숙한 똑똑한 경비병을 붙여 도와주는 방법이 있고 그래도 안 되면 계속 그가 잘하는 돌 작업을 다시 시키면서 돈을 많이 주는 편이 낫다. 홈런을 많이 치면 연봉을 더 주고 감독은 지도력이 있는 사람을 시키는 원리와 같다.

피라미드 현장의 노예들을 잘 지도하고 자재 조달도 요령껏 잘하는데 막상 돌 일은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거운 돌을 갖고 노는 힘센 일꾼의 이미지와 다르고 현장의 작업에는 방해가 되면서 가끔 알아듣지 못할 얘기만 하니 왕따 신세나 안 되면 다행이다. 왕자님은 이런 지혜로운 노예를 찾아 관리자로 키워야 왕위 쟁탈전에서 이길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하지만 어떻게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까. 왕자님에게 찰싹 붙어 더 큰 채찍을 휘두르고 싶은 경비병들은 지혜로운 노예를 보는 즉시 죽일지도 모른다. 그런 능력이 드러나면 경비병에게 찍혀 싹이 잘리기 십상이니 지혜로울수록 능력을 더욱 감추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미묘한 정치적 흐름을 찾아 풀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관리 체제도 껍데기만 요란할 뿐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성과 평가와 보상은 관리 체제의 일부

마이클 젠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업 조직의 구조와 운영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과목을 개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기업을 다양한 계약의 ‘집합(nexus of contract)’이라고 볼 때 기업 내부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계약만으로 풀어가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경영자의 권한과 리더십에 의존하게 된다. 돈 받고 일하는 계약 관계에 조직의 인간적 관계가 더해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볼 때 인간 사회의 관리 체제는 조직의 ‘위계적 체제(hierarchy)’를 통한 감독과 지도, 집단의 이익을 위한 내부 구성원들의 압력, 성과 평가와 보상 등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앞에서 이집트 왕자의 피라미드 공사에서도 봤듯이 성과 평가와 보상은 관리 체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 조직의 정체성과 전략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고 구체적 실천을 담보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는 근본적인 노력이 없이 당장 편한 숫자 몇 개 계산해 월급이나 조금 올라가는 정도라면 이는 급여 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 돈으로 삼겹살 저녁이나 사면서 리더십, 조직 관리 운운하는 안쓰러운 현실의 연장일 뿐이다.

조·일전쟁 당시 유성룡은 각지에 의병을 모집하면서 공을 세우면 노비 신분을 면해주겠다고 내걸었다. 개전 초기 실망하고 분노한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우고 일부는 일본군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체제를 흔드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순신은 직접 과거시험을 주관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신분 상승 기회를 제공했다. 군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삼남지방의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기 위해 선조와 조정 대신들의 반발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다.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전투에서 적의 목을 베면 성과로 인정해 보상하는 당시의 관행을 버리고 전투 현장의 첩보를 얻어내 기회를 만든 공을 더 높게 평가했다. 나아가 마을을 일으키고 군대의 힘을 키우는 것을 큰 공으로 인정했다.


그 결과 칼과 창을 쓰는 전투에는 무력했지만 빠른 시간에 성곽을 쌓고 도로를 만들어 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뜨내기가 장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꼼꼼하게 경영 현황을 점검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미래를 만들고 당면한 위협을 돌파하려면 더 높은 수준에서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관리 체제를 갖춰야 한다.


잔재주만 가득한 경영학 책을 영혼 없이 달달 외우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생각을 할 기회를 놓치면 쓸모없는 관리 체제의 녹슨 나사못이 돼 버려진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2호(2019.09.16 ~ 2019.09.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