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1960년대 NASA 달 탐사 때부터 활용…디지털 복제본 통해 문제 예방, 해결 비용 절감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2019년 초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의 신형 모델 737 맥스가 연이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항공기 사고는 지상의 교통사고보다 발생 확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고는 하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엄청난 인명 손실이 나는 치명적인 재난이다. 그런 만큼 항공기 제작과 운용에 들어가는 기술과 노력은 어떤 산업이나 제품보다 남다르다.
동기화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하는 ‘디지털 트윈’
그럼에도 항공기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이유는 항공기 기체 결함뿐만 아니라 비행 중에 발생하는 통제하기 어려운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복잡한 요인들을 실제와 똑같은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항공기 사고를 현격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현실 세계를 닮은 디지털 세상
디지털 트윈은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와 똑같은 디지털 쌍둥이를 만드는 첨단 기술이다. 가트너는 디지털 트윈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자산, 프로세스, 사람, 장소, 시스템 및 장치의 디지털 복제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물리적 실체의 복제물이 아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동기화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트윈은 디지털 객체와 물리적 사물을 연결하는 디지털 페어링(digital pairing)이 전제돼야 한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실시간 데이터 분석, 시스템 모니터링과 예측이 이뤄져야만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윈은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1960년대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아폴로 19호 달 탐사 프로젝트 때부터 우주 비행선의 시스템 운영과 유지·보수를 위해 페어링 기술(paring technology)을 이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디지털 트윈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최첨단 기술들과 융합되면서 감지·분석·예측의 완성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메타 데이터와 환경 데이터들이 3D 시뮬레이션·사물인터넷(IoT)·5G·빅데이터·블록체인·에지&클라우드컴퓨팅·증강&가상현실·스마트센서·인공지능(AI) 등 여러 첨단 기술들과 결합되면서 단순 시뮬레이션에서 실제 현실 세계와 가까운 가상 디지털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트윈 기술은 최근 제조업과 우주항공 분야에서부터 에너지·물류·선박·의료·국방·공장·스마트 시티 등 점차 활용 분야를 넓혀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잉·IBM·제너럴일렉트릭(GE)·지멘스·다쏘시스템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디지털 트윈을 자사의 비즈니스 혁신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중이다.

제조업은 디지털 트윈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분야다. 디지털 트윈이 제조 과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분야는 품질 관리, 제품 재설계, 시스템 기획, 물류 계획, 제품 개발 등이다. 특히 디지털 트윈은 장비를 포함 물리적 자산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조 공정의 효율화와 기계 장비 유지·관리 최적화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또한 물리적인 제품이나 서비스 등이 실제 만들어지기 전에 미리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사전에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항공 분야의 경우 보잉은 항공기를 설계하는데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신형 비행기가 어떠한 결함이 있고 언제 제품이 고장 날지 예측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보잉은 디지털 트윈을 사용함으로써 부품 품질 면에서 40%의 개선율을 달성했고 향후 모든 엔지니어링·개발 시스템을 디지털화할 계획이다.

자동차 제조업체도 생산 공정과 차량 테스트에 디지털 트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뮬레이션을 통해 에어백 또는 스티어링 시스템의 설계를 테스트하기 위해 자동차 프로토타입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차 회사는 프로토타입 차량의 충돌 테스트 필요성을 줄일 수 있고 디지털 트윈 장비를 사용해 서비스 수명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사인 마세라티는 지멘스와 신차 생산 공정에 디지털 트윈을 접목해 제품 최적화와 생산 기간 단축이라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의료 기관들도 우리 몸과 질병·치료의 영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의료 분야의 경우 실시간 역학 데이터를 통해 감염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게놈 구성, 생리학적 특성과 라이프스타일을 모델링해 개인화된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 음식을 먹었을 때 반응하는 다양한 부작용이나 위험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또한 아직 인체 전체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지만 최근 수술 분야에도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

인간 장기의 첫째 가상 모델인 ‘리빙하트(Living Heart)’가 대표적인 사례다. 리빙하트를 출시한 프랑스 소프트웨어 업체인 다쏘시스템은 사람의 심장을 디지털로 복제해 실제 수술 시 일어날 여러 가지 상황을 가상 환경에서 미리 실험해 볼 수 있어 수술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 밖에 필립스는 환자 개인의 신체 정보를 종합하고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환자(digital patient)라는 가상 신체를 구현하고 가상 환자를 대상으로 사전에 임상 실험이나 수술을 할 수 있게 한다.

디지털 트윈은 물류 산업에서도 유용한 기술이다. 물류 산업의 컨테이너 관리, 화물 추적, 물류 시스템 설계 등 전 과정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국제 배송 업체 DHL은 향후 디지털 트윈 기술이 물류 운영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하고 자사의 가치 창출을 위한 핵심 기술로 활용 중이다.

최근에는 미래 도시를 만드는 스마트 시티의 핵심 기술로까지 디지털 트윈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도시 생활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디지털 트윈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은 도시에서 시행되는 각종 건설 프로젝트에서 교통 체증, 일조권 침해, 지반 문제 등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파악해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홍수나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디지털 트윈은 어느 지역이 침수되는지, 어떤 건물이 화재가 발생할지 예측해 즉각적인 구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유용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스마트 시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다쏘시스템과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구현한 국토 가상화 프로젝트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를 2018년 완료했다. 버추얼 싱가포르는 싱가포르의 모든 건물·도로·구조물·인구·날씨 등 실제 도시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데이터를 3D 가상 환경에 현실 세계와 거의 유사한 조건으로 구현했다. 서울시도 최근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2021년 버추얼 서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국토교통부는 2019년 국가 시범 도시 디지털 트윈 사업 예산으로 50억원을 배정한 바 있다.

디지털 트윈의 미래 :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기술
디지털 트윈은 무한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산업에 안착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트윈 생태계 구축에 앞장섰던 GE가 2018년 클라우드 기반의 IoT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 분사와 디지털 사업부 ‘서비스맥스(ServiceMax) 매각을 결정했다는 소식은 기업의 디지털 전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방증한다. 이는 기업의 디지털 전환이 단순히 기존 산업에 기술만을 적용해서는 진정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지털 사회에 따른 과다 사회 통제에 대한 우려도 디지털 트윈이 풀어야 할 숙제다.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에 따른 개인 정보의 유출과 데이터에 기반한 사회 통제와 감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인간 생체 복제에 따른 윤리적 문제, 부정확한 데이터와 해킹에 따른 오류 가능성, 디지털 트윈 구축과 운영에 소요되는 과다 비용 문제 등도 디지털 트윈이 해결해야 할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향후 디지털 트윈은 제조 분야의 핵심 정보기술(IT) 도구일 뿐만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핵심 기술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0 년 후 소비자 기기, 산업 기계, 전기 그리드, 석유·가스 인프라, 전체 공장을 위한 디지털 트윈이 대중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IT 컨설팅 업체인 가트너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연속으로 10대 전략 기술로 디지털 트윈을 선정했고 맥킨지도 디지털 트윈이 2025년까지 3조9000억 달러(약 4539조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 기술인 디지털 트윈의 잠재성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IoT, 클라우드 컴퓨팅, AI 등 관련 기술과의 통합과 관련 업계들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 오프라인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고객 경험과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것이다. 고객 경험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디지털화하고 이를 통해 고객을 이해하고 분석해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도 기존 자산을 데이터화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문제는 결국 데이터가 관건이 될 것이고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알리바바그룹을 이끌었던 마윈 회장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향후 30년은 데이터 기술(data technology)의 시대라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기화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하는 ‘디지털 트윈’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7호(2019.12.30 ~ 2020.01.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