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Ⅱ ]
-2006년 창업해 시가총액 10조원까지 성장…대표 개발품 ‘펙사벡’ 활용해 재기 도전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임상 중단·압수 수색…바이오 대표주 ‘신라젠’, 부활 가능할까
8월 4일 긴급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은상(오른쪽) 신라젠 대표./ 한국경제신문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 8월 28일 신라젠 서울 여의도 사무실과 부산 본사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 매매가 이뤄졌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다.

지난 7월 초 신라젠의 한 임원은 자신의 보유 지분 전량인 16만7777주(88억원어치)를 매도했다. 이후 약 한 달 만인 8월 2일 면역 항암제 ‘펙사벡’의 간암 치료 3상 시험 중단 권고 발표가 나오면서 신라젠의 주가는 폭락했다.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는 ‘펙사벡’의 간암 대상 글로벌 임상 3상에 대한 무용성 평가를 진행해 중단을 권고했다.

무용성 평가에서 중단을 권고 받았다는 의미는 쉽게 말해 ‘효과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대조군인 ‘항암제 넥사바(소라페닙) 단독 투여 환자군’과 ‘펙사벡 투여 후 넥사바 투여 환자 집단’을 비교한 결과 ‘약물 투약 후 생존 기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소식이 나오기 전 고위 임원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이 제기됐다. 결과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일각에선 주가조작도 함께 제기됐다.

신라젠 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신라젠은 성명문을 통해 “미공개 정보 이용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검찰 관계자 압수 수색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어 “대상은 일부 임직원에 국한됐다”고 선을 그은 뒤 “앞으로 성실히 조사에 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라젠은 2006년 창업한 면역 항암제 전문 기업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도해 온 면역 항암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뒤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을 이어오면서 국내 바이오 기업 중 가장 상용화에 근접한 면역 항암제 신약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라젠은 국내 바이오주 열풍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신라젠은 2016년 12월 상장 당시 공모가가 1만5000원이었지만 2017년 하반기부터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해 상장 1년 만에 주가가 최고 10배까지 오르기도 했다. 한때 시가총액이 10조원에 달하기도 했다. 신라젠의 주가 급등으로 국내에는 바이오주 열풍이 불었고 다른 바이오 기업 주식에도 매수세가 이어졌다.

신라젠은 황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가 창업한 산학협력 벤처기업이다. 차세대 신약 개발을 위해 출범했지만 벤처기업의 특성상 회사 규모가 작아 글로벌 바이오 기업의 임상 시험용 신약을 대신 제작했다.

신라젠은 미국의 바이오 기업 제네렉스로부터 신약 후보 물질 ‘펙사벡’의 임상 시험을 위탁받았다. 제네렉스는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바이오 기업이다. 암 치료제 등을 개발해 왔는데 특히 항암 바이러스 면역 치료제 R&D 부문에서는 미국의 암젠, 프랑스의 트랜스젠 등과 함께 가장 앞서 있었다. 제네렉스는 세계 여러 연구 기관과 바이오 업체에 이 치료제 개발을 위탁했는데 신라젠이 거기에 참여하면서 임상 시험을 성공시켰다.

내친김에 신라젠은 2014년 약 340억원에 제네렉스를 인수했다. 신라젠은 제네렉스의 총인수 금액을 약 1600억원으로 산정했다. 나머지 대금은 ‘마일스톤 지불 방식(milestone payment : 단계별 목표 달성 지급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펙사벡의 임상 성공 여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신라젠은 이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400억원, 기관투자가들에게 310억원을 투자 받았다.

신라젠의 현 대표이사는 문은상 대표다. 문 대표는 투자자들을 모아 제네렉스 인수를 주도했다. 치과의사 출신인 문 대표는 2009년 펙사벡 관련 논문을 접하고 펙사벡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제네렉스 인수 과정에서 문 대표는 경영권을 쥐었다.

펙사벡은 2013년 2월 영국 의학 전문지 ‘네이처 메디신’에 소개돼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펙사벡은 유전자가 조작된 천연두 백신(우두) 바이러스에서 티미닌키나아제(TK)라는 효소를 제거한 신약이다. TK 효소는 바이러스가 자기 복제를 하는데 꼭 필요한 일종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유전자 조작된 바이러스는 암환자 몸 안에서 TK 효소를 찾다 암 덩어리에 달라붙어 TK 효소를 빼앗아 증식한다. TK 효소를 빼앗긴 암 덩어리는 증식하지 못하고 파괴된다. 뿔뿔이 흩어진 암세포는 체내에서 면역 세포의 공격을 받고 소멸된다. 이 과정에서 항원도 생성돼 치료 후 암에 대한 면역이 생겨 재발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신라젠 측은 펙사벡은 유전자 구조를 바꿔 정상 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감염시키기 때문에 정상인도 부작용을 겪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펙사벡은 데이비드 컨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가 2002년 개발을 시작했는데 제네렉스가 소유권을 지니고 개발을 담당했다.
임상 중단·압수 수색…바이오 대표주 ‘신라젠’, 부활 가능할까
◆ 미국 ‘제네렉스’ 인수하며 급성장

