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PEF의 제왕들]
-도용환 회장, 1999년 벤처캐피털로 첫발
-2004년부터 중동 자금 유치 등 범아시아 공략
창립 20주년 맞은 ‘스틱인베스트먼트’…사모펀드업계의 ‘사관학교’ 역할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토종 사모펀드(PEF)의 맏형’으로 통한다. 1999년 설립 이후 누적 운용 자산 6조5768억원의 국내 대표 투자회사로 자리 잡았다. 임베디드 솔루션 전문 기업 MDS테크놀로지(현 한컴MDS)는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대주주의 건강 악화로 매물로 나온 MDS테크놀로지를 2010년 467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MDS테크놀로지의 보통주 지분 38.81%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이후 신규 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MDS테크놀로지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고 2014년 5월 한글과컴퓨터에 회사를 매각하며 엑시트에 성공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4년 5개월의 투자 기간 동안 총 923억원을 회수하며 23.0%의 내부 수익률(IRR)을 기록했다.

방위산업체 LIG넥스원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최대 주주의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시장에 풀린 LIG넥스원의 구주를 매입하기 위해 하나금융투자·KB자산운용·KTB PE·대신증권·흥국생명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가 15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총 4200억원을 들여 2013년 LIG넥스원 보통주 49%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컨소시엄은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감사위원 3인 중 투자자 지명 이사 2인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해 내부 회계 관리 시스템을 감독하도록 하는 등 LIG넥스원의 경영 투명성을 끌어올렸다. 2015년 10월 LIG넥스원을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상장 시 구주 매출 등을 통해 2017년 3월 투자금 회수를 완료했다. 4년 1개월간 총 3210억원을 거둬들이며 IRR 30.9%를 달성했다.
창립 20주년 맞은 ‘스틱인베스트먼트’…사모펀드업계의 ‘사관학교’ 역할
◆투자 전략 범위 확대…해외 진출에도 속도

스틱인베스트먼트의 모태는 도용환 회장이 1996년 7월 차린 (주)스틱이다. 신한생명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승승장구하던 도 회장은 그해 인사에서 미끄러지며 창업을 결심했다. 개인 주주들로부터 십시일반 투자 받아 회사를 세웠다. ‘서울 최고의 투자회사를 만들자’는 의미로 사명을 스틱(STIC : Seoul Total Investment Corporation)으로 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투자업계에 수수료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외환위기의 한파까지 덮쳤다.

도 회장은 함께 창업했던 후배에게 회사를 맡기고 직접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지인들의 소개로 기술 기업들의 경영·재무 컨설팅을 해줬다. 자문료 몇 백만원씩을 받아 겨우 회사를 꾸려 나갔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1999년 당시 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기술(IT) 전문 투자회사를 차려 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정통부의 주선으로 SK텔레콤에서 투자도 받았다. 180억원의 자본금으로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전신인 스틱IT투자를 설립했다.

운용사를 차리긴 했지만 펀드 조성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당시만 해도 벤처캐피털에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는 없었다. 도 회장은 대기업들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닷컴 버블이 불어 닥치며 대기업 임직원들이 돈을 벌겠다고 벤처회사로 이직하던 시기였다.

도 회장은 LG전자에 찾아가 “이직을 막을 수는 없으니 같이 펀드를 조성해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LG전자는 도 회장의 제안에 선뜻 응했다. LG전자에서 300억원짜리 펀드 중 270억원을 출자 받는 데 성공했다. 삼성생명·SK텔레콤·현대중공업 등도 힘을 보탰다. 그 결과 2001년 운용 자산이 2000억원을 넘어섰다.

도 회장은 국내 최초로 중동 자금을 유치하면서 시장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외부에서 임정강 상무(현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회장)를 영입해 중동 자금 유치에 나섰다. 도 회장은 틈만 나면 중동으로 날아가 임 상무와 함께 사막을 누볐다. 200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패밀리오피스(부호들의 돈을 굴리는 투자회사)인 ‘세드코’로부터 1200만 달러(약 14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도 회장은 이 돈으로 국내 교직원공제회 등과 ‘스틱일자리창출펀드’를 조성했다. 2006년에는 사우디 국영상업은행(NCB)에서 1억5000만 달러(약 1792억원)를 단독으로 출자 받아 첫 역외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자신감을 얻은 도 회장은 이때 사명을 스틱인베스트먼트로 바꿨다. 벤처 투자 위주에서 벗어나 중견기업에 투자하는 ‘그로스캐피털’로 투자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와 말레이시아 국부펀드 등도 스틱 펀드에 돈을 댔다.

그 결과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운용 자산은 2007년 1조원을 돌파했다. 당시 국내에서 한 기업에 100억원 단위로 투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회사였다. 벤처캐피털 분야 후발 주자였던 스틱이 토종 사모펀드업계의 맏형이 된 배경이다.

도 회장은 세컨더리·바이아웃·스페셜시추에이션 등 사모주식(PE)의 다양한 투자 전략으로 범위를 넓히며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운용 자산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2벤처캐피털(VC) 신화’를 쓰기 위해 스틱벤처스를 분리 독립시켰다. 투자 자본의 해외 진출에도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도 회장은 지난 7월 12일 회사 창립 2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도 국민연금 자산이 700조원을 돌파하는 등 투자 자본이 쌓이고 있는데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지금까지는 망하지 않는 게 목표였다면 앞으로는 돈을 좀 벌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창립 20주년 맞은 ‘스틱인베스트먼트’…사모펀드업계의 ‘사관학교’ 역할
◆‘투자업계 사관학교’로도 불려

자본시장에서는 스틱인베스트먼트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신뢰’를 꼽는다. 과거 위기를 기회로 바꾼 도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회사가 안정세로 접어들던 시기에 한 차례 시련을 겪었다. 2002년 정통부 등의 출자를 받아 미국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1억 달러(약 1195억원) 규모의 나스닥 펀드를 조성했던 게 화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역외펀드에 투자한 첫 사례였지만 5년이 지나도록 운용 자산의 절반도 투자하지 못했다.

도 회장은 실패를 자인하고 출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줬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의 결단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되며 회사가 커 나가는 밑거름이 됐다.

‘인연’을 중시하는 도 회장 특유의 인맥 관리도 회사 성장의 기틀로 작용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감사와 고문 등을 활용해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도 회장은 회사 임직원도 살뜰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퇴직자들과의 교류도 왕성한 편이다.

도 회장의 인력 관리 덕택에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자본시장에서 ‘스틱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스틱인베스트먼트에서 성장한 투자 운용역들은 독립해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업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스틱인베스트먼트에서 5년간 일한 뒤 2003년 LB인베스트먼트에 합류했다.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으로 유명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게임 ‘검은사막’을 앞세워 증시에 입성한 펄어비스, ‘신과함께’ 등 영화 특수효과 제작으로 유명한 덱스터스튜디오 등에 투자해 성과를 냈다.

김웅 TS인베스트먼트 대표도 스틱인베스트먼트 출신이다. 김 대표는 안진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하다가 2001년 스틱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해 벤처기업 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2008년 TS인베스트먼트를 차려 바이오·IT 등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도 회장은 “투자를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투자보국’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 왔다”며 “사모펀드업계에 뛰어들어 20년간 살아남은 비결은 외국계가 휩쓴 자본시장에서 국내 투자 자본도 과실을 누리게 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따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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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