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올해 ‘기술수출 10건’ 도약 신호탄
-SK바이오팜 등 ‘대어’ 상장 추진도 기대감
악재로 몸살 앓은 제약·바이오업계…2020년엔 ‘훈풍’ 불까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유독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바이오업계에서 잡음이 많았다. 지난 4월 초 불거진 ‘인보사 사태’ 이후 신라젠 등의 임상 3상 실패 소식이 이어지며 바이오주들의 주가가 요동쳤다.

반면 악조건 속에서도 기업들의 기술수출 성과는 꾸준히 이어졌다. 증권가에서는 내년부터 업종 전반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로 기술 이전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들의 임상이 시작되고 조 단위 ‘대어’들이 상장을 추진하면서 얼어붙은 투자 심리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초부터 ‘인보사 사태’로 발칵 뒤집혀

올해 제약·바이오업계에 가장 먼저 찬물을 끼얹은 곳은 코오롱생명과학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월 31일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주성분 중 1개 성분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와 다른 세포인 것으로 추정돼 코오롱생명과학 측에 제조·판매 중단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해 2017년 7월 식약처로부터 29번째 국산 신약으로 시판 허가를 받은 제품이다. 하지만 허가받은 지 채 2년도 안 돼 연골 세포인 줄 알았던 성분이 신장 세포였다는 사실이 회사 측의 미국 임상 과정에서 밝혀지면서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식약처의 판매 중단 조치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유전자를 분리·정제해 연골 세포에 삽입하는 과정에서 신장 세포의 일부가 혼입된 것으로 보이지만 안전성과 유효성에는 문제가 없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여파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임상 후 허가 받은 의약품의 성분이 새롭게 밝혀진 세계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대가는 혹독했다. 식약처는 ‘인보사’의 품목 허가 취소 처분을 7월 3일 최종 확정했다. 인보사의 주성분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와 다르고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 일부도 허위로 밝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식약처의 명령에 코오롱생명과학은 제조 판매 품목 허가 취소 처분 집행 정지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양측은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악재로 몸살 앓은 제약·바이오업계…2020년엔 ‘훈풍’ 불까
‘인보사 사태’ 이후에도 악재는 계속됐다.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던 바이오 기업들이 사실상의 임상 실패를 연이어 선언했다.

신라젠은 8월 2일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에서 면역 항암제 파이프라인 ‘펙사벡’의 임상 시험 중단을 권고 받았다고 공시했다. 시장은 진행 중인 임상 시험의 유효성과 안전성 등을 평가하는 중간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임상 실패로 받아들였다. 신라젠의 주가는 곧바로 폭락했다.

신라젠은 공시 전 일부 임직원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 거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용 파이프라인 ‘엔젠시스’로 기대를 모았던 헬릭스미스도 어이없는 실수로 최종 단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헬릭스미스는 9월 23일 엔젠시스의 임상 3상에서 일부 환자가 위약(가짜 약)과 약물을 혼용했을 가능성이 발견됐다고 공시했다.

헬릭스미스는 공시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위약군과 신약후보물질 투여군의 약물이 섞이는 실수로 임상 데이터를 명확하게 분석할 수 없게 됐다”며 “6개월 안에 임상 3상을 다시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헬릭스미스는 최대 주주 일가가 공시 직전 보유 주식을 장내 매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임상 3상 결과를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에이치엘비는 지난 6월 27일 “개발 중인 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그러나 며칠 뒤 유튜브를 통해 기존 발표를 번복했다. 내부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지만 임상 3상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 리보세라닙이 신약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측은 9월 27일부터 닷새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 종양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최종 결과를 발표했지만 업계의 의문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경험이 부족한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대신 증시 자금에 의존해 대규모 글로벌 임상 3상을 직접 수행하는 추세”라며 “이러한 선택은 노하우 등의 축적 면에는 분명 효과가 있지만 경제적으로 과연 효율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올해도 기술수출 ‘잭팟’

업계 전반에 악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올 들어 총 10건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1월 길리어드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파이프라인을 총 7억8500만 달러(약 9190억원)에 라이선스 아웃하며 기술수출의 물꼬를 텄다. 전임상을 시작하지 않은 탐색 물질 단계에서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유한양행은 지난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용 파이프라인 ‘YH25724’를 8억7000만 달러(약 1조180억원)에 기술수출하기도 했다.
악재로 몸살 앓은 제약·바이오업계…2020년엔 ‘훈풍’ 불까
GC녹십자도 2건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지난 1월 중국 캔브리지에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를, 4월 일본 클리니젠에 정맥주사 제형의 ‘헌터라제 ICV’를 각각 라이선스 아웃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간질) 치료용 파이프라인 ‘세노바메이트’를, JW중외제약은 통풍 치료용 파이프라인 ‘URC102’를 각각 기술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부터 업종 전반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제약사로 기술수출된 파이프라인들의 임상이 내년부터 다수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마일스톤(기술료) 수취 등에 따라 해당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며 “특히 한미약품은 지난 7월 얀센의 기술 반환으로 주가가 과도하게 조정 받았지만 점차 연구·개발(R&D) 모멘텀이 발생하면서 상승세를 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가치가 조 단위에 달하는 ‘대어’들의 연이은 기업공개(IPO) 추진도 제약·바이오 투자 심리 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SK바이오팜은 지난 10월 25일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IPO 절차에 돌입했다. SK바이오팜은 SK그룹 지주사인 SK(주)의 100% 자회사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1월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판매 허가 신청서(NDA)를 FDA에 제출했다. 국내 기업이 파이프라인 발굴부터 글로벌 임상, FDA 허가 신청까지 직접 수행한 첫 사례다. 허가 여부는 오는 11월 21일(현지 시각) 결정된다.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서만 연간 1조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장에서는 SK바이오팜의 기업 가치를 6조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SK바이오팜은 중추신경계와 항암 분야 중심의 8개의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선 애널리스트는 “SK바이오팜은 2016년 상장한 초대형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능가하는 또 다른 대형주로, 내년 초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콜마의 자회사 CJ헬스케어도 예비 ‘코스피 유망주’로 꼽힌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헬스케어는 IPO 주간사회사 선정을 위해 최근 증권사들에 입찰 제안 요청서(RFP)를 발송했다.

CJ헬스케어는 이르면 올해 안에 주간사회사를 선정하고 2022년 말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