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19 올해의 CEO]
-한경비즈니스 선정 ‘2019 올해의 CEO’…전략·리더십·실적 등 평가
‘혁신 DNA’ 심고 새로운 시대를 그리는 18명의 CEO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위기(危機)’라는 단어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더해져 만들어졌다고 한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졌지만 위기가 일상화되는 지금과 같은 경영 환경 아래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는 능력’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없다. 2019년에도 한국 기업들은 격변의 한 해를 보냈다. 미·중 무역 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세계 경제는 뚜렷한 퇴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에 민감한 한국 경제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기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변화’에 대한 갈망 역시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넘치는 시장 환경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다.


한경비즈니스는 2019년을 마무리하며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각 산업 부문별 올해의 최고경영자(CEO)를 선정했다. 각 기업의 전략·리더십·경영실적·윤리의식 등을 세밀하게 따져 ‘2019 올해의 CEO’ 18명(17개 기업, 공동 대표 포함)을 선정했다.

◆키워드 1- 18명의 올해의 CEO…“뿌리부터 바꾼다”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2019 올해의 CEO’ 부문별 18명에는 두드러지는 공통점이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와 도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를 극복하고 성공을 만들어 내는 경영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민첩하게 시장의 흐름을 읽어 내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CEO에게 요구되는 시대다. 그중에서도 특히 2019년에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근본적인 혁신’을 꾀하는 CEO들이 좋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올해의 CEO에 이름을 올린 이는 두 명이다.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다. 이정희 사장은 2015년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려 왔다. 기존 상품 매출 비율을 낮추고 신약 개발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R&D 투자를 통한 자체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도 확대해 가고 있다. 유한양행을 ‘신약 개발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투자는 서서히 성과로 나타나는 중이다. 최근 이 사장이 역점을 두는 부분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글로벌 기술 수출로 연결하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최근 2년 사이 총액 3조6000억원 규모, 총 4건의 신약 해외 기술 수출을 성사시켰다.


핀테크의 확산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모든 금융사들의 최우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조용병 회장은 2017년 취임과 동시에 직접 구상한 ‘2020 스마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국내 선두 금융그룹을 넘어선 ‘아시아 리딩 뱅크’를 목표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이다.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는 글로벌부문과 디지털부문을 지주 차원에서 각각 총괄하는 매트릭스 조직으로 재편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신한’으로 거듭나기 위해 디지털 인재를 키우고 외부 인재를 영입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은 혁신의 결과는 높은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3분기까지 연결 기준 4조1375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조 회장이 취임하기 전 2016년 3분기 2조4825억원과 비교하면 3년 사이 66.7% 증가한 수치다. 조 회장은 이처럼 실적 상승을 견인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월 13일 3연임에 성공했다.

◆키워드 2-오랜 숙원 사업 해결…“새로운 시대를 위한 기틀 마련”


특히 ‘이번 2019 올해의 CEO’에 선정된 이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업계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며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쌓은 이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사전오기 끝에 ‘한옥 호텔’의 결실을 보며 올해의 CEO에 이름을 올렸다. 한옥 호텔은 이 사장이 2010년 취임하자마자 추진한 역점 사업이다. 2011년 사업안이 처음 서울시에 제출된 이후 문화재 보존 등을 이유로 4번이나 반려됐지만 끈기 있게 도전한 끝에 지난 10월 한옥 호텔에 대한 건축 심의가 서울시에서 통과됐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내년 상반기 첫 삽을 뜰 예정이다. 한옥 호텔이 완성되면 장충동 일대가 전통 한옥 타운으로 변모하며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데스티네이션 호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대우조선해양과 금호타이어 매각 등 해묵은 과제들을 하나둘씩 해결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손실을 기록하던 금호타이어는 이 회장이 직접 금호타이어 노조를 설득한 끝에 지난 7월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했고 올해 3월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에 관한 조건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20년 동안 조선업계의 숙원이었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공식화했다. 지난 4월에는 기존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이해관계 조정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시장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 전담 기관 KDB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이와 함께 KDB산업은행의 무게 추를 기업 구조조정에서 혁신 기업 지원으로 옮겨오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도 올해 주목받은 CEO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조선업 불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위상을 더욱 높이기 위한 권 회장의 ‘승부수’다. 현대중공업이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해 글로벌 1위 조선사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봐 온 권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수주 잔량 점유율은 21.6%가 된다. 권 회장은 이를 통해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국내 조선업계의 ‘새로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혁신 DNA’ 심고 새로운 시대를 그리는 18명의 CEO
◆키워드 3-‘덕후’들의 전성시대…“미쳐야 성공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성공한 CEO가 되기 위한 조건 또한 달라지고 있다. 거대한 자본력과 화려한 인맥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기존 시장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다. 2019 올해의 CEO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에는 이와 같은 ‘덕업일치’의 성공 사례를 몸소 증명해 낸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신발 덕질’에서 시작해 ‘유니콘 신화’의 주인공이 된 조만호 무신사 대표가 대표적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2001년 인터넷 커뮤니티 플랫폼 ‘프리챌’에 패션 운동화 커뮤니티인 무신사를 만들었다. 이후 2012년 무신사에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를 입점시켜 커머스 기능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무신사는 단순히 상품 판매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상품 브랜드의 개성과 스토리를 다양한 콘텐츠로 엮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10~20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의장은 ‘흙수저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 배달을 했다는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다양한 경험을 찾아다녔다. 1998년 첫 창업에 도전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2000년 자본금 1억원, 직원 8명의 게임 업체 아이팝소프트를 인수하며 넷마블로 사명을 바꿨다. 이후 경영인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며 넷마블을 연 2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게임사로 키워 냈다. 위기 때마다 ‘승부사’ 기질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온 방 의장은 최근 정수기·공기청정기 렌털 사업을 하는 웅진코웨이 인수전에 전격 뛰어들며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향후 웅진코웨이 인수를 통해 구독 경제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다.


