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FOCUS]- 항공 등 핵심사업 부진에 구조조정 예고- 사내 문화 혁신에 팔 걷고 경영권 안정화에 주력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올해 4월 조양호 한진그룹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큰아들 조원태 회장이 그룹의 수장이 됐다. 회장 선임은 갑작스러운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그로부터 7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간 재계 순위 14위 한진그룹 그리고 한진그룹을 이끄는 조원태 회장은 조용함을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변화를 꾀해 왔다. 조 회장은 특히 미국 뉴욕에서 11월 19일 회장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를 열며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그것(대한항공)을 서포트하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경영 구상을 처음 밝혔다. 앞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 회장의 숙제를 체크해 봤다.
“이익 안 나면 버린다”…취임 7개월’ 조원태 회장의 세 가지 도전
(사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뉴욕 맨해튼에서 11월 19일 열린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한국경제신문
과제 1 성공적 구조조정 마무리 =
조 회장은 간담회에서 “항공 운송과 제작·여행업·호텔 등 핵 심사업 외엔 별로 생각이 없다. 이익이 안 나면 버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진그룹의 재무 체력은 악화되고 있다. 대한항공의 올해 3분기 이자보상배율은 0.62배까지 떨어졌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로 떨어지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말 기준으로 대한항공의 차입금은 7조2702억원이다. 작년에만 이자비용으로 5463억원을 지급했다. 부채 비율도 2017년 537.86%에서 작년 706.56%까지 치솟았다.
영업 상황도 좋지 않다. 핵심 사업인 항공업과 호텔업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월셔그랜드호텔 영업이 본격화됐지만 호텔사업부의 적자는 더 커졌다. 2017년 500억원의 손실을 보는 등 호텔부문은 2015년부터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값비싼 비행기들을 빌려 쓰는 항공업의 특성 때문에 대한항공은 최근 높은 이자비용과 함께 환손실까지 이어지면서 적자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5년간 2017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였다. 특히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5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올해에도 6000억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이 같은 구조를 깨기 위해 조 회장은 항공업과 이를 지원하는 사업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한진그룹 내 계열사를 구조조정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물론 한진그룹은 그동안 주로 항공 사업과 관련된 계열사들을 거느려 왔기 때문에 ‘항공업 관련 외의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굳이 찾는다면 부동산 관리를 맡고 있는 정석기업을 꼽을 수 있는데 정석기업의 지분 대부분을 조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데다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어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는 힘들다.
한진 계열사 가운데 사업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곳은 싸이버스카이·왕산레저개발·제동레저 등이 꼽힌다. 특히 왕산레저개발은 대한항공이 2011년 인천국제공항 인근 요트 계류장인 ‘왕산마리나’를 조성할 목적으로 자본금 60억원을 투입해 설립한 회사인데 설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왕산레저개발은 2012년 영업손실 1082만원을 낸 것을 시작으로 계속 적자를 봐 2016년 12억7775만원, 2017년 20억4347만원, 2018년 22억9424만원 등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통신 판매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싸이버스카이는 기내 면세품 위탁 판매를 하고 있는데 몇 년 사이 수익이 4분의 1로 줄어들었고 골프장을 운영하는 관광 레저 회사인 제동레저도 2016년 2521만원, 2017년 3187만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정리함으로써 개선할 수 있는 재무 체질은 그리 큰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진그룹에 필요한 것은 재무 개선”이라며 “핵심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자금줄 마련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 회장은 계열사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적자가 나는 항공 노선을 정리하고 조직 개편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지출하는 고정비 가운데 연료비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다. 고정비 가운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이른다. 대한항공은 최근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의 여파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3개월짜리 단기 무급 희망 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비업무용 자산 매각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뉴욕 간담회에서 “내년 경제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비용 절감 대책과 재무 구조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자산 매각과 관련해 대한항공이 호텔 등 복합 문화 단지 개발을 추진했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거론되고 있다. 부지 면적만 3만6300㎡로 축구장 5개 크기와 맞먹을 만큼 큰 데다가 매각 가격이 6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한진그룹의 재무 구조 개선에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제주도 정석비행장과 제주도 민속촌, 제주도 제동목장 등도 매각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비업무용 자산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거나 추가적으로 매각해 부채 비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온다.
결국 조 회장이 경영권 등 제반 사항을 안정화하면 정리할 것을 생각해 보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에 비춰 볼 때 당분간은 사모펀드 KCGI 등에 대항해 경영권 방어에 집중하면서 추후 경영 과정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비주력 계열사를 확실히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그동안 비업무용 자산 매각에 소극적이었지만 항공 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 안 나면 버린다”…취임 7개월’ 조원태 회장의 세 가지 도전
(사진) 대한항공이 추가로 들여오기로한 보잉 787-9 차세대 항공기
과제 2 사내 문화 혁신 =
항공 운송업은 사업의 특성상 기업 문화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다. 속칭 ‘군기가 세다’는 뜻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인명 사고는 사회적·도의적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송 기업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다.
한진그룹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더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문화 때문에 반드시 이뤄져야 할 소통까지 막힐 수도 있다. 또 소통이 막히니 혁신도 이뤄지기 어렵다.
