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 100만의 입지·‘신세계 타운’ 만든 과감한 투자·운영의 묘 등 3박자 딱 맞아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마침내 국내에서도 연매출 2조원을 넘어선 백화점이 나왔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주인공이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강남점은 지난해 누적 매출이 2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세계 강남점의 이번 매출 기록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내 백화점들 가운데 최초일 뿐만 아니라 해외로 눈을 돌려도 연매출 2조원을 기록한 백화점 점포를 찾기 힘들다. 영국 런던의 해로드백화점, 프랑스 파리의 라파예트백화점, 일본 도쿄의 이세탄백화점 등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유명 백화점들만이 연간 2조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 매출 2조원을 달성함으로써 신세계 강남점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백화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백화점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신세계 강남점이 매출 2조원을 돌파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가 커졌던 1월 30일 오후 서울 도심은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신세계 강남점이 들어선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인근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거리 곳곳을 거닐며 바삐 움직였다. 한눈에 봐도 백화점 매출과 직결되는 유동 인구가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신세계 정문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자 저 멀리 지난해 평당 가격 1억원을 기록했다는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가 보였다. 이 밖에 래미안 퍼스티지 등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득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백화점 쇼핑하기가 참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결1-교통 관문에 자리한 최적의 ‘입지’


짧게 요약하면 신세계 강남점은 ‘유동 인구가 많은 부촌’ 한가운데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 같은 ‘입지’야말로 신세계 강남점이 업계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한 끝에 경쟁 점포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매출 2조원의 벽을 넘을 수 있었던 주된 원동력으로 꼽힌다.

신세계 강남점이 자리한 신반포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연일 북적대는 국내 최대 상권 중 하나다. 하루 유동 인구만 대략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대한민국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경부·영동선)과 센트럴시티(호남선)는 서울과 지방 곳곳을 연결하는 ‘핵심 관문’ 역할을 한다. 유동 인구가 많아 지하철역(고속터미널역) 역시 3호선·7호선·9호선이 연계된 ‘트리플 역세권’을 조성했다.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우한 폐렴 확산 조짐에도 불구하고 이날 직접 둘러본 서울고속터미널과 센트럴시티 대합실은 여전히 고속버스를 이용해 각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이들로 붐볐다. 이 두 곳을 연결하는 3호선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언제든 가까이에 있는 신세계 강남점을 찾아 상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 고객들이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고객들을 몰리게 할 수 있는 ‘힘’을 교통 인프라 덕분에 자연스럽게 구축한 셈이다.

유동 인구뿐만 아니라 ‘부’가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주변만 보더라도 아크로 리버파크, 래미안 퍼스티지, 반포자이처럼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들이 신세계 강남점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이들이 그만큼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강남점의 명품 매출 비율은 다른 신세계 점포와 비교할 때 약 4배 이상 높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날 백화점 내부 2층(명품코너)에 마련된 샤넬 매장에는 상품을 둘러보기 위해 대기하는 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렇듯 ‘사람’과 ‘돈’이 몰리는 최상의 입지를 기반 삼아 2000년 처음 문을 연 신세계 강남점은 그간 가파른 성장을 이어왔다.

신세계 강남점은 2010년 개점 10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해 ‘업계 최단기간 1조 점포’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롯데백화점 소공점(본점)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상황이었다. 1979년 문을 연 롯데백화점 본점은 1999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바 있다.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이후 약 10년간 매출 1조원이 넘는 백화점 점포가 국내에서 등장하지 않았는데 신세계 강남점이 업계 둘째로 ‘1조 클럽’에 가입하며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롯데백화점 소공점을 제치고 매출 2조원을 먼저 기록하며 명실 공히 ‘국내 1등’ 백화점으로 올라서게 됐다.


◆비결2-과감한 결정과 투자


입지가 가져다주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 신세계가 최근 몇 년간 단행했던 과감한 결정과 투자 역시 신세계 강남점을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게 한 비결로 꼽힌다.

현재 센트럴시티를 포함한 신세계 강남점 일대는 이른바 ‘신세계 타운’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내부에는 숫자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맛집은 물론 영화관·서점·병원 등 다양한 목적의 점포들이 즐비했다.

굳이 쇼핑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아야 이유가 충분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입지에 걸맞은 초대형화 점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다.

지금의 모습을 완성하기까지 두 번의 큰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첫째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는 2000년 10월 강남점을 출점할 당시 복합 쇼핑몰인 센트럴시티를 소유주에게 20년 장기 임차해 운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매장이 문을 연 뒤 신세계 강남점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올리자 문제가 발행하기 시작했다. 수수료 때문이었다.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장사가 잘되는 만큼 센트럴시티 소유주측이 임대 수수료를 올려 받기를 원하며 갈등을 빚었다. 오랜 기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2006년 센트럴시티 측이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잘 봉합됐지만 언제 또다시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신세계는 2012년 센트럴시티 소유주에게 지분 약 60%를 1조250억원에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신세계가 조 단위의 투자를 결정한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었다. 센트럴시티의 경영권을 확보함으로써 센트럴시티가 글로벌 호텔 체인 업체 ‘메리어트 인터내셔널’과 합작해 운영하던 ‘JW메리어트’ 호텔의 운영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신세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다. 추가로 커다란 면적의 쇼핑 부지를 확보한 만큼 여기에 신세계만의 색을 새롭게 입힌 대규모 ‘신세계 타운’ 건설을 목표로 삼고 하나하나 실천에 옮긴 것이다.

