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공수처 법안, 독립성·중립성 확보가 관건-공수처장이 특정 목적 갖고 수사 땐 견제 장치 없어
검찰 견제하겠다는 공수처는 누가 통제하나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고위공직자범죄(또는 부패)수사처(공수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약을 내걸면서다. “검찰 조직이 방대해 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1999년 박상천 법무부 장관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검찰총장 산하 준독립기구 형태인 ‘공직비리수사처’ 신설 방안을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당시 한나라당도 큰 틀에서는 공감했다. 하지만 검찰의 반발로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 때도 정부안(공직부패수사처)을 만들었지만 여야가 정치적 중립 문제로 대립한 끝에 무산됐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를 1호 공약으로 내세운 뒤 적극 추진에 나섰고 지난 4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됐다.

국회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두 공수처 법안이 제출돼 있다. 명칭은 다르다. 백 의원 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권 의원 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로 돼 있다.

고위 공직자가 저지른 부정부패·범죄 수사를 독립된 수사기관에 맡겨 보다 엄격하게 다루도록 한다는 취지는 같다. 하지만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다.
검찰 견제하겠다는 공수처는 누가 통제하나


◆ 법관·검사 5625명 등 고위 공직자 7000명이 수사 대상


수사 범위는 같다. 대통령·국회의원·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광역단체장·교육감·국무총리·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군 장성, 청와대·국정원·감사원 등 3급 이상 공무원 등이다. 고위 공직자의 배우자·직계존비속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다.

대통령은 4촌 이내 친족이 포함된다. 수사 대상 고위 공직자는 약 7000명이다. 이 가운데 법관(3228명)이 가장 많고 검사(2397명)가 그다음이다. 모두 5625명으로 전체 8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재판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 공수처에 밀려와 법관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백 의원은 현직과 퇴직 후 2년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한 반면 권 의원은 현직으로 제한한 것이 차이점이다. 퇴직 고위 공직자에게도 공수처법을 적용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보복성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백 의원 안은 형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를 포괄하고 있다. 즉 형법 제122~133조에 규정된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 직권남용, 피의 사실 공표죄 등을 모두 수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권 의원 안은 뇌물과 직권남용 등 부패 및 청탁 범죄로 한정했다.

공수처장 인사와 관련, 두 법안 모두 인사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 한 명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다음 임명하도록 했다. 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된다. 후보 2명 추천은 추천 위원 5분의 4 이상(7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한다.

두 법안의 차이점은 국회 동의 여부다. 백 의원 안은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국회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장관 인사청문회와 같은 방식으로, 청문회에서 부적격 판단을 받거나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반면 권 의원 안은 국회 동의까지 받도록 했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 견제권을 강화한 것이다. 공수처장의 임기는 백 의원 안은 3년 단임제, 권 의원 안은 2년 재임 뒤 1년 중임할 수 있다.

공수처 검사 임명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백 의원 안은 인사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공수처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도록 했다. 반면 권 의원 안은 인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하면 공수처장이 곧바로 임명할 수 있다.

백 의원은 전직 검사 수를 전체의 50%를 넘지 못하게 했다. 검찰 견제를 위해서다. 수사와 재판 경력 대신 조사 경력만 있어도 자격이 된다. 이 때문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 등 활동 경력이 있는 인물을 공수처로 투입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이 야당에서 나온다. 권 의원은 전직 검사 출신 제한 규정을 따로 두지 않았다.

기소와 관련, 두 법안 모두 공수처가 자체 수사한 사건 가운데 대법원장·대법관·검찰총장·판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갖도록 했다. 그 이외는 검찰이 기소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소 방식엔 차이가 있다. 백 의원 안은 공수처가 수사 후 기소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권 의원은 기소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기소심의위는 만 20세 이상 국민 중 무작위로 추출해 뽑힌 7~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기소심의위가 공수처 검사에게 수사 내용을 들은 뒤 공소 제기 여부를 심의해 의결하면 검사는 이를 따라야 한다.

문제는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공수처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수처장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으면 직위를 보장받는다.

공수처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고위 공직자에 대해 수사하거나 반대로 봐주기 수사를 하더라도 마땅한 견제 장치가 없다.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할 때 추천 위원 5분의 4 이상이 찬성(7명 중 6명)해야 한다는 것만 보면 형식적으로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대하면 추천될 수 없다.

민주당은 이와 같이 야당의 견제 장치가 작동됨에 따라 공수처가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여야가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합의하지 못할 때다. 이때는 여야가 지지하는 후보 1명씩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대통령은 여당 지지 후보를 지명할 게 뻔하다.

◆ “무소불위 공포청 될 것” “독립성 보장 의지 확고”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없고 ‘슈퍼 사찰 기구’ ‘무소불위 공포청’이 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공수처장을 대통령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고 검사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공수처가 대통령 하명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민주당은 “공수처 독립성 보장의지가 확고하다”고 반박한다.

민주당은 늦어도 올해 정기국회 회기 마감(12월 9일)까지는 공수처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하지만 불투명하다. 공수처법이 처리되려면 의원 과반(149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열쇠는 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 등이 쥐고 있다. 현재 공수처 처리에 찬성하고 있는 민주당(128명)과 정의당(6명), 민중당(1명), 친여 성향의 무소속(4명) 의원들을 합하면 139명이다. 과반에 못 미친다. 민주당이 10월 말이나 11월 초 공수처 처리는 힘든 실정이다.

바른미래당 당권파(13명), 대안신당(10명), 민주평화당(4명)이 지난 4월 합의한 대로 선거법 개정안을 사법 개혁안보다 먼저 처리하기로 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공수처 법안 처리 일정을 늦춰 11월 27일부터 본회의에 부의 가능한 선거 법안과 동시에 표결에 부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