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인간의 삶 속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로봇…반려동물 대신한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에서도 고령층과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과거와 다른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행동이 원활하지 않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려동물이나 취미 생활과 관련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소비문화는 로봇 분야에도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의 친구 또는 반려동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동반자가 되고 싶은 ‘소셜 로봇’
지금까지 상용화된 대부분의 로봇은 산업 현장이나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극지 등 인간의 일상생활 영역 밖에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고령층과 1인 가구의 증가 추세 속에서 잠재적 사업 기회를 엿본 많은 기업들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로봇에 대한 연구·개발(R&D)을 가속화하고 있다. 새로운 로봇은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인간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 이러한 로봇들은 통틀어 ‘소셜 로봇’이라고 불린다.

소셜 로봇은 인간과 직접 교감하고 소통함으로써 인간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로봇을 가리킨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처럼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로봇을 일컫는 것이다. 소셜 로봇의 도입 목적은 로봇이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사용자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소셜 로봇의 역할은 잘 알려진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제시된 자아실현, 존경, 애정의 욕구(정서 지원)에서부터 안전, 생리적 욕구(육체적 행동 지원)에 이르는 인간의 거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 본 소셜 로봇의 범주는 무척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소셜 로봇 중에는 스마트 스피커처럼 인공지능(AI) 비서를 탑재, 언어를 이용한 음성 대화를 통해 인간과 교감함으로써 사용자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로봇이 있는가 하면 날씨·뉴스·쇼핑 정보 등 일상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생활 지원용 로봇도 있다. 또 교육 현장에서 인간 교사를 돕거나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육용 로봇이나 가정·양로원·요양원 등에서 고령자의 거동을 돕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는 등의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들도 모두 소셜 로봇에 속한다. 극장 무대나 놀이공원에서 각종 공연을 하는 로봇이나 쇼핑센터 등에서 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내 로봇 역시 소셜 로봇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다양한 용도만큼이나 소셜 로봇의 형태도 무궁무진하다. 지보(Jibo)처럼 스마트 스피커를 닮은 단순한 형태도 있고 물개를 닮은 일본의 로봇 파로나 강아지형 로봇인 소니의 아이보(Aibo)처럼 반려동물의 모습을 한 것도 있다. 소셜 로봇의 외형은 때로는 곰 인형이나 미니카와 같은 장난감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소프트뱅크의 페퍼(Pepper)처럼 휴머노이드의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비록 소셜 로봇들의 외형은 무척 다채롭지만 그 속에서는 몇몇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인간 사용자들이 친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귀여운 형상을 했고 외피는 비교적 밝고 화사한 색상으로 돼 있고 부드럽거나 매끄러운 소재로 된 것이 많다. 또한 로봇을 만난 인간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소셜 로봇의 동작은 앙증맞거나 귀여우면서 부드러운 동작을 취하도록 돼 있다. 심지어 소프트뱅크는 자사의 로봇 페퍼가 인간처럼 부드러운 동작을 취할 수 있도록 로봇의 동작을 개발하기 위해 일본의 유명한 연예 기획사와 제휴해 인간 배우의 행동을 본뜨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HRI와 안전 관련 기술이 중요
소셜 로봇은 산업용 로봇보다 굼뜨고 내구성도 떨어지며 수술 로봇만큼 정밀한 동작을 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소셜 로봇에 적용되는 기술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어떤 면에서는 산업용 로봇이나 수술 로봇 등 이미 상용화된 로봇들보다 더 많은 종류의 기술들이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소셜 로봇에 더 많은 기술들이 적용되는 이유는 첫째, 소셜 로봇의 용도가 다양한 만큼 소셜 로봇의 형태나 기능도 비교적 단일한 용도에 쓰이는 기존 로봇들보다 훨씬 다양하기 때문이다. 둘째, 로봇의 주요 사용자는 로봇 비전문가인 일반인이므로 사용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산업용 로봇에 적용되지 않는 기술들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셜 로봇에는 사용자의 구두 명령을 알아듣기 위한 대화형 AI와 주변의 작업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시각 기반의 AI 기술이 필요하다. 또 상황에 따라 사전에 약속된 명령어를 듣지 못했더라도 사용자의 의도를 스스로 알아차려 인간이 원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식 추론 기술과 복합적인 상황 인식 기술도 적용돼야 한다.

인간 사용자가 로봇에 대해 사회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인간의 감성을 인식하거나 상황에 적합한 감성적인 대화와 동작 표현을 할 수 있는 일종의 ‘감성 지능’ 관련 기술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인간의 생활환경에서 스스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위치 인식과 자율주행 기술도 필요하다. 소셜 로봇 중에서 인간의 행동을 돕는 생활 지원형 로봇이나 케어 서비스용 로봇에는 물건을 다루거나 들어 옮길 수 있는 로봇 팔 등의 각종 매니퓰레이터가 적용된 것도 있다.

