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5조5000억’ 뇌전증 치료제 미국 시판 승인
-SK바이오팜, 2020년 상반기 코스피 상장 전망
-CMO 글로벌 통합 법인 ‘SK팜테코’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
반도체 이어 신약 ‘잭팟’…차세대 성장 엔진 완성한 SK그룹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SK(주)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어 장기간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제약·바이오 사업에서 ‘잭팟’을 터뜨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1월 21일 SK(주)의 100%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의 뇌전증(간질)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를 성인 대상 부분 발작 치료제로 시판을 허가했다.

국내 기업이 기술 수출 없이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 시험, 판매 허가 신청(NDA)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의 승인을 받은 첫 성과였다.

◆개발부터 미국 판매까지 도맡는 첫 사례
반도체 이어 신약 ‘잭팟’…차세대 성장 엔진 완성한 SK그룹
FDA는 매년 수십 건의 NDA 심사를 진행하는 중에서도 엑스코프리의 승인 직후 이례적으로 홈페이지에 보도 자료를 올렸다. 엑스코프리가 환자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의학 전문지 피어스파마 등 글로벌 유력지들도 엑스코프리의 NDA 결과를 앞다퉈 다뤘다. SK바이오팜의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엑스코프리의 마케팅과 판매를 직접 맡아 2020년 2분기 미국 시장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상업화에 기대를 내비쳤다.

엑스코프리가 FDA의 승인을 받기까지는 꼬박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SK(주)에 따르면 파이프라인 개발을 위해 합성한 화합물 수만 2000개 이상, FDA에 신약 판매 허가 신청을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어려워하는 중추신경계(CNS) 치료제, 그것도 기존 약으로 낫지 않는 난치성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 제약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으로 평가 받는 이유다.

SK가 국산 신약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1993년 신약 개발을 시작한 이후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투자를 지속해 온 최태원 SK 회장의 뚝심 덕분이었다.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도입하거나 바이오 벤처에 투자해 시너지를 내는 전략이다. 외부에서 사들인 파이프라인을 발전시켜 자금력 있는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해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을 높이는 추세다.

2003년 국산 신약 최초로 FDA 허가를 받은 LG생명과학(현 LG화학)의 항균제 팩티브와 2014년 승인 받은 동아ST의 항생제 시벡스트로 등도 기술 수출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반도체 이어 신약 ‘잭팟’…차세대 성장 엔진 완성한 SK그룹
반면 SK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최 회장은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 개발 조직(라이프사이언스)을 지주사 직속으로 두고 그룹 차원에서 투자와 연구를 진행하도록 했다. 신약 개발은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지속적 투자와 장기적 비전이 담보돼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SK는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지속했다. 존슨앤드존슨에 기술 이전했던 SK의 첫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2008년 출시 문턱에서 좌절됐을 때도 최 회장의 뚝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최 회장은 오히려 그해 SK바이오팜의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설립해 마케팅 조직을 구축하고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때 설립한 SK라이프사이언스는 엑프코프리의 임상 3상을 주도했고 발매 이후 미국 시장 마케팅과 판매도 직접 도맡을 예정이다.

