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넘어선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해야
변화하고 발전해 온 ‘비트코인 회의론’의 3단계 과정은
[한경비즈니스 =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연구소장] 주변에서 비트코인을 실제로 보유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2017년 암호화폐 거래소의 실적을 고려할 때 비트코인은 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년 이상 장기 보유자들은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지만 단기 투자로 손실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피자 두 판을 배달해 주고 2만 비트코인을 얻었다고 하는 영국의 투자자도 재미삼아 해본 거래로 얻은 비트코인을 얼마 안 있어 약간의 이익을 보고 처분해 버렸다고 한다.
장기 보유에 성공하려면 주변 사람들이 반복해 읊조리는 비트코인 회의론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가 신봉하는 논리를 홀로 외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사실 주류적 사고에서 볼 때 말이 안 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하나의 현실로 굳어질수록 비트코인 회의론도 변화 발전해 왔다.
첫째, 비트코인은 사기거나 튤립 같은 거품이다.
둘째, 비트코인은 낡은 코인이고 그보다 더 좋은 코인들이 계속 나올 것이며 이미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기술은 계속 발전하기 마련이라 현재 나온 모든 코인의 미래 역시도 비트코인만큼 불확실하다.
셋째, 블록체인을 파악한 정부들이 나서 안정적인 코인을 발행하려고 할 것이다. 이 코인은 달러·원화 등과 법적으로 교환된다. 그 누구도 가치를 보장해 주지 않고 가격이 요동치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들은 신뢰를 잃고 가격이 0으로 수렴할 것이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발표하자 각국의 중앙은행도 블록체인 디지털 머니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는 뉴스가 늘었다. 마치 회의론이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것 같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여전히 비트코인을 사기로 보는 이들도 많고 블록체인 기술이 발달해 비트코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 역시 업계에서는 상식이다.
◆‘일찌감치 내린 결론’을 고수하는 회의론자들
회의론의 변화 발전은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주장해 온 이들의 지적 성숙이나 반성의 결과가 아니다. 회의론은 비트코인 주류화라는 거대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적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코인들은 제각각 비트코인의 속성 중 한 부분을 본뜨고 확대하려는 의도로 창안됐는데 회의론자들은 이를 단순한 무질서로 치부하며 비트코인을 허다한 토큰의 하나로 폄하하기 바쁘다. 중앙은행들조차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머니의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는 블록체인이 하나의 글로벌 제도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지만 회의론자들은 이를 비트코인 조종(弔鐘)이라며 거꾸로 읽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비트코인만은 인정할 수 없다는 고집이다. 회의론을 하나하나 논박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회의론의 본질이 새로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완고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회의론자들은 일찌감치 내린 결론에 스스로 갇혀 있다.
문제는 그 결론이 고독한 지적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처음 정보를 접할 때 우연히 취했던 주장이 한번 각인된 뒤 이를 고수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나름의 논리를 동원하지만 그 논리라는 것이 결국 주변이나 미디어에서 나오는 주류적인 사고를 되풀이하는 것인데 미디어는 대중의 인식을 추종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내린 결론을 타인에게 다시 듣고 확신을 굳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둘째, 셋째 회의론은 장기 투자자들조차 흔들리게 하는 난제인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두 쟁점 모두 경쟁하는 여러 기술 중에서 어떤 것이 채택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경험적 법칙에 따르자면 비트코인은 결국 퇴장당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초점을 두고 비트코인을 평가하자면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초창기의 혁신 제품은 후발 주자들에 우위를 빼앗기면서 소명을 다하기 마련이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수용은 경험칙이다. 이더리움의 ‘블록체인 2.0’이라는 마케팅 전략이 성공했던 것도 사람들이 이 경험칙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둘째, 셋째 회의론에 굴하지 않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을 단순한 기술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트코인을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본다. 1000만원이 넘었고 발명된 지 10년이 지났고 수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으며 채굴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목록들을 제시한다. 언뜻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으로 들린다. 결과로 모든 과정이 합리화된다는 논리와 겹치는 데다 현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화폐거나 화폐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현상을 앞세우는 이 논리가 생각보다 강력히 와 닿는다. 화폐의 핵심은 신뢰인데 신뢰는 경험적이다. 비트코인이 가장 오래됐고 가장 비싸고 가장 강건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부인하기 어려운 현상과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떼어놓을 수 없고 이는 강력한 충격이 오기 전까지 뒤집어지기 어려운 경쟁 우위다.
기술적으로 압도적인 또 다른 블록체인 시스템이 비트코인에 강력한 충격을 가하기 어렵다. 비트코인에 쓰인 기술이 투박하기 때문이다. 더 세련된 기술에 의해 투박한 기술은 밀려 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겠지만 투박하기 때문에 정교한 기술들을 품어낼 수도 있다. 비트코인은 어떤 특정한 용도에 최적화돼 있지 않다. 예측성이라는 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포기한 선택의 결과다. 코인의 창안자가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것도 예측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지만 무엇보다 비트코인이 거대 기업 혹은 강력한 국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중립성이야말로 예측성을 높이는 비트코인의 정체성이다.
◆투박하기에 예측 가능한 비트코인
게다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블록체인은 암호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코인들 간에 무신뢰 거래가 가능하다. 즉 블록체인을 넘나들 수 있다. 자신의 비트코인을 묻어 놓은 비밀 키를 라이트코인을 소유한 상대에게 보내고 상대의 라이트코인을 잠근 키를 넘겨 받아 중재자 없이 코인 거래를 완료하는 아토믹 스와프(atomic swap) 기술이 대표적이다. 블록체인 간 무신뢰 거래가 가능하다면 결국 수많은 블록체인 생태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신기술에 의해 비트코인이 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전제를 부정한다. 유력한 코인들 간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생태계일수록 중심의 역할이 부상한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이 거대한 블록체인 생태계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총가치 면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인 비중과 강력한 정부들이 콕 집어 비트코인을 금지하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비트코인의 투박함이 세련된 기술들의 모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현상’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