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지역 주민 대표와 협의체 구성해 꾸준한 투자- 개방 3개월 만에 10만 명 찾은 명소로 떠올라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산 속 공연장’ 예울마루 앞마당에 서서 여수 앞바다를 바라봤다.‘예술의 섬, 장도’로 보행길이 나 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노둣길 진섬다리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하루 두 번 물에 잠기고 드러나는 신비의 다리다. 만조 시간을 확인하고 장도를 향해 걷다 보면 찰박찰박 물소리가 반갑다. 장도는 지난 5월 개방 이후 ‘걷기 좋은 섬’으로 입소문을 타며 전국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예술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곳은 정유사 GS칼텍스다. 여수를 무대로 에너지 기업의 50년사를 써 온 GS칼텍스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가 오랜 노력의 결실을 봤다.
여수 앞바다 장도를 ‘예술의 섬’으로… GS칼텍스, 13년 사회공헌 프로젝트 ‘결실’
지난 11월 27일 전남 여수시 예울마루에 들어서자 독특한 풍광이 나타났다.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고 바닷가 갯벌에선 동네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 공연장이 있다. 망마산 자락 70만㎡에 자리한 전남 최대 문화·예술 공간이다.
변변한 문화·예술 시설이 없던 여수에 예울마루가 생긴 이후 문화 지형의 판도가 바뀌었다. 2012년 개관 이후 지난해까지 72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GS칼텍스재단 관계자는 “여수 시민이 약 29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여수 시민이 2번 이상 예울마루를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곳 망마산 일대는 황무지에 가까운 땅이었다. 공연장과 전시장이 들어서고 땅이 개발되면서 아파트도 함께 솟아올랐다. 여수의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며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예울마루는 산 속에 숨어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글라스 리버(glass river)’로 불리는 152m의 유리 지붕이 보일 뿐이다. 설계를 맡은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씨는 “망마산 자락에서부터 여수 앞바다로 향하는 역동적인 계곡의 흐름을 형상화했다”고 했다. 페로 씨는 자연적 설계로 주요 시설을 땅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울마루는 또한 육지와 섬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돼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장도다. 망마산에 공연장 중심의 복합 문화 공간이 있다면 장도는 전시 공간이자 창작 스튜디오, 사계절 꽃이 피는 다도해 정원으로 조성돼 있다. 올해 5월 예울마루 2단계 조성 사업인 ‘예술의 섬 장도’가 정식 개관했다. 2012년 5월 1단계 개관한 지 7년 만이다.
아직 미완의 모습이지만 자연 속 예술섬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다. 개방 3개월 만에 입도객 10만4000여 명을 기록했다. 물때에 따라 진섬다리 해수면 수위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섬 전체가 하나의 산책 코스로 조성돼 있어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내년부터는 작가들도 입주한다. 섬 원주민들이 살던 자리 흰색 건물 5채가 작가들의 아틀리에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 환경을, 시민들에게는 전시 공간과 산책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탁 트인 여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해안 경관 조망 포인트도 있다.
GS칼텍스는 공간 조성에만 총 1250억 원을 투입했다. 또한 2012년 이후 매년 운영비로 40억원 가까이 쏟아붓고 있다. 이승필 예울마루 대표는 “당초 이 프로젝트는 장도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2006년 GS칼텍스가 GS칼텍스재단을 통해 사회 공헌 사업을 본격화했다면 13년 만에 비로소 예울마루 프로젝트가 완성된 셈이다.
여수 앞바다 장도를 ‘예술의 섬’으로… GS칼텍스, 13년 사회공헌 프로젝트 ‘결실’
GS칼텍스는 왜 예술 공간을 조성했나
GS칼텍스는 왜 여수에 이렇게 큰 규모의 문화 공간을 짓고 투자를 지속하고 있을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업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적 발전과 함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환경적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부상한다. GS칼텍스의 사회 공헌 활동은 문화·예술 인프라 조성 사업을 통한 지역 발전 기여에 초점이 맞춰진다.
GS칼텍스와 여수와의 특별한 인연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최초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로 출범해 여수에 공장을 세우면서부터다. 2차 경제 개발과 함께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온 국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던 1967년, GS칼텍스는 여수 공장 설립을 위한 첫 삽을 들었다. 때마침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1967년 여천공업기지로 여수산단이 문을 열었다. GS칼텍스는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모태 기업이 됐다.
여수산단에 있는 기업들은 GS칼텍스가 원유를 정제해 만든 액화석유가스(LPG)·나프타·휘발유·등유·경유·벙커C유·아스팔트 등으로 다양한 에너지 및 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케미칼 등 굴지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일대에 모여 있다. GS칼텍스는 여수산단의 맏형으로 일자리 창출, 지방세 등에서 지역의 성장을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지난 50여 년 사이 GS칼텍스 여수 공장은 단일 정유 공장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할 만큼 큰 폭으로 성장했다. 여수 공장에는 원유 정제 시설(하루 총 80만 배럴), 중질유 분해 시설(하루 총 27만4000배럴), 윤활기유 생산 시설(하루 총 2만6000배럴), 방향족 생산 시설(연간 총 280만 톤), 폴리프로필렌 생산 시설(연간 총 18만 톤)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기에서 생산된 프로판 4억 리터는 200만 가구가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물량이다. 부탄 9억 리터는 택시 2만2000대가 하루 사용하는 연료량이고 휘발유 63억 리터로는 중형 승용차 약 4만 대가 지구 40바퀴를 돌 수 있다. 또 나프타·항공유·등유·경유·중유·아스팔트·베이스 오일 등을 생산한다. 현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석유화학의 원료가 이곳 여수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여수산단의 규모가 커지고 수출이 늘어나는 사이 그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826만4463㎡(250만 평)의 거대한 석유화학 단지가 조성되면서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이주했고 또 몇 차례 환경 이슈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기름 유출이 대표적인 이슈였다. 또 일자리 창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도 자리했다. 자본 집약형 장치 산업으로 거대한 공장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양질의 일자리 수가 적어서다. 기업으로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양수겸장의 카드로 꺼내드는 게 전략적 사회 공헌이다.
