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협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잃기도…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 필요해
때로는 협상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협상’
[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협상에는 정답이 없다. 협상은 그야말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회와 장애물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오고 가는 대화에 따라 거래의 성사가 앞당겨지기도, 완전히 틀어지기도 한다.

목표마저 달라질 정도로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협상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되든 간에 그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이클 윌러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협상과 관련한 자신의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Negotiation)’에서 협상은 재즈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어떠한 법칙이나 방식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고 예측 불허의 게임이라 즉각적이면서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즉 상황 대응력이 협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때로는 과연 협상을 이어 가는 것이 과연 맞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협상을 하게 된다. 그것이 비즈니스 상황이든 아니든 자신의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는 자연스러운 발로다. 그런데 더 많은 것을 얻으려다 보면 득이 아니라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 협상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경우다. 그래서 차라리 협상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협상이 될 수 있다.

◆협상하지 않아 성공적인 결과 만들어 낸 한국콜마


부인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떠났던 C 씨 이야기다. 도착 첫날 야시장 구경을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잡기로 했다. 베트남은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호텔에서 나올 때 안내원이 잡아준 택시를 타고 야시장까지 지불한 택시 요금은 3만 동(약 1500원)이었다.

C 씨는 숙소로 돌아갈 때도 그 정도 요금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사가 끝난 뒤 식당 바로 앞에서 택시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더듬더듬 베트남어로 목적지를 말했다. 운전사는 8만 동을 불렀고 C 씨는 3만 동을 제시했다. 운전사는 재빨리 5만 동으로 요금을 낮춰 불렀지만 C 씨는 애초 제시한 3만 동을 고수했다. 바가지요금을 조심해야 한다는 호텔 안내원의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운전사는 4만 동까지 내렸다. 하지만 C 씨는 3만 동을 계속 고집했다. 운전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를 몰고 가버렸다. C 씨는 또 다른 택시를 불러 세웠다. 운전사는 5만 동을 불렀다. 조금 전 운전사보다 합리적인 첫 제안이었다. C씨는 3만 동을 불렀다. 운전사는 4만 동으로 가격을 내렸고 C 씨는 계속 3만 동을 고집했다. 이번에도 운전사는 가버렸다.

지쳐 있던 부인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언제 거래가 되겠느냐며 차라리 1만 동(약 500원) 더 내고 숙소로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결국 1시간이 넘는 승강이 끝에 3만 동을 내고 택시를 타는데 성공했다. 1만 동을 절약했으니 협상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다. 그는 택시비를 깎은 만큼 자신의 소중한 시간뿐만 아니라 부인의 시간도 잃었다. 또 여행의 재미가 아니라 짜증을 얻었다. 이것이 과연 성공한 협상일까.

대기업 상무인 S에게는 뼈아픈 경험이 하나 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 중에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원주택을 소유한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는 전원주택을 소유한 지 10년이 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한 번도 부동산세를 청구하는 고지서가 날아온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부부에게 첫 세금 고지서가 도착했는데 고지서에는 눈으로 믿기 힘든 거액의 세금이 청구돼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들어 병원이 가까운 대도시로 이사하려던 시기에 이런 고지서가 날아들자 전원주택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부부는 S 상무에게 그 전원주택을 8억원에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주변 시세에 비해 파격적인 가격인 것을 알았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여유 자금이 없었다. 그는 지인 중 돈 많고 전원주택에 평소 관심이 많던 D 사장에게 연락했다. 설명을 들은 D 사장은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을 눈치 채고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제시했던 8억원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고 7억원으로 깎아 보자고 했다. 만약 그 부부가 수락하지 않으면 그때 그 가격에 계약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S 상무는 좀 난처했다. 8억원은 이미 주변 시세보다 한참 밑도는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S 상무를 D 사장은 “협상의 여지는 항상 있지 않느냐”며 달랬다. 어차피 투자할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니 할 수 없이 그 부부에게 그대로 가격을 제시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부부는 노발대발했다.

가격을 깎으려고 하자 크게 상심하면서 “우리는 자네를 가족처럼 생각했는데 우리를 겨우 이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느냐”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결국 부부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을 올렸고 1년 후 그 전원주택은 12억원에 팔렸다.

