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진정한 달러코인은 미국 중앙은행만 발행 가능…발행 시 기존 금융 시스템 ‘대혼란’
‘오리 테스트’를 통해 본 ‘달러코인’의 성공 가능성
(사진)1944년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만든 ‘브레튼우즈 회의’ 장면.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오리처럼 생긴 새가 오리처럼 꽥꽥 소리를 내고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는다면 우리는 그 새를 오리라고 불러야 한다.” ‘오리 테스트’는 낯선 사물을 만났을 때 이름에 연연하지 말고 속성에 집중하라고 주문한다.

중앙은행이 법정 통화를 블록체인 토큰으로 발행하기만 하면 비트코인은 퇴장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달러와 가치를 연동하는 소위 ‘달러코인’이라는 개념을 오리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은 중요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달러코인이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비트코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거기에 더해 자기만의 새로운 속성, 예를 들면 가격의 안정성까지 갖고 있다면 비트코인을 넘어선 진정으로 새로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달러코인이 비트코인을 대체한다는 예견은 논리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막연하게 상상하는 달러코인은 비트코인의 핵심 속성을 가질 수 없다. 만약 비트코인의 핵심 속성을 가지게 되면 달러코인의 특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달러코인은 오리가 되든지 아예 오리와 무관한 그 무엇이 될 수밖에 없다.

제도권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달러코인 프로젝트는 USC(Utility Settlement Coin)다. 2015년 스위스의 UBS은행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법정 통화에 가치를 고정한 국제적 결제 수단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출범 당시 도이체방크·바클레이즈·홍콩상하이은행(HSBC)·스테이트스트리트·크레디트스위스 등 굴지의 글로벌 은행들이 참여했고 2017년까지 17개의 글로벌 금융 기업들이 가담했다. 출범 당시 USC의 핵심 목표는 중앙은행들이 각국의 통화를 USC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중앙은행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전제로 한 독보적인 프로젝트다. 관계자들은 USC가 달러·유로·파운드·엔화와 캐나다 달러 등 다섯 개 통화의 디지털 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하지만 2018년에 도이체방크·HSBC·웰파고가 이탈했다.

◆대표적 달러코인인 UBS의 USC

달러나 유로와 일대일로 교환되는 USC 토큰이 발행돼 개인들이 이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을까. 오리 테스트를 통해 USC 토큰이 비트코인과 얼마나 닮았는지 살펴보기 전에 우선 USC 토큰이 온라인 뱅킹의 잔액과 무엇이 다른지 따져봐야 한다. 이미 현대인들은 은행 잔액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머니를 사용하고 있다. 만약 USC 토큰이 소유자 계좌 잔액의 전자적 표현에 불과하다면 USC 토큰은 비트코인과 비교할 특성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USC 토큰이 은행 서버에 접속할 필요 없이 사용자 개인의 전자 지갑에서 다른 사용자의 지갑으로 이전되며 암호 체계를 사용한다면 은행 계좌보다 암호화폐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USC 토큰의 소유권 이전이 은행 잔액에 대해 독립적으로 발생한다는 의미다. 총 발행량만이 대형 은행의 달러 지불 보증금과 연계될 뿐 은행에서 일일이 소유권을 추적해 장부를 변경하지 못하거나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토큰의 암호를 소유한다는 것이 바로 소유권 자체를 입증하기 때문이다.
만약 토큰의 암호 키가 넘어가도 결과적으로는 소유자의 은행 장부가 변경돼야만 사용할 수 있다면 온라인 뱅킹의 계좌 이체와 다를 바 없다. 마지막에 토큰을 소유하고 있는 이에게 달러나 유로로 청산해 주는 책임만 질 때 블록체인에서 암호 체계를 활용하는 의미가 있다. USC 토큰이 비트코인을 닮아갈수록 무기명 채권이나 종이돈과 같은 아날로그적 속성을 띠게 된다.

이런 아날로그적 속성을 가진 USC 토큰이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다면 이 토큰은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이 예견한 대로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들을 2류 코인으로 밀어낼 가능성이 있다. 즉 명실상부한 달러코인의 탄생이다.
USC 토큰이 진정한 달러코인이 된다면 미국의 달러를 지구촌 시민들이 누구나 구입하고 보유하는 시대가 열린다.

◆발행량과 발행 속도 정해진 비트코인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주류 경제학자들이 비트코인을 두고 걱정했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로 이어진다. 국경이라는 장애물에 걸리지 않고 개인과 개인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구촌 통화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를 국제 무역의 기축통화로 삼았다. 하지만 금화를 국제 결제 수단에서 퇴장시키면서 이룩한 이 체제의 암묵적인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지구촌 시민들이 국경에 매이지 않고 사용하는 국제 통화를 배제했다. 달러를 국가 간 무역의 기축통화로 삼되 국민 국가에 속하는 개인들은 자국 정부의 통제 없이 달러를 사용하거나 보유하는 것이 제한됐다. 지구촌 단일 통화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인식이 강했다. 즉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라는 글로벌 통화를 탄생시켰다기보다 금화를 억제함으로써 진정한 글로벌 통화의 대두를 억제하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을 대체하려고 창안한 달러코인은 이 체제의 근간을 허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개별 국가의 통화 정책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환율과 이자율을 미세 조정해 경제를 운용하려면 국민이 자국의 화폐에 전적으로 의지하느라 통화 정책에 대해 특별한 대응 수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들이 달러코인을 자유롭게 구입해 보유하거나 팔 수 있다면 개별 국가의 통화 정책은 의도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달러코인의 발행량을 조절할 수 있는 미국 중앙은행만이 통화 정책을 실행할 수 있고 다른 나라들은 이에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달러코인은 비트코인 오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비트코인은 발행량과 발행 속도가 정해져 있다. 그 누구도 이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달러코인은 달러에 연동된다. 그러므로 달러 발행 기관이 임의로 발행량을 조절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달러코인은 달러에 대해서도 변동하는 가격을 가져야 한다. 달러코인이 일정한 달러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달러코인이 비트코인을 쫓아가다 보면 달러코인이 아니게 돼버린다.

달러와의 교환을 보장한다는 달러코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트코인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달러코인은 오리가 될 수 없고 오리를 대체할 수도 없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