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스마트 콘트랙트 통해 무한한 ‘결합성’ 확보 가능…메이커다오의 ‘다이’가 선두주자
‘상상 그 이상의 금융’을 꿈꾸는 디파이의 미래
(사진) 일본 오사카에서 지난 10월 열린 데브콘5에서 메이커다오에 대해 설명하는 룬 크리스텐슨 CEO./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한경비즈니스 =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디파이(DeFi : 탈중앙화금융)의 선봉장은 크립토 뱅킹 프로토콜인 ‘컴파운드(Compound)’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디파이 프로토콜에 예치된 자산 규모는 모두 합쳐도 아직 1조원 수준이다. 올해 4월 기준 KB국민은행의 운용 자산이 200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전통 금융에서 보면 아직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서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캐피털(VC) 중 하나인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컴파운드에 2500만 달러(약 292억4000만원)를 투자했다. 당시 컴파운드의 주식 가치 평가액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VC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디파이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바로 ‘결합성(composability)’이다. 이 개념이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 수 있지만 해외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는 가장 핫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결합성’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앱)이 다른 앱의 기능을 자유롭게 활용하거나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앱이 마치 하나처럼 결합돼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정보기술(IT) 비즈니스에서 개방형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등을 활용한 기업 간 협력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다른 블록체인 앱의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상대 사업체에 어떠한 종류의 동의나 합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개방형 API라고 해도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사용 방향에 대해서나 너무 많은 사용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API 제공자가 앱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 콘트랙트에서는 이러한 차단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열려 있는 기능의 범위가 매우 넓다. 스마트 콘트랙트도 기능을 어디까지 개방할 것인지 개발자가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토큰 표준을 따르면 굉장히 많은 범위까지 개방된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API를 공개한다고 해도 대부분 조회 기능에 국한될 뿐 송금이나 출금 관련 기능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대부분의 디파이 스마트 콘트랙트는 보안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내부의 자산과 관련한 기능들이 대부분 공개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앱 간 호출이 무신뢰(trustless)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다른 회사의 API를 100%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출이 실패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동작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스마트 콘트랙트는 누가 개발했든, 누가 호출하든 코드로 정의된 그대로 동작한다.
◆기존의 ‘개방형 API’와는 본질적 차이 있어
‘결합성’이 눈에 띄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디파이의 뼈대가 되는 메이커다오의 ‘다이(DAI)’, 가만히 두면 복리가 붙는 ‘시다이(cDAI)’, 시다이에서 이자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알다이(rDAI)’, 무위험 복권이라고 할 수 있는 ‘풀투게더(Pool together)’가 대표적이다.
메이커다오는 현재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했다. 그 힘의 근원은 바로 메이커다오 프로젝트가 발행한 다이(DAI)라는 토큰의 결합성에 있다. 다이는 미국 달러의 가치를 추종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중요한 것은 이더리움 생태계 내의 어떤 프로젝트든 다이의 개발사인 메이커다오의 허락이나 사업 제휴 없이도 이를 활용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더리움 디파이 생태계에서 규모 기준으로 나열했을 때 다이를 사용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컴파운드는 예치금과 이자에 대한 인출 권리를 시토큰(cToken)이라는 형태로 사용자에게 돌려준다. 예를 들어 다이를 예치하고 시다이를 받으면 이 시다이에 계속 이자가 쌓이게 된다. 또한 이 시다이를 다른 사람에게 송금하거나 다른 스마트 콘트랙트에 예치할 수도 있다.
리디머블(Redeemable)은 시토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원금을 분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이자의 수혜자를 지정하고 다이를 맡기면 이를 시다이로 바꿔 보유하고 원금 인출권에 해당하는 알다이를 반환한다. 기본적인 사용 시나리오는 원금을 소모하지 않는 기부다. 이자 수령인을 따로 지정해 놓기만 하면 원금 인출권은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이자를 계속 다른 사람이 받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알다이를 반드시 기부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가 미국 본사가 자체 결제 서비스를 위해 모은 선수금의 규모는 1조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 1%의 예금 이자만 받을 수 있어도 1년에 140억원이다. 리디머블을 이용하면 이러한 이자가 낭비되지 않고 고객의 주머니로 들어가도록 할 수 있다. 스타벅스가 알다이를 결제 수단으로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일반 사용자들은 자신의 다이를 리디머블에 넣고 알다이를 받는다. 이자 수령인을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이자 수령인이 된다. 이 상태에서 알다이를 가지고 스타벅스 모바일 앱에 선불 충전을 하면 스타벅스 충전금 잔액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사용자가 온전히 다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결합 사례로 무위험 복권 콘셉트도 있다. 바로 풀투게더다. 사용자들은 다이를 풀투게더에 예치한 수량과 비례해 티켓을 받는다. 풀투게더 스마트 콘트랙트는 발생한 이자를 매주 모아 임의로 추첨한 티켓 보유자 중 한 명이 모두 받을 수 있게 한다. 상금은 오로지 이자에서 오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원금을 그대로 회수할 수 있다. 현재 3억원 정도의 예치금이 쌓여 있고 40만원 정도의 상금이 매주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파생상품 등에서도 프로젝트 시작
결국 결합성이 발현되는 것은 블록체인이 가상 디지털 계약 또는 자산을 실체화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상의 계약은 현실 세계의 존재하는 물리적인 객체와 마찬가지로 물리 법칙이 허락하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상호 작용할 수 있다.
또 이러한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다이라는 하나의 자산만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파생 사례가 발생하는데 현재 생태계에서 개발 중인 다양한 자산 형태를 고려하면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비트코인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거래하는 wBTC나 tBTC, 여러 토큰들의 마진(레버리지·롱&쇼트) 포지션을 토큰화하는 풀크럼(Fulcrum), 부동산의 소유권을 토큰화하는 리얼잇(RealT), 현실 세계의 자산들을 추종하는 합성 자산(Synthetic asset)을 발행하는 UMA 등의 프로젝트가 이미 제품을 내놓았거나 테스트용 제품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블록체인 위에서 얼마나 큰 규모로, 다양한 자산들이 다뤄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스마트 콘트랙트 표준에 맞춰 개발되기만 한다면 기존 금융에서는 보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앱과 서비스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에서 우리가 배웠듯이 다양한 파생상품이 마구잡이로 생겨나는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 잘 파악하고 대비한다면 다가오는 재앙을 막을 수도,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