SK(주) 관계자는 “우리의 1차 목표는 글로벌,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고부가가치 약물을 개발하는 것이었고 그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시장 조사 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2014년 49억 달러(약 5조8000억원) 규모이던 세계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22년까지 69억 달러(약 8조1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엑스코프리의 연매출은 핵심 시장인 미국에서만 연간 1조원 이상으로 예측된다. 통상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는 10여 년간 판매에 따른 수익을 온전히 가져올 수 있게 된다. SK는 이를 기반으로 제2, 제3의 글로벌 혁신 신약(first in class)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상건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하나의 약물로 조절이 쉽지 않아 여러 치료제를 병용 투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엑스코프리는 기존 치료제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기존 부분 발작 치료제인 UCB의 빔팻은 2018년 기준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며 “엑스코프리는 글로벌 임상 2b상에서 빔팻 대비 우수한 발작 억제 효과를 입증한 점을 감안하면 그 가치가 약 5조5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출시 뒤 6~7년 후부터 연간 약 1조원의 매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 IPO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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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코프리는 미국 시장을 시작으로 유럽과 동아시아(한·중·일) 등에서도 상업화될 예정이다. SK바이오팜은 미국과 아시아에서는 제품을 직접 판매하고 유럽에서는 파트너사를 통해 판매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월 엑스코프리의 유럽 승인을 위해 스위스 아벨 테라퓨틱스와 총 5억3000만 달러(약 62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유럽 지역 상업화를 위해 이뤄진 중추신경계 파이프라인 기술 수출 중 최대 규모다. 향후 유럽의약품청(EMA)의 심사를 통과하면 현지 35개국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SK바이오팜의 중추신경계 분야 기술 역량은 미국 재즈와 공동 개발한 수면 장애 신약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수노시는 FDA에서 시판 허가를 받고 지난 7월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최근 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에서 판매 승인을 권고하는 긍정 의견을 받아 유럽 판매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와 수노시의 상업화를 계기로 바이오 신약 개발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계획이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는 “8개의 중추신경계 합성 신약 파이프라인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유망한 국내외 바이오 파이프라인 등의 ‘라이선스 인(기술 도입)’도 고려하고 있다”며 “사명에서 보듯이 SK바이오팜의 관심사와 최종 목표는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의 기업 공개(IPO)도 본격화한다. SK바이오팜은 최근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IPO 절차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의 기업 가치를 6조원 이상으로 평가한다. SK바이오팜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신약 개발에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이어 신약 ‘잭팟’…차세대 성장 엔진 완성한 SK그룹
선 애널리스트는 “2020년 상반기 상장이 거의 확실한 SK바이오팜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뒤를 잇는 ‘초대형주’로 공모 금액 규모만 1조원 이상, 시가총액은 6조~8조원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SK바이오팜 상장을 통해 국내 제약·바이오 섹터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회사인 SK(주)도 제약·바이오 분야 혁신 기술에 투자하는 등 SK바이오팜에 대한 꾸준한 지원을 이어 가고 있다. 독보적 유전자 치료 기술을 가진 미국 스타트업 진에딧과 국내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기업 스탠다임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이다.

SK(주)가 2018년 말 투자한 진에딧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 카스9’ 적용 치료제를 효과적으로 체내에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SK는 투자를 통해 유전자 치료 영역에서도 전문성을 축적하고 있다. 연평균 성장률 36%에 달하는 유전자 가위 관련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SK(주)는 최근 AI 신약 개발사인 스탠다임에 약 1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시장 규모는 매년 41%씩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독점적 사업자가 등장하지 않은 초기 단계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인수·합병(M&A)이나 자체 조직 구성 등을 통해 AI 역량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본제약공업협회에 따르면 AI를 신약 개발에 적용하면 평균 10년이 걸리던 개발 기간이 3~4년으로 최대 70% 감축된다. 평균 1조2200억원이 들던 개발 비용도 절반 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다. 스탠다임이 보유한 기술은 데이터 학습(트레이닝)부터 후보 물질군 생성(제너레이션), 최종 합성 후보 선별(필터링) 등 신약 후보 물질 디자인 과정을 가상 환경에서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설계한 AI 솔루션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주) 관계자는 “글로벌 수준으로 고도화한 알고리즘 개발 등 자체 신약 개발 역량을 보유한 스탠다임과 SK 간 파트너십을 통해 양 사의 기술이 글로벌 마켓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M&A 등으로 CMO 사업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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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주)는 그룹 제약·바이오 사업의 ‘캐시 카우’격인 의약품 위탁 생산(CMO) 비즈니스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CMO 사업에서도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와 유럽을 직접 겨냥해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SK(주)는 최근 미국 란초 코르도바 인근 새크라멘토에 CMO 통합 법인인 SK팜테코를 설립했다. 한국의 SK바이오텍과 SK바이오텍 아일랜드, 미국 암팩을 통합 운영하기 위한 조치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혁신 기업이 밀집한 캘리포니아 지역에 국내 기업이 자리 잡고 사업 확장을 본격화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내년 1월 통합 법인 설립이 완료되면 SK(주)가 지난 2년간 글로벌 M&A와 증설 등을 통해 짜 놓은 ‘미국·유럽·한국’ 삼각편대의 시너지가 극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SK는 SK바이오텍 대전 본사와 세종 신공장 등의 국내 CMO 생산단지를 갖췄다. 2017년에는 SK바이오텍을 통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아일랜드 생산 시설을 인수했다. 2018년에는 미국의 CMO 암팩 인수에 성공했다.