그 일 이후 S 상무는 그 부부와 연락이 끊어졌다. 오랫동안 쌓았던 우정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S 상무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스럽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도 잃고 어쩌면 돈도 잃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협상을 포기하는 것을 그리 간단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자신이 중점적으로 두는 가치와 그에 따라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상황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윤동한 한국콜마 전 회장이 일본 콜마와 합작 사업을 추진했을 때의 얘기다. 당시만 해도 한국콜마는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았고 부족한 자본을 채우기 위해 일본 콜마와의 협상이 꼭 필요했다.

협상장에서 일본 콜마는 자신들이 지분 51%를 소유하겠다고 주장했다. 합작 사업의 특성상 지분을 많이 갖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윤 전 회장이 일본 콜마가 주장하는 지분 비율을 깎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협상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협상’
하지만 윤 전 회장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신은 20%만 가질 테니 일본 측이 80%를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너십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직 일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감동받은 일본 콜마 측은 오히려 윤 전 회장에게 지분 51%를 내줬고 한국콜마는 성공적으로 합작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윤 전 회장의 말 한마디가 일본 측에 강한 신뢰를 줬던 것이다.

언어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윤 전 회장의 얘기와 태도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을 것이다. 합작 사업은 성공이 중요하지 보유 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진정성 말이다.

협상의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현실이 너무 복잡하고 미래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업의 경영자들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이유다.

만약 경영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빅딜’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때로는 과감하게 올인해야


보잉의 이베리아항공 비행기 구매 입찰 과정을 들여다보자. 2003년 항공기 매출 부진을 겪고 있던 미국의 보잉에 좋은 뉴스가 떴다. 유럽의 이베리아항공에서 중형 비행기 입찰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베리아항공은 흑자를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항공사 중 하나였다. 보잉으로선 새로운 사업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지만 입찰을 주저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이베리아항공은 항상 유럽 최대의 항공기 제작 컨소시엄인 에어버스를 선택해 왔고 이번에도 자신은 들러리 역할에 그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만에 하나 입찰에서 탈락했을 때 평판과 후유증, 직원들의 사기 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잉은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이베리아항공에서 가만있지 않았다. 만약 입찰에 에어버스만 단독 참여하게 되면 이베리아항공으로서는 협상을 위한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베리아항공은 두 팔을 걷고 보잉 설득에 나섰다. 미국 회사가 계약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보잉은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베리아항공 입찰을 대대적으로 준비했다. 비행기 디자인·설계 등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입찰 제안서를 냈다.

하지만 이베리아항공은 다시 한 번 에어버스를 선택했다. 에어버스가 보잉의 제시 금액에 맞추기 위해 가격을 대폭 인하했던 것이다. 보잉은 또다시 실망하게 됐다.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가 나와서다. 공개적으로 올인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했다. 보잉은 처음 생각대로 입찰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물론 때로는 올인해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미국 폭스TV의 미식축구(NFL) 중계권 협상이 좋은 예다.

1990년대 폭스는 미국 지상파 3사 ABC·CBS·NBC보다 늦은 후발 주자였다. 하지만 회사의 모든 것을 걸고 올인했던 미식축구 중계권을 따내면서 미국의 주요 TV 네트워크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당시 시청률 부진을 겪던 폭스TV는 CBS가 제시한 NFL 중계권의 두 배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하며 중계권을 따냈다.

다들 폭스TV가 미쳤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지불해 결국 망할 것이라고 했다. CBS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렇게 높은 금액을 지불한 폭스TV가 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폭스TV는 이를 계기로 기존의 3대 TV 네트워크사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거액의 제안 없이 조금 더 싸게 중계권을 확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스TV는 경쟁 업체들이 감히 대항하지 못할 공격적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거래를 단번에 끝내는 쪽을 선택했다. 협상의 여지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협상이 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협상이 만약 결렬된다면 자신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세심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둘째, 상대 상황도 파악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제안이면 수락할지 가능한 옵션을 생각해야 한다.

셋째, 미래에 발생 가능한 협상의 변수들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협상은 상호작용적이고 상황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4호(2019.12.09 ~ 2019.12.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