신라젠이 제네렉스를 인수한 이유는 펙사벡의 임상 3상을 이어 가기 위해서다. 2013년 종료된 펙사벡 임상 2b상은 생존율 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실패했다. 하지마 당시 신라젠은 임상 디자인 설계 문제로 입증에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14년 제네렉스를 인수 후 임상 3상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신라젠 측은 “펙사벡 특성상 어느 정도 면역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과거 2b상 환자 모집 당시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아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4년 4월 신라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을 허가받았다. 미 FDA로부터 일부 국가가 아닌 다국가 3상 승인을 받은 것은 신라젠의 펙사벡이 처음이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의 환자가 임상에 참여하고 있다. 신라젠은 FDA로부터 특정임상계획평가(SPA)도 승인받았다. SPA는 FDA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임상 시 원하는 결과만 나오면 FDA가 승인을 빠르게 내주는 제도다.

신라젠은 이후 장외주식시장에서 ‘인기 종목’이 된다. 한때 시가총액이 3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펙사벡의 효능에 입소문 덕분이다.

결국 신라젠은 2016년 12월 코스닥에 입성했다. 신라젠은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펙사벡의 효능과 미래 가치’에 대해 평가를 받아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을 허락했다.

사실 신라젠은 검찰 수사가 있기 전부터 끝없이 논란에 시달려 왔다.

대표적인 게 초기 투자자 중 하나인 밸류인베스트코리아와 관련한 논란이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는 3만여 명을 대상으로 비상장 주식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겠다고 속이는 방식으로 90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유사 수신 업체다. 이 회사의 이철 대표는 유사 수신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현재 2심에서 12년형을 받고 구속 수감 중이다.

신라젠은 밸류인베스트코리아로부터 2013년부터 전환사채(CB) 등의 방식으로 400억원 정도를 투자받았다. 2대째인 이용한 전 대표는 유사 수신 업체인 밸류인베스트코리아에 대규모 투자를 받아 펙사벡의 개발사인 제네렉스를 인수할 기반을 만들었다. 이 전 대표는 고등학교 동문의 소개로 유사 수신 업체 대표를 만나 투자를 받았다. 이 전 대표는 이를 시발점으로 본격적인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신라젠 내부에서도 이 투자를 받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한때 신라젠의 최대 주주였던 밸류인베스트코리아는 이철 대표가 구속되면서 상장 전 신라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분 전체(약 10%)를 매각했다.
임상 중단·압수 수색…바이오 대표주 ‘신라젠’, 부활 가능할까
신라젠 연구원들이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문 대표에 대한 논란도 있다. 문 대표는 안정적 수입을 올리던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신라젠 대표에 올라 회사를 이끈 경영 능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펙사벡과 관련해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끊이지 않았지만 문 대표는 과감한 추진력으로 투자자들을 모았다.
문 대표는 신라젠 대표에 오르며 투자자들과 제네렉스 인수와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 승인, 신라젠 상장 등 세 가지를 약속했고 이를 모두 지켰다.

하지만 문 대표는 신라젠 주가가 최고치에 이르렀던 시기인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 모두 156만2844주의 신라젠 주식을 매도해 1325억원의 매각 차익을 얻었다. 당시 문 대표의 친인척 4명도 800억원어치 정도를 팔았다.

문 대표는 당시 1000억원대의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매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상당한 기간 지속됐다. 게다가 문 대표는 주식 매각 직후인 2018년 3월 서울 이태원동에 대지 면적 617㎡(187평)의 고급 단독주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신라젠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 설립 초기부터 논란 이어진 신라젠

신라젠 주가는 문 대표가 주식을 처분한 뒤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신라젠 시가총액은 한때 10조원에 육박했지만 현재 8000억원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주가가 10분의 1 토막이 나면서 15만 명에 가까운 신라젠 소액주주들은 손실을 입었다.

신라젠의 소액주주는 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문 대표가 최근 신라젠 주가가 급락한 뒤 책임 경영 차원에서 36억원의 자사주를 장내 매수했지만 신라젠 주주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가 처분한 1300억원의 주식에 비하면 3%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펙사벡의 임상 3상이 실패한 상황에 신라젠은 앞으로 살아남기에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라젠은 올해 3월 펙사벡의 임상 3상과 상용화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1100억원어치의 CB를 발행했을 만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신라젠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영업 손실은 1564억원에 이른다. 펙사벡이 무너지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원칙적으로 의약품은 임상이 중단되더라도 문제점을 보완했을 때는 임상 재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펙사벡은 기존 간암 1차 치료제인 ‘넥사바’를 투여하기 전에 투여했을 때 환자의 생존 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여서 지금과 똑같은 임상 계획으로는 임상 재개가 어렵다.