‘광고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던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카카오톡 광고’의 성공에 힘입어 실적 상승세를 이끌어 내며 CEO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여 대표는 LG애드 출신의 광고 전문가로 2000년 종합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으로 자리를 옮겨 2009년까지 검색 광고 사업을 책임졌다. 광고 산업과 인터넷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키워드 4-공격적인 ‘미래 기술’ 투자…“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한국 기업들의 영토는 국내에 머무르지 않는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2019 올해의 CEO’에 선정된 이들 가운데 유독 미래의 트렌드를 읽어내고 이를 이끌어 갈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공격적인 이들이 눈에 띈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모빌리티 혁명가’를 자처하고 있다. 현대차를 자동차 기업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의 사업 방향은 물론 기업 문화까지 전면적인 개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장동현 SK(주) 사장은 SK그룹 신사업 발굴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SK그룹의 지주사인 SK(주)는 유망 사업을 찾아 투자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는 ‘투자형 지주회사’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장 사장은 2017년 대표직을 맡은 이후 반도체 소재, 바이오·제약, 에너지, 물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공격적인 투자로 성과를 내고 있다. 투자 방향은 철저히 ‘블루오션’에 국한되는데 올해에만 약 2800억원의 투자가 집행됐다. 특히 바이오 제약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수면 장애 신약 솔리암페톨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판매 허가와 상업화에 이어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가 FDA의 신약 승인을 받았다.


지난 12월 3일 사장을 맡은 지 3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도 주목 받고 있다. 허 부회장은 편의점 GS25에서 생활 밀착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생활 플랫폼’으로 빠르게 변신을 꾀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커피머신을 전국 GS25 매장에 보급해 ‘편의점 카페시대’를 열었고 지역 세탁소와 연계한 세탁 서비스와 공공요금 수납 서비스, 전기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등 모빌리티 충전 서비스 등을 시작하며 편의점을 ‘종합 플랫폼’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패밀리데이’ 행사를 통해 직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자율복장제’를 시행해 청바지와 운동화를 입고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업 문화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vivajh@hankyung.com


[커버스토리=2019 올해의 CEO 기사 인덱스]
-'혁신 DNA' 심고 새로운 시대를 그리는 18명의 CEO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 '61조 베팅' 한국의 자동차 산업 이끄는 혁신 리더십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 '스마트 조선소'로 미래 대비…로봇 사업 매출 1조 도전
-권봉석 LG전자 사장 : 현장에 강한 전략가…디지털 전환 진두지휘
-황창규 KT 회장 : 세계 최초 5G 상용화 완성…'AI 전문 기업' 선언
-장동현 SK(주) 사장 : '투자형 지주회사' 모델 확립…의약·소재·에너지 등 '삼각 편대' 완성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 건설업 침체 극복…탄탄한 국내외 수주로 곳간 '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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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 무신사 대표 : 신발 사진 공유하던 커뮤니티, 몸값 2조원대 '유니콘'으로 키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