이처럼 소셜 로봇에 적용되는 많은 기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인간과 소통하는 기술, 이른바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 Human-robot Interaction)’ 기술이다. 로봇 비전문가인 일반 소비자들, 특히 유아에서부터 고령자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용자들이 편리하면서도 원하는 대로 로봇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로봇이 인간 사용자의 명령과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HRI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기술은 안전과 관련된 것이다. 소셜 로봇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인간 사용자들이 로봇으로 인해 상해를 입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소셜 로봇들은 인간과의 충돌을 회피하거나 방지하고 위급 상황에서 스스로 작동을 멈추는 등의 다각적인 안전 기능을 갖추기도 한다.

소셜 로봇은 사용 환경과 용도가 기존 로봇들과 상이하다. 소셜 로봇은 가정 등 일상생활 영역 내에서 로봇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작동하고 인간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와 달리 기존 상용화된 대부분의 로봇들은 공장 등 특수한 환경 내에서 로봇 전문가의 통제를 받으면서 주로 인간이 아닌 사물을 대상으로 한 작업에 동원된다.
이러한 두 로봇의 사용 환경과 용도상의 차이는 R&D에 필요한 학문적 배경도 달리 만든다.


예를 들어 인간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소셜 로봇을 제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학문적 지식은 로봇의 작동을 위한 공학 기술이 아니라 소셜 로봇의 본질적 기능인 사회적 관계 형성에 필요한 학문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소셜 로봇의 사회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와 인간 간의 관계, 인간들이 형성하는 사회에 대한 이해를 연구하는 철학·심리학·사회학·교육학 등 각종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반면 산업용 로봇 등 인간의 도구로 이용되는 기존 로봇들의 R&D에서는 로봇의 기계적 작동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공학 기술이 핵심 요소가 된다.

또한 소셜 로봇 시장은 비교적 단일화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산업용 로봇과 달리 파편화(fragmented)된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소셜 로봇의 폼팩터가 스마트폰이나 TV처럼 단일화(unification)되기보다 다양화(diversification)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폼팩터의 다양화 가능성은 소셜 로봇의 용도가 원체 다양한 데다 사용자의 스펙트럼도 문화·언어·지역·성별·연령 등으로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소셜 로봇의 폼팩터는 소비자 맞춤형으로 발전할 것이므로 용도의 다양성과 사용자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감안하면 폼팩터가 다양해질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인간의 동반자가 되고 싶은 ‘소셜 로봇’
실패 사례에서 찾은 교훈
2000년대 들어 많은 기업들이 소셜 로봇의 상용화를 추진한 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로봇들 중에서도 미국의 지보, 보쉬의 자회사 메이필드로보틱스에서 만든 큐리(Kuri), 소트프뱅크의 페퍼와 나오(Nao), 블루프로그로보틱스의 버디(Buddy) 등의 소셜 로봇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또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고령자나 환자의 간단한 수발을 들 수 있는 HSR(Human Support Robot)과 정서 지원용 로봇인 피코비(Picobee)를 개발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LG전자가 공항 안내 로봇을 개발했고 중견업체인 퓨처로봇도 소셜 로봇을 공개했다. 그동안 등장했던 숱한 소셜 로봇들 중에서 대중적인 성공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소셜 로봇의 상용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한때 대표 스타로 각광받았던 두 로봇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지보와 큐리는 스타 교수와 글로벌 대기업의 자회사란 등장 배경 때문에 대중적인 관심과 대규모 투자를 받은 바 있다. 지보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에서 소셜 로봇 개발로 유명세를 얻었던 신시아 브리질 교수가 개발한 로봇이다. 최초 공개 이후 전 세계 기업들의 관심과 투자를 받았지만 제품 출시가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작년 하반기에 회사가 도산하면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큐리도 개발사인 메이필드로보틱스의 도산과 함께 상용화에 실패했다. 충분한 스타성과 대규모 투자란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두 로봇이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소셜 로봇의 핵심인 인간과의 소통 능력에서 두 로봇의 성능은 대화 기반의 AI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보다 특별히 더 우수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지보의 가격은 900달러(약 109만원), 큐리의 가격은 800달러(약 97만원)대로 50달러(약 6만원) 수준인 스마트 스피커보다 20배 가까이 비쌌다. 한마디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할 만큼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프트뱅크의 페퍼는 일본 유통업계 등에서 안내용 로봇으로 쓰이는 등 한정적으로나마 사업화됐다. 2018년 다시 출시된 소니의 아이보도 높은 기술적 완성도로 큰 인기를 끌면서 제한적인 사업화가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제한적인 사업화의 원인을 로봇에 탑재된 AI의 수준 향상을 위해 다양한 사용 데이터와 사용 신(scene) 확보에 초점을 둔 회사의 전략에서 찾기도 한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든 두 로봇도 아직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로 발전하지는 못한 상태다.

다양한 사례들을 종합하면 소셜 로봇의 대중화를 위해 필요한 점은 분명해 보인다. 소셜 로봇의 핵심 기능인 소통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음성·시각 정보의 인식 기술과 주변 상황을 고려한 상황 이해 능력,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종합적인 표현 능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결국 그 이면에 있는 AI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5호(2019.10.07 ~ 2019.10.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