조 회장은 취임 후부터 줄곧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조 회장은 2023년까지 대한항공의 비전과 경영 방안을 담은 ‘비전 2023’에서 유연한 조직 문화 조성에 힘쓰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시행한 복장 자율화다. 이 제도들은 그동안 직원들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던 요구 사항을 받아들여 실시하게 된 제도다. 한진그룹은 지난 5월부터 상시 ‘노타이’ 근무 체제로 바뀌더니 지난 9월부터 전면적으로 자율 복장을 시작했다. 기존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자율 복장은 흔한 일이지만 70년 이상 된 한진그룹에서는 변화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대한항공은 유니폼을 입고 서비스하는 승무원들이 있어 재계 중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더뎠다. 조 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한진그룹 임직원들은 삼복더위에도 넥타이를 매야 했고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반소매 와이셔츠도 안 됐었다. 그러다 여름철 노타이 근무를 시작한 게 10년 전”이라고 전했다.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이는 조 회장이 주도했다. 조 회장은 “자율 복장을 시작하는 첫날 제가 청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직원들이 다들 깜짝 놀랐다”며 “너무 파격적인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자율 복장인데) 입고 싶은 것을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외부 약속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자율 복장 차림으로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11월 19일 열린 간담회에서 조 회장의 복장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의 ‘소통 왕’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아직도 보면 직원들이 저를 피해 다닌다고 느낀다”며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제가 오픈하면 직원들도 다가와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에는 온라인 소통 광장이 있는데 익명으로 글을 게재할 수 있어 ‘신문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 조 회장은 1주일에 2번 이상 방문하고 직접 댓글을 달거나 관련 부서 담당 임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 회장이 직접 나서 해결한 김해공항 옆 사업본부 교통편 해결을 비롯해 점심시간 자율 선택제, 패밀리데이 도입, 정시 퇴근 방송, 초등학교 입학 자녀 선물 등이 임직원들과 소통을 통해 이뤄진 결과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은 직원의 행복지수가 업무 성과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해 왔다”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젊어진 회사 문화에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임원들과 회의 때도 ‘노 페이퍼’를 선언했다. 조 회장은 “임원들과 회의하는데 종이 한 장 들고 오지 말라고 했다”며 “오픈해 얘기하는 자리로 프리토킹 하다 보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고 무엇보다 자율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대한항공이 기내 안전 방송을 SM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뮤직 비디오로 만들어 화제가 됐다. 이어 조 회장은 유니폼과 기업 이미지(CI)도 개선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가장 하고 싶은 게 CI를 바꾸는 것”이라며 “기내 인테리어와 색깔·유니폼·로고·기내식 등을 다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모두 바꾸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회사 경영이) 조금 좋아지면 할 것”이라고 했다.
조 회장은 IT를 활용해 소통을 강화하는 업무 환경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조 회장은 최근 대한항공의 회사 시스템을 마이크로소프트 체제에서 클라우드 기반의 구글 G스위트로 변경하면서 모든 팀원이 동시에 같은 작업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업무 구조를 변경했다.
조 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IT에서 경영 혁신의 길을 찾았다. 조 회장은 IT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2004년 대한항공에 들어오면서 다른 회사에 비해 뒤처져 있는 그룹 웨어를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조양호 전 회장에게 건의했다.
대한항공 업무에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도입을 주도해 세계 항공업계 최초로 정비·기내식·수입관리 등 모든 부문에서 통합 전산 시스템을 갖췄다. 그가 이처럼 IT를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신속한 정보 교환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익 안 나면 버린다”…취임 7개월’ 조원태 회장의 세 가지 도전
(사진) 2017년말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이 자둰 봉사자로 나선 '하늘사랑 바자회'에 참석한 조원태 회장(당시 사장)
과제 3 경영권 안정화 =
업계는 조 회장이 곧 있을 연말 인사에서 대규모 인사를 통해 본인의 그룹 경영 비전을 본격적으로 나타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현재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 꼭대기에 있는 한진칼의 최대 주주는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으로 지분 28.93%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한진칼 지분율은 조 회장 6.52%, 조 회장의 누나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6.49%, 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어머니 이명희 고문 5.31%다.
이어 사모펀드 KCGI가 15.98%, 델타항공이 10%를 가지고 있다. 또 4대 주주 대호개발은 5.06%를 갖고 있다. 대호개발은 반도종합건설의 100% 자회사다. 1~4대 주주의 지분은 거의 60%에 육박한다.
이 중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한진칼 소액 주주 참여를 유도하면서 지배 구조를 지속적으로 흔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KCGI는 칼호텔네트워크와 LA윌셔그랜드호텔 등 부대사업과 자산을 정리하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만약 4대 주주인 반도그룹이 KCGI에 힘을 보탠다면 KCGI는 한진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현재는 우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삼남매가 협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 회장은 간담회에서 “우선 경영권을 방어해야 한다”며 “지분으로 볼 때 가족 간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형제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조 회장이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을 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델타항공은 대한항공과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V) 등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조 회장에 대한 신뢰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한진칼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된다. 델타항공이 오너 일가의 백기사가 되면 지분율은 38.94%가 돼 KCGI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 인사가 11월 난다는 얘기가 있다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내년 3월 주주 총회를 앞두고 오너 일가가 여러 가지를 고심하는 것 같다”며 “일단 오너 일가는 우호 지분과 함께 믿을 만한 임직원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