임상 재개를 위해 임상 설계를 다시 하는 방법도 있다. 신라젠은 펙사벡의 임상 2a상, 임상 2b상에서는 단독 요법으로 진행했지만 임상 3상부터 펙사벡을 투여한 뒤 넥사바를 처방하는 것으로 임상 설계를 바꿨다. 펙사벡→넥사바→면역 관문 억제제(인체가 가진 면역 세포의 면역 기능을 활성화해 암세포와 싸우게 하는 치료법) 순으로 환자가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 임상 3상에 들어간 뒤 새로운 방법(프로토콜)을 검증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상 3상은 임상 2상 결과를 근거로 이뤄지는 것인 만큼 임상 3상부터 설계를 변경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임상 중단·압수 수색…바이오 대표주 ‘신라젠’, 부활 가능할까
8월 28일 검찰이 압수 수색을 진행한 신라젠 사옥. /연합뉴스

한 증권사 제약담당 애널리스트는 “신라젠의 다른 임상들이 대부분 다른 약물과 병용 치료 요법이란 점을 고려하면 펙사벡 프로젝트는 사실상 신라젠 가치의 대부분”이라며 “펙사벡의 임상을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임상 2상부터 해야 할 것으로 예상돼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기술이전 등으로 외부 업체와 협력해 임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표는 그동안 펙사벡의 임상 3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리스크도 떠안아야 했다. 문 대표는 8월 4일 긴급 간담회에서 펙사벡에 대해 “간암의 결과와 무관하게 타 적응증 병용 임상 효능 데이터가 우수하면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이 가능할 것”이라며 계획 변경을 밝혔다. 펙사벡에 대해 라이선스 아웃을 검토하지 않던 방침을 고수해 왔지만 ‘임상 중단’ 이후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 ‘기술수출 등으로 돌파구 마련하겠다’

신라젠은 앞으로 실패한 간암 대신 신장암·대장암·유방암 등에서 다양한 면역 관문 억제제와 펙사벡을 병용 투여하는 임상 시험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펙사벡의 치료 효과를 재입증하겠다는 각오다. 문 대표는 “임상 3상 조기 종료는 펙사벡의 문제가 아니라 항암 바이러스와 표적 항암제 병용 요법의 치료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초기 임상을 통해 펙사벡과 면역 항암제 병용 요법 가능성을 직접 확인한 만큼 임상 3상의 잔여 예산을 신규 면역 항암제 병용 임상과 수술 전 요법 등에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젠은 표적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 리제네론 ‘리브타요’와의 펙사벡의 병용 투여 임상을 진행 중이다. 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용량 결정 임상 시험에서 1명의 완전 반응, 1명의 부분 반응, 1명의 안전 병변, 2명의 진행 결과를 확인했다. 현재 펙사벡과 리브타요 병용 요법에 대한 환자군 11명을 모집 완료했고 주기적인 전산 단순 촬영술(CT)을 통해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면역 관문 억제제 불응성 암종인 대장암을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와 펙사벡 병용 요법 임상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머크의 키트루다와 펙사벡을 병용하는 임상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펙사벡이 병용 임상을 통해 신약으로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펙사벡의 병용 임상이 성공하려면 경쟁 약물의 병용 요법보다 임상적으로 향상된 효과를 보여야 하는데 이는 간단하지 않다. 이미 신라젠의 펙사벡에 앞서 병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은 많다.

신장암은 3상 단계인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와 표적 항암제 ‘렌비마(성분명 렌바티닙)’의 병용 요법이 올해 1월 FDA가 신장암 1차 치료에 대한 혁신 치료제로 지정했다. 대장암은 면역 항암제 ‘옵디보’와 ‘여보이’ 병용 요법이 이미 3상 단계다. 펙사벡의 병용 요법이 경쟁 약물의 병용 요법보다 임상적으로 획기적인 효과를 보여야 상업적 가치가 높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신라젠 관계자는 “현재 주요 파이프라인인 신장암 병용 임상은 파트너사와 사전에 협의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상업화 과정을 위한 논의가 가능하다”며 “옵디보와 키트루다와 같은 면역 관문 억제제들은 경쟁 약물이 아닌 항암 바이러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 약물로, 이들과의 병용 임상은 우리 차기 파이프라인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2호(2019.09.16 ~ 2019.09.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