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소수당 이해 반영, 꼼수·편법·무리수로 山으로 간 선거법- 사표 양산 ‘역설’·위헌·위법 논란도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2020년 4·15 총선에서 한국 유권자들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선거 제도와 마주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소수 4당이 새 선거법을 만들면서 온갖 꼼수와 편법을 동원한 결과다. 각 당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다 보니 선거제는 ‘배가 산으로 가버린’ 꼴이 됐다.

독일에서 채택하고 있는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대통령제와 소선거구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 터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과 4당은 이걸 비틀어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이를 일부 비례대표(30석)에 한해 적용하면서 누더기식 ‘짬뽕 제도’를 만들어 냈다. 현재와 같이 정당 득표에 따라 비례대표를 단순하게 나누는 ‘병립형 비례대표’도 공존한다. 정당별 의석 산출 때 난수표 같은 산식이 등장하면서 의원뿐만 아니라 선거 전문가들도 계산하기 어려운 실정이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처리가 시급해진 민주당이 소수당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선거 제도를 ‘미끼용’으로 삼는 바람에 기괴한 제도가 나오게 됐다. 위헌 논란도 제기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헌법의 직접·평등 선거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초 민주당과 소수 4당은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 선거 제도 개선에 나선다고 했지만 오히려 사표를 더 확대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선거제 개편의 특징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세계 하나뿐인 난수표 같은 ‘짬뽕 선거제’
①의원들도 계산하기 힘든 ‘난수표 선거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국 정당 득표율에 맞게 정당의 총의석을 보장하는 제도다. ‘표의 등가성’을 존중하자는 취지다. 기존과 바뀌는 선거제 모두 지역구 의원 253명에 비례대표 47명을 뽑는다는 점은 같다. 비례대표는 정당 득표율 3% 이상 얻은 정당이 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을 배분받는 것도 같다. 다른 점은 선출 방식이다. 기존은 병립형이다. A정당이 정당 득표율 35%를 얻었다면 비례대표 47석의 35%에 해당하는 16석을 배분받는다. 지역구에서 90석을 얻었다면 A정당의 전체 의석은 106석이 된다.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새 선거법상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비례대표에 50% 연동률을 적용하는 데다 그 대상은 이른바 ‘캡(cap : 상한선)’을 둬 30석으로 제한했다. 비례대표 총 47석 가운데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고 나머지 17석은 기존 방식대로 병립형을 따른다(연동형으로 배분된 의석수가 1보다 작은 값이 나올 경우 0으로 계산).

A당이 지역구에서 70석, 정당 득표율 30%를 각각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 방식으로는 지역구 70석에 14석(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을 더해 총 84석이 된다. 100% 연동형제라면 A당은 300석의 30%인 90석을 확보한다. 지역구 70석을 제외하고 비례대표에서 20석을 배정받는다. 하지만 50% 준연동형제를 적용하면 비례대표 몫 20석의 절반인 10석을 먼저 배정받는다. 여기에 기존 병립형으로 계산하는 비례대표 총 17석 가운데 30%인 5석을 추가로 배정받는다. A당의 비례대표 몫은 총 15석이다. A당은 지역구 70석을 합해 모두 85석을 얻게 된다.

지역구 3석을 얻은 소수당인 B당이 정당 득표율 7%를 얻었다고 가정하자. B당은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지역구 3석에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7%에 해당하는 3석을 더해 모두 6석이 된다. 바뀐 선거법에 따르면 B당은 국회의원 총 300석의 7%에 해당하는 21석에서 지역구 3석을 제외한 18석 가운데 절반인 9석을 배정받는다.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 17석 중 7%에 해당하는 1석을 더해 B당의 의석수는 13석이 된다. 기존 방식보다 의석이 늘어난다. 연동형 비례대표를 적용하면 이렇게 소수당이 유리해진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연동률이 적용되는 의석수가 30석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50% 연동형으로 배분받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모두 합해 30석이 안될 때는 3% 이상 득표율을 받은 정당들의 득표율에 가중치를 부여, 100%로 환산해 배분해야 한다. 30석을 초과하면 30석 안에서 정당 득표율대로 고르게 나누는 ‘안분(按分)배당’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A당 85석과 B당 13석이 최종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다. 바뀐 선거법이 난수표 같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은 10석 안팎 줄어들고 정의당 등 소수당은 의석수가 늘어난다.

②사표 양산되는 역설과 표심 왜곡 발생

당초 소수당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로 사표 방지를 꼽았다. 정당 득표율에 맞게 의석을 배분하게 되면 유권자들의 사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뀐 선거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연동형 비례제에서 지역구 당선자가 많으면 그에 따른 비례대표 수는 적어진다. 반대로 지역구 당선자가 적으면 비례대표 숫자가 많아진다. 이과정에서 정당 투표 중 일부는 사표가 될 수도 있다.

A정당이 비례대표를 겨냥한 위성정당을 급조할 때는 실제 지지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챙길 수 있다. 예컨대 한국당이 비례 전문 위성정당 D당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한국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은 지역구는 한국당 후보를, 정당 득표율은 D당을 각각 찍게 된다. D당의 정당 지지율이 35%라고 한다면 바뀐 선거제에서 이 당은 비례대표에서만 47석 중 30석을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민주당 내부 보고서). 한국당과 한국당의 위성정당 의석을 합하면 135석 안팎이 된다는 것이다. 표심 왜곡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③헌법 평등·직접 선거 위배 논란

위헌 논란도 제기된다. 비례대표 명부에 투표한 득표율이 높아도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한 정당에는 배분되지 않고 지역구 의석을 적게 차지한 정당에 비례대표가 많이 주어지는 것은 헌법의 평등 선거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지역구 투표와 비례 투표 연계는 헌법의 직접 선거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지역구 의원 투표 결과를 비례대표에 반영하는 1인 1표제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는 별개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 투표가 분리됐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 결과가 비례대표 배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거법 원안에서 대폭 수정된 법안을 상임위 심의 없이 본회의에 올린 것은 국회법 위반 소지가 있다.
세계 하나뿐인 난수표 같은 ‘짬뽕 선거제’
④꼬리가 몸통 흔들어

이번 선거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은 소수 정당들과 논의해 합의를 이끌어 냈다. 제1 야당인 한국당은 배제됐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하지 않아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반면 한국당은 “연동형제 도입을 전제로 한국당을 들러리로 세웠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게임의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제1 야당이 빠진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⑤수많은 정당과 마주하게 될 유권자

연동형 비례대표를 노린 정당 창당은 이미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국당이 위성정당인 비례정당 창당을 공식화했고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34개다.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를 한 정당은 16개이고 신고 준비를 하고 있는 정당도 잇따른다. 이익 단체들도 창당에 나서고 있다. 이념적 차이도 뚜렷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의석 확보용 정당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것은 정치판을 더 혼탁하게 할 우려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국 혼란을 더 가중시킬 전망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7호(2019.12.30 ~ 2020.01.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