여수 앞바다 장도를 ‘예술의 섬’으로… GS칼텍스, 13년 사회공헌 프로젝트 ‘결실’
GS칼텍스는 2006년부터 10년간 매년 100억원씩 출연해 지역 사회가 원하는 대표적인 사회 공헌 사업을 하기로 했다. 1차 과제는 지역 사회의 의견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인지’ 합의점을 찾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시의회·시민단체·언론·학계·예술계 등 10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모인 GS칼텍스 사회공헌사업자문위원회가 탄생했다. 아이템을 선정할 때부터 협치를 위한 거버넌스가 존재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 지역 사회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의견 수렴 과정에만 2년여의 시간이 투입됐다.
사회 공헌 활동에도 시대마다 트렌드가 존재한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들어 장학·복지가 큰 트렌드였다. 자문위원회에서 쏟아진 의견들도 처음엔 30여 가지에 달했다. GS칼텍스가 문화·예술이라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때마침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 개최가 결정되면서다. 지역에 변변한 문화·예술 공간이 없다는 데서 대형 공연장과 전시장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다음 과제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것이었다. 여수시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GS칼텍스가 시설을 짓는 방식으로 합의점이 모아졌다. 위치 선정은 전문 용역을 통해 후보지를 좁혀 나갔다. 여수시에는 365개의 섬이 있다. 지리적 특성을 살려 장도 섬을 예술섬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의견이 나왔고 세계적 건축가인 도미니크 페로 씨에게 초기 설계를 맡겼다.
페로 씨는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로 불린다. 그는 직접 인근을 걸어보고 산 위에 올라가 보고 배도 타 보면서 콘셉트 스케치를 완성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하나의 큰 산책로, 흐르는 강물을 형상화한 유리 지붕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또 지붕에 설치된 태양 전지 시스템은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해 건물에 필요한 전기 일부를 조달하도록 했다. 2009년부터 3년 이상 공사를 진행했고 2012년 5월 1차 개관했다.
여수 앞바다 장도를 ‘예술의 섬’으로… GS칼텍스, 13년 사회공헌 프로젝트 ‘결실’
장기 프로젝트로 진정성 있게 진행
GS칼텍스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진정성을 보여준 부분이다. 다른 사회 공헌 활동과 비교할 때 장도 프로젝트는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돼 왔다.
이승필 대표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시간이라는 자원이 중요하고 실제 공장을 지을 때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사회 공헌 프로젝트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며 “지자체·지역사회·기업 등 삼자가 컨센서스를 이루며 함께해 나가는 작업이기에 진정성 있게 대화하고 짚을 것은 짚어가면서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장기 프로젝트는 자칫 중간에 방향이 바뀌거나 흐지부지될 우려도 있다. GS칼텍스는 일관된 리더십으로 초기의 방향성과 목표를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일례로, 이 대표는 사회공헌팀장 시절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현장 책임자로 프로젝트를 맡아 왔다. 이 대표는 “최고경영진에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일관되게 리더십을 유지해 준 것이 큰 성공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이해관계인 중심의 추진 방식이다. 지역 사회 협의체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해 온 추진 방식 자체가 사회 공헌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GS칼텍스재단이 ‘제14회 메세나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배경도 이와 같다. 이와 함께 운영 구조도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예울마루는 GS칼텍스재단과 여수시가 공동 운영하는 구조다. 운영비를 68 대 32의 비율로 분담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운영비를 줄일 수 없도록 책임을 지웠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운영 체제를 갖추게 됐다. 예산은 공동으로 출연하지만 GS칼텍스가 관리를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도 주효했다. GS칼텍스재단을 통해 출연한 자금의 90% 이상이 예울마루에 투입되고 있다. 보여주기식 일회성 행사보다 지역 사회가 원하는 확실한 아이템에 모든 역량을 모았다. 공간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실제 운영을 도맡으며 지속적인 사회 공헌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간 기부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다.
GS칼텍스는 현재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를 여수산단에 하고 있다. 최근 정유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산업 전환기를 맞아 석유화학 부문의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GS칼텍스도 여수 제2공장 인근 약 43만㎡ 부지에 2조7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2021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연간 에틸렌 70만 톤, 폴리에틸렌 5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 시설(MFC)을 짓고 있다. 올레핀은 옷·신발 등을 만들 때 쓰이는 합성수지·합성고무·합성섬유의 주원료다. 이곳은 GS칼텍스가 향후 50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미래의 성장 전진 기지다.
이 대표는 “기업의 본질이 이윤 추구라는 점에서 사회 공헌이 이를 넘어설 수는 없지만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사회와 책임의 조화 측면에서 사회 공헌은 꼭 필요하다”며 “지난 50년의 빛과 그림자 속에 예울마루가 탄생했다면 향후 50년의 기업 성장과 함께 이곳이 지역민들의 쉼터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여수 앞바다 장도를 ‘예술의 섬’으로… GS칼텍스, 13년 사회공헌 프로젝트 ‘결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