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들이 느끼는 혁신에 대한 ‘체감 온도’ 맞춰야…‘효과성·디테일·디지털’이 기준
혁신하지 않으면 ‘혁신 당하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김광진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보통 일기 예보에서 우리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실제 온도’보다 ‘체감 온도’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수치인 실제 온도가 있지만 체감 온도는 더 유용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결국 피부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고 현실감이 있기 때문이다.

체감 온도는 인체가 느끼는 더위나 추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느낌 온도’라고도 한다. 피부의 열의 교환 상태나 바람, 습한 정도, 햇빛의 세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체감 온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정작 이 체감 온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상대적인 특성이다. 실제로 섭씨 영하 1도의 날씨도 어떤 사람은 더 춥게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그다지 춥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각기 처해진 상황에 대해 느끼는 생각과 기분, 현재의 상황이라는 아주 주관적인 요소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 주위에는 이런 체감 온도를 컨트롤하는 사람도 있다. 범상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제 온도는 물론 체감 온도까지 자체 조절하면서 모두가 느끼는 추위를 이겨 내는 능력자들이다.

한시가 급한 이 시점에 왜 뜬금없이 날씨를 이야기하고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런 디테일한 현상들이 비단 날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영과 비즈니스 환경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요소이자 지표들이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됐다. 모든 기업이 긴장된 모습으로 꼼꼼히 세웠던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야 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 새롭게 세운 전략조차 혹시나 하는 변수들을 실시간으로 예의 주시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CEO)와 리더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혁신’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 잊지 말아야


새롭게 시작한 2020년의 경제 지표들이 심상치 않다.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는 대부분의 전망이나 예측치를 보더라도 그렇게 위안이 될 만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새해의 경영 화두로 강조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혁신’이다. 최근 한 금융사에서 발표한 ‘혁신만이 살길’이라는 문구가 절실한 심경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의 생존을 위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장을 위한 혁신을 위해서는 실제 기업 환경을 둘러싼 체감 온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를 잠깐 돌아보면 혁신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혁신에 대한 역사도 꽤 길다. 경영 혁신의 수많은 기법들이 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돼 왔다.

모든 현장에서 많은 경영 혁신 활동들이 이어져 왔고 수많은 데이터와 함께 크고 작은 배움과 성과들이 나름대로 기업과 조직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혁신들이 나름대로의 아픔과 교훈을 남기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도 많은 기업들의 경영 혁신 활동에 참여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다. 흔히 말하는 ‘공장 밥’을 먹으며 혁신 리더들과 함께 현장에서 뒹굴며 고민을 나누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던 시간들이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때의 혁신을 함께 계획하고 실행했던 사람들을 회고해 보면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요소가 몇 가지 있다.

혁신의 주체가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혁신에 대한 ‘비전과 전략’, 실행 주체 간 혁신에 대한 ‘온도차’를 좁혀 나가는 방법 등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마주한 혁신의 또 다른 성과를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의 혁신에 대한 체감 온도를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혁신의 체감 온도차를 좁히고 혁신 활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혁신의 효과성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혁신이 개선과 변화에 중심을 둔 효율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효과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공공연하게 말하는 문장이 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제는 고전과도 같은 이 말에 위안 삼아 기존의 것들을 개선하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한 말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승산이 없을 확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몇몇 CEO들은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경영 환경의 처절한 현실을 반영한 말이기에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거의 성공 경험을 기반으로 한 방정식에만 의존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은 역시나 과거의 눈높이 수준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디테일한 데이터 이면의 ‘무엇’ 찾아라


안정 속의 변화, 변화 속의 안정. 비슷한 듯 보이지만 두 말의 차이는 극명하다. 쉽지 않은 판단이자 결정이지만 효과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무엇이 혁신의 대상인지 분명히 숙고해 봐야 한다.

효과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방법 중 한 가지는 건드리지 않았던 본질을 건드렸을 때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으면서 터치하지 못했던 이슈가 무엇인지 진중하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혁신에 대한 온도차와 두려움을 새로운 혁신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할 시점이다.

둘째는 현장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테일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영 혁신 전문가나 컨설턴트라면 100% 공감하는 혁신의 진리다. 문제는 그의 말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비춰볼 때 한 가지를 보완해 보면 어떨까 싶다. 측정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데이터에 대한 이면을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혁신 활동들을 보면 정제된 결과물과 보고서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평균값의 함정’에 빠진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정해진 목표를 위한 논리로 가득한 보고서에 현장에서의 쓴소리들이 사라지는 것이 많다. 경영진이 알아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 정작 중요한 내용들이 공유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하고 있는 센서를 통해 만들어지는 시스템에서의 데이터를 제외하고는 실제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소중한 데이터들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통계라는 보기 좋은 숫자들에 묻히고 있는 모습이다.

디지털 혁신을 위한 과정에서의 경험적 데이터들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모든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주제 강연에서도 하나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장에서의 경험적이고 유의미한 데이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중요한 흐름인 ‘디지털’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한다. 혁신을 논할 때 체감 온도차가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디지털에 대한 시각이다.

과거 20여 년 전 국내의 많은 기업에서 경영의 효율화를 위해 도입했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의 아팠던 경험과 교훈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최근 기업들마다 추구하는 디지털 혁신의 시각과 프로세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다른 기업에서 혹은 경쟁사에서 검증된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고자 하는 기술적인 접근에만 몰두하고 있는 비슷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은 ‘디지털 립스틱’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효과적인 혁신을 위해 곱씹어 봐야 하는 매우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계획이 혹시나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추고자 하는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에만 머물러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디지털 혁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들이 많다. 그중 두 가지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우선 우리 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방향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북극성이 될 비전과 단계적인 로드맵이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한다. ‘조변석개(朝變夕改)’도 큰 방향성의 흐름 속에서 에너지를 모아 실행해야 한다.

또 디지털 혁신을 위한 임직원의 시각과 역량을 키워야 한다. 경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디지털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사적인 디지털 마인드, 즉 ‘디지털 DNA’를 갖출 수 있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 경험을 만들어 가야 한다.

디지털 혁신은 목적이 아니고 경험의 진화 과정이 돼야 한다. 이왕 내친김에 날씨 얘기로 마무리해 보자. 사람들이 한겨울 수도관의 동파를 막기 위해 하는 행동은 단순하다. 수도꼭지를 물방울이 떨어질 정도로 틀어 놓는 것이다.

그 작은 물방울 하나가 어마어마한 추위를 이겨내게 만든다. 고인 물을 꽁꽁 얼어버리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비유가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되더라도 2020년의 효과적인 혁신을 바란다면 그래도 작은 물방울이 주는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이제는 혁신을 하지 않으면 혁신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