2014년 센트럴시티 내부에 전국의 유명 맛집을 모아 만든 ‘파미에 스테이션’을 시작으로 2015년 백화점에서 구매가 어려웠던 스트리트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킨 ‘파이메 스트리트’를 강남점 지하 1층에 조성했다. 두 곳을 연결해 쇼핑과 식사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쇼핑 공간을 탄생시켰다. 두 곳은 이미 강남의 ‘새로운 명소’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했다.

신세계 강남점도 2014년 대대적인 신·증축 리뉴얼에 돌입해 2016년 새롭게 오픈했다. 기존 5층 건물에 새롭게 6개 층(6~11층)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었다. 무려 17개월이 걸린 작업 끝에 공사를 마쳤다.

신·증축을 통해 영업 면적을 기존 5만5500㎡(약 1만6800평)에서 8만6500㎡(약 2만6200평)로 약 55% 늘려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백화점을 만들었다.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센트럴시티 내 JW메리어트 호텔도 국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이라는 콘셉트로 리뉴얼했다. 2018년 6월에는 센트럴시티 내부에 면세점까지 출점하는 등 계획했던 구상들에 하나둘 마침표를 찍었다.

그 결과 최근 신세계 강남점 일대는 주말이 되면 북적이는 것을 넘어 ‘혼잡’이 우려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는 등 이전보다 상권이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강남점에서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힘이 늘어난 셈이다.

◆비결3-매장 구성에서 발휘한 ‘운용의 묘’


신세계 강남점에 입힌 ‘운용의 묘’도 매출 기여에 한몫했다. 신세계는 강남점을 리뉴얼하면서 외형 확대뿐만 아니라 더욱 효과적으로 고객의 발길을 끌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매장에 입혔다.

대표적인 예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전문관’ 시스템이다. 기존 브랜드 위주의 매장 구성을 상품 위주의 체험형 매장 형태로 바꾼 것이다. 과거엔 고객이 냄비를 구매하려고 할 때 A·B·C 등 모든 브랜드 매장을 각각 둘러봐야 했다. 전문관 시스템은 이런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예컨대 강남점에 마련한 ‘생활 전문관’에서는 모든 브랜드와 가격대의 냄비를 한곳에 진열했다.

직접 9층에 자리한 생활 전문관을 둘러봤다. 각각의 주방 용품들을 브랜드와 상관없이 카테고리별로 진열해 놓아 상품의 특징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구매한 경험이 없어 생소한 커피머신 같은 제품들도 어떤 브랜드가 비싸고 싼지 쉽게 비교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일반적인 형태의 매장들보다 내부도 잘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4개의 전문관은 오픈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며 전체 매출 성장에 기여했다.

10층에 자리한 아동 전문관도 눈에 띄었다. 6612㎡(2000평) 규모의 한 층 전체를 오로지 아동들을 위한 상품과 공간으로 채웠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 ‘이례적’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을 정도다.
‘연매출 2조’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비밀
10층에 들어서자 옷과 장난감뿐만 아니라 아동들을 위한 전문 카페와 놀이방 등을 운영 중이었다. 부모들이 마음 놓고 편안한 쇼핑을 즐기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전문관 구축 외에도 센트럴시티 내부에 신세계의 둘째 서울 시내 면세점인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을 유치해 오픈한 것 역시 ‘신의 한 수’였다.

강남점과 내부를 서로 연결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두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한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신세계에 따르면 면세점이 문을 연 2018년 6월 이후 외국인 매출은 면세점 오픈 전 대비 무려 200% 늘었다.

그 결과 강남점의 지난해 외국인 전체 매출 역시 2018년 대비 6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국내 인구로 규모 봤을 때 내수만으로 매출 2조원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며 “지난해 한류 열풍을 타고 국내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난 가운데 강남에 면세점을 오픈하며 해외 쇼핑객 수요를 일정 부분 흡수한 것이 매출 2조원 달성에 결정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2000년 후발 주자로 강남 입성…우려 깨고 업계 ‘1등’ 등극


신세계 강남점이 첫 문을 열었던 당시만 하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우려와 기대가 상존했다. 강남이라는 입지에 걸맞게 ‘유럽 스타일의 국내 최고급 백화점’을 내걸고 문을 열었지만 그 시점이 2000년 10월로 다소 늦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강남 상권엔 압구정동에 들어선 현대백화점 본점, 갤러리아 명품관 등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켜 온 ‘전통의 강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세계 강남점이 이들과 경쟁에서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놀라웠다. 입지를 기반 삼아 국내 최초로 테이크아웃 개념을 도입한 식품관 개점을 비롯해 고소득층 고객들이 선호하는 상품군을 강화하고 VIP 마케팅을 실시하는 등 차별화 전략으로 빠르게 ‘강남의 맹주’로 자리 잡았다.

백화점업계에서는 단일 점포의 정확한 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관련 업계에서는 신세계 강남점이 빠르게 안착하며 대략 2003년부터 강남점이 강남지역 매출 1위에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2017년부터 신세계 강남점이 그간 줄곧 국내 백화점 매출 1위를 기록해 왔던 롯데백화점 본점(소공점)을 누르고 매출 기준 1위에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까지 포함해 사실상 3년 연속 매출 1위를 차지한 만큼 국내 최고 백화점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는 모습이다. 롯데백화점 소공점은 지난해 약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