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불출마는 현실 여건과 미래 겨냥한 포석 분석…인재 등용과 물갈이 폭 커질 듯

임종석의 불출마 선언이 부른 민주당 ‘나비효과’
[한경비즈니스=김형호 한국경제 기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격적인 총선 불출마 선언이 여권 내에서 후폭풍을 낳고 있다. ‘586그룹’의 대표 주자인 임 전 실장의 불출마는 총선에 뛰어든 청와대 참모진뿐만 아니라 여권 내 중진 의원들의 향후 거취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임 전 실장이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임 전 실장과 가까운 여권 내 586 인사 등 지인들도 불출마 선언 전까지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전날 임 전 실장의 최측근 인사를 만난 한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의 거취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며 “이튿날 공식 발표가 나오고서야 ‘어제 미리 얘기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만큼 임 전 실장과 최측근 일부를 제외하고 보안 속에 최종 결정이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임 전 실장은 당초 종로구 출마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 이사까지 했지만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자 거취를 두고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국회의장을 지내면 후진을 위해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는 게 정치권의 관례다. 임 전 실장도 이를 염두에 두고 상징성이 큰 종로구 출마를 준비해 왔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을 만나 출마 의사를 밝혔음에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이후 정 전 의장이 주변에 내년 4월 총선 출마 의지를 강하게 밝히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임 전 실장으로선 이미 후배에게 양보한 과거의 지역구인 성동구로 돌아가거나 다른 지역구를 기웃거리는 것도 모양새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 청와대 참모 출신의 한 인사는 “임 전 실장의 스타일은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2012년 총선 직전 상황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돼 주목 받았다.

하지만 과거 임 전 실장의 보좌관이 금품 수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력을 거론하며 “보좌진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인사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과 지역구 후보를 모두 거머쥐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당 안팎의 비판이 일자 전격적으로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했다.

임 전 실장의 지역구는 통일부 정책보좌관 출신인 한양대 후배가 얼떨결에 물려받았다. 현재 민주당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홍익표 의원이다.


◆ 여권 인사들 ‘정치 떠나 있는 게 나쁘지 않은 판단’


일각에선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는 임 전 실장의 선언을 두고 사실상의 정계 은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권 인사들은 대체적으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성격의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실적인 여건과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지금 시점에서는 정치를 떠나 있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정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판단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 전 실장의 개인적 판단과 별개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는 발표는 여러 ‘나비 효과’를 낳고 있다. 당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출마설이 쏙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1기 비서실장을 지낸 임 전 실장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마당에 윤 실장이 뒤늦게 총선에 뛰어들 개연성은 크게 낮아졌다.

청와대 참모진 출신 총선 후보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까지 겹쳐 윤 실장은 사실상 청와대 ‘스테이’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새다. 윤 실장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진의 추가 총선 발탁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임기 반환점을 맞아 11월 9일 개최한 기자 간담회에서 “당에서 요구하고 본인이 강하게 원하면 놓아주겠다”고 했지만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인사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제외하고는 없다는 게 여권 유력 인사의 전언이다.

최근엔 이 총리의 차출을 두고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총선을 앞두고 이 총리가 당에 복귀해 이해찬 대표와 총선을 지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지만 일각에선 차기 총리 후보를 잘못 발탁하면 인사청문회 후폭풍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조국 전 장관 때처럼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사안이 불거지면 총선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총리를 현시점에 교체해야 하는지 여러 고민이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꼬리표’를 단 출마자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들이 실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청와대 출신 후보들 대부분이 정치 신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회의원 경험이 있는 인사들은 이용선 전 일자리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 정도다. 모두 초선 출신들이고 이미 지역 위원장을 맡고 있어 경선 과정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구청장을 지낸 김우영·김영배·민형배 전 비서관들도 지역구를 오랫동안 다져 왔기 때문에 경선 외의 방법으로 불이익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 후폭풍 직격탄 맞은 민주당 내 586그룹들


권혁기 전 춘추관장을 비롯한 나머지 인사들은 이번 총선에 처음 도전하는 사실상의 정치 신인들이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한 참모는 “청와대 출신 참모들도 경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질 텐데 단지 출마자가 많다는 이유로 제약을 둬야 한다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반발했다.

임 전 실장의 불출마는 오히려 평소 ‘형’, ‘누나’라고 부르던 586그룹 당내 중진 의원들에게 예기치 않은 후폭풍을 낳을 개연성이 높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정치에 입문한 민주당 내 586그룹은 현재 대부분 3선 이상의 중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송영길·최재성·이인영·우상호·김현미·유은혜 의원 등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재선인 유은혜 의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3~4선들이다. 이 가운데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는 유 의원과 국토부 장관인 김 의원은 내각에 잔류하면 자연스럽게 지역구 출마 문제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의원이 원내 사령탑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586그룹에 대한 인위적 물갈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586그룹 의원들 내에서도 “우리를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다만 586 출신 의원 중 일부는 상황에 따라 불출마 결단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586 출신 한 의원은 “떠밀려 가지는 않겠다”면서도 “다만 때가 되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가 글을 쓰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어떤 형태든 다음 총선에서 여권의 대대적인 물갈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국회의장, 원혜영 의원, 백재현 의원 등 이미 상당수 다선 의원들이 불출마 의사를 밝힌 가운데 내각에 들어간 진영·박영선 의원,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 의원까지 수도권 지역구의 상당수가 주인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만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구 가운데 10석 이상이 공석으로 나올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여기에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싹쓸이한 호남 지역은 총 28석 가운데 민주당 의석이 단 3석에 불과하다. 다음 총선 지형을 고려할 때 호남에서도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관계자는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중진과 비공식적으로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들, 호남 공천까지 고려하면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 폭이 40여 곳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임 전 실장의 불출마로 선택의 폭이 한층 커진 만큼 인적 쇄신 규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