이들 기지의 생산 규모는 현재 100만 리터 수준으로, 2020년 이후에는 세계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SK는 이들 기지의 생산 노하우와 기술력, 글로벌 판매망을 기반으로 2022년 기업 가치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선도 CMO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CMO업계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통합 법인의 성장 전망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의약품 생산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생산 시설을 보유하지 못한 신생 제약 업체뿐만 아니라 기존 대형 제약사들도 전문 CMO에 의약품 생산을 맡기는 추세다.

임상 단계부터 상업화 단계까지 다양한 원료 의약품을 생산할수록 대형 수주가 가능한 만큼 글로벌 CMO들은 경쟁적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SK팜테코 출범으로 지역별 CMO가 통합 운영되면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생산 규모 확대에 가속이 붙을 것이라는 게 SK(주)의 설명이다.

세계적 고령화 추세와 만성 질환의 증가로 글로벌 CMO 시장은 2023년까지 연평균 7%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이 가운데 최근 3~4년간 선도 기업들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5%를 웃돈다.

SK(주)에 따르면 SK의 CMO 사업은 선도 기업들을 뛰어넘는 매출 성장과 연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해 왔다. 2018년에는 CMO 사업 통합 매출 4800억원 이상을 달성해 인수 이전과 비교해 세 배 가까이 성장했다.

SK(주) 관계자는 “글로벌 M&A를 통해 한국·미국·유럽 내 생산 기지와 연구·개발(R&D) 경쟁력을 확보한 데 이어 통합 법인 설립으로 CMO 3사 간 공동 운영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가 가능하게 됐다”며 “향후 통합 법인의 미국 현지 상장과 글로벌 M&A 등 추가 성장 전략을 통해 글로벌 ‘톱10’ CMO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투자형 지주회사’ 성공 모델 만든 장동현 SK(주) 사장
반도체 이어 신약 ‘잭팟’…차세대 성장 엔진 완성한 SK그룹
SK(주)가 제약·바이오 사업에서 이룬 성과를 두고 업계에서는 장동현 사장이 확립한 ‘투자형 지주회사’ 성장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지속적 포트폴리오 혁신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SK그룹을 먹여 살릴 미래 성장 동력 육성에 투자해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수·합병(M&A)을 통해 SK가 의약품 위탁 생산(CMO)의 ‘신흥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장 사장이 확립한 투자 모델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 사장은 ‘주력 사업이라도 성장의 한계가 명확한 자산은 사업을 조정한다’는 방향성 아래 일부 사업에 대해 선제적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를 통한 재원은 미래 성장 사업과 혁신 기술에 투자했다. CMO 사업에서 글로벌 M&A와 지분 투자를 진행한 뒤 피인수 기업·파트너사와의 시너지를 극대화기 위해 사업 확장 등의 밸류 업 작업을 진행했다. 스탠다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혁신 기술에 발 빠르게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SK(주)만의 투자 모델 덕분에 가능했다.

SK(주)의 한 관계자는 “장 사장은 국내외 투자 설명회 등을 통해 다양한 투자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사내에서도 두 달에 한 번꼴로 구성원 전원이 모여 일하는 방식의 혁신 등을 주제로 대화하면서 조직 내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를 찾아내 해결하고 있다”며 “장 사장의 리더십을 향한 구성원의 전폭적 신뢰와 지지가 없었다면 투자형 지주회사로의 변신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