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저성장 시대 해법으로 주목받는 MMT 이론
-한국 사례와 잘 맞아 연구해 볼 필요 커
더 많이 쓰고 덜 걷어라, 그래야 경제가 산다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2019년 이후 현대통화이론(MMT : Modern Monetary Theory)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재정 정책의 정당성을 MMT를 통해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양적 완화(QE) 등 비전통적 금융 정책을 설명하는 데도 MMT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MMT 이론은 논리적 결함이 있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경제학 개념이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한 틈을 채우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케인스의 이론도 당시엔 상식에서 벗어났다

MMT는 카를 마르크스와 아나톨 칼레츠키를 계승한 이론이지만 정치 성향을 담았다기보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MMT는 현대통화이론이라는 말 그대로 현대의 통화 시스템과 화폐 구조가 경제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뤘다. 하지만 수학이나 모델을 통한 접근이 아니다. 기존 경제학 시각에서 여전히 반론이 많은 이유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1936년 출현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고용과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일반이론)’도 당시의 경제학 상식에서는 벗어났다. 시간이 지난 뒤 케인스의 아이디어는 일반화됐다. 이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수식과 도표가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케인스의 사상을 모델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존재했다면 MMT도 충분히 미래에는 모델이 존재하는 경제학의 주류에 편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MMT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정부가 돈을 무제한으로 써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MMT의 본질은 정부의 지출이 세금에 제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 정부의 지출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의 지출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무조건적 지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적절하지 않다.

MMT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개념을 더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누구나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가능하다”며 “문제는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곧 화폐의 정의다.

이러한 화폐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정부의 세입이 없어도 지출은 가능하다’가 첫째이고 ‘정부 자금(재정 파탄)은 부족할 수 없다’는 것이 둘째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데, ‘세금이 먼저냐 민간 소비가 먼저냐’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민간이 소비하고 정부에 세금을 내면 그 세금을 원천으로 정부가 지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민간의 소비가 이뤄져야 비로소 정부의 지출이 가능하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최초의 상태를 가정해 보자. 민간은 세금을 내고 정부가 그것을 거둔다면 최초에 민간이 세금으로서 지불하는 화폐는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 정부가 자신들이 공인한 화폐를 받아들인다는 개념에서 민간이 내는 세금은 정부가 만들어 민간에 뿌린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의 지출이 민간의 소비를 창출한다고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비주류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저축이 투자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저축을 창출한다는 개념과 유사하다.

둘째 논의는 첫째를 인정한다면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정부의 지출이 먼저라면 결국 정부의 화폐 발행이 선행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양을 제약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금의 목적은 정부의 조세 지출이 아니라 화폐의 신뢰성 유지에 있다는 것이 MMT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MMT를 받아들이고 정부의 예산을 무한대로 늘린다면 통화는 무한대로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MMT는 환율에서 찾고 있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국가의 통화 가치는 결국 그 나라 화폐가 가지는 신뢰성의 척도다. 국가의 부채가 늘어나고 재정 적자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화폐 가치, 즉 부채 상환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면 결국 통화는 약세로 갈 수밖에 없다. 환율의 약세 움직임을 관찰한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MMT의 주장이다.

여기까지 설명한다면 MMT가 정부의 지출을 정당화하고 지출의 제한선을 없애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를 바탕으로 MMT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균형 재정을 이루지 말라는 것이다. 즉 정부의 재정 적자를 바탕으로 민간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국내총생산(GDP)의 개념은 생산물의 개념이다. 하지만 자금 흐름을 중심으로 경제를 판단한다면 우리가 아는 상식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MMT에서는 경제를 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 그리고 해외 부문으로 나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략히 말해 ‘민간 부문 잔액+정부 부문 잔액+해외 부문 잔액’은 ‘0’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항등식이다. 민간에서의 자금과 정부의 자금 그리고 수출입과 투자를 통한 해외의 자금 유출입을 합한다면 자금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수출이 안 되면 정부 지출이 답이다

외부의 수출 변수를 정책으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외부의 자금 흐름을 무시하고 판단했을 때 정부의 재정 흑자는 민간의 재정 적자와 동일한 액수가 된다. 반대로 정부의 재정 적자는 민간의 재정 흑자와 같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리고 원하는 정부의 흑자 재정은 결국 민간의 적자 재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재정 흑자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자금이 많다면 민간 부문 경제는 흑자를 유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수출 비율이 높은 한국이다. 결국 지금까지 정부가 자랑해 온 균형 재정과 흑자 재정은 기업의 수출이 잘됐던 것이 원인이라는 의미다. 만일 수출이 감소하는 구간이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2019년 미·중 무역 분쟁과 한국 내수의 위축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MMT에서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정부 정책의 중요한 과제는 한국 정부의 정책 과제와 유사하다. 완전 고용을 위해 정부의 지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칼레츠키의 이론을 받아들인 MMT 학파에서 칼레츠키의 ‘소득 주도 성장’ 이론을 제시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 정부 정책이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이면서 중간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MMT에서 주장하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적자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한국은 민간의 세금을 더 거둬 일자리 창출 정책을 시행해 왔다. MMT의 이론대로라면 민간에서 자금을 가져와 민간에게 자금을 사용한 것이다. 결국 정책 과정에서 비용이나 비효율성이 없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더라도 민간의 자금 변화는 0이 된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민간의 자금이 마이너스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시에 정부의 재정 흑자는 민간 부채의 증가와 같다. 그런데 한국은 민간 부문 중 가계 부채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민간의 부채는 증가하는데 가계 부채는 감소한다면 결국 부채의 증가분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기업이 된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의 좀비 기업이 늘어난다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단순히 기업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20년 한국 정부의 재정은 적자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 부채의 규모가 60조원 수준이라는 계산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지만 정부의 자금이 민간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이다. 감세 정책이 비교적 제한적이라는 부분이 아쉽지만 2020년은 정부의 자금 유입과 수출 증가에 따른 해외 자금 유입까지 기대할 수 있어 한국의 경제성장률 역시 시장의 예상보다 높을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정책 집행 과정에서 많은 저항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의 적자 재정 의지가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한국 경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순간적 판단으로 세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민간 경제가 가지는 부담이 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구간에서 MMT가 원하는 정책은 단순하다. 더 많이 쓰고 덜 거둬라. 민간 경제는 그래야 살아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