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여야, 영입 경쟁
"유럽 30대 총리 부러워 말고 스토리 위주 탈피 정치 자생력 갖춘 인물 키워야"

여야가 4·15 총선을 앞두고 청년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청년 표심을 겨냥해 20대에서 40대 초반의 각계 인사들을 잇달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이들을 비례대표 안정권에 배치하거나 당선이 유력한 텃밭 지역구에 공천할 계획이다.
'꽃가마' 태워 데려온 청년, 정치 얼마나 잘할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최혜영(41)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을 1호로 영입했다. 최 이사장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회복지학 교수가 됐다. 민주당은 이후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방송에 출연해 효자 아들로 화제를 모았던 원종건(27) 씨, 청년 소방관 오영환(32) 씨, ‘인공지능(AI)·스타트업’ 전문가인 홍정민(42) 변호사, ‘환경 전문’ 이소영(35) 변호사, 스타트업 청년 창업가인 조동인(31) 미텔슈탄트 대표, 방위산업 전문가인 최기일(39) 건국대 겸임교수 등을 ‘젊은 인재’로 모셔왔다.
'꽃가마' 태워 데려온 청년, 정치 얼마나 잘할까
자유한국당은 백경훈(36) 청사진(청년이 사회의 진정한 원동력) 공동대표를 청년 1호 인재로 데려온 뒤 탈북자 인권 운동가 지성호(38) 씨, ‘체육계 미투 1호’인 김은희(29) 고양테니스아카데미 코치, 장수영(32) 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유라시아 대륙 1만8000km를 횡단한 극지 탐험가 남영호(43) 씨를 잇달아 영입했다.

벌써부터 논란도 일고 있다. 오영환 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관련 의혹에 대해 “당시 학부모들이 하던 관행”이라고 말해 뒷말을 낳았고 원종건 씨는 ‘미투’ 논란에 휘말린 끝에 불출마 선언을 했다. 최기일 교수는 과거 표절로 논문이 취소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동인 씨는 2015년 1주일 만에 기업 3개를 창업했다가 2년 3개월 만에 동시 폐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스펙용 창업’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소영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문 변호사로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백경훈 대표는 신보라 한국당 의원의 비서 남편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자격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청년 영입, 이벤트에만 신경 쓰다 보니 뒤탈 낳아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청년 영입에 나서지만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우선 투표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진 것을 꼽을 수 있다. 만 18세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약 1.2%인 55만여 명이다. 접전 지역구에선 수십 표, 수백 표로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세대교체 명분도 있다. 유럽 등에 30대 총리와 장관이 배출되는 등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정치권의 젊은 바람 영향이 크다. ‘세대교체=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통계를 보면 한국의 정치권이 정치 선진국들에 비해 노화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30대가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30대 이하 국회의원 수는 의원 정수(300명)의 1%인 3명에 불과하다. 국제의회연맹(IPU)이 청년 상한 연령으로 잡는 45세 이하 유권자는 약 55%를 차지하는데 비해 이 연령대의 의원 수는 7%에 미치지 못한다. IPU 조사 대상 150개국 가운데 한국의 청년 의원 비율은 143위를 나타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삶과 정치 형태가 바뀌는 것에 걸맞은 디지털 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정치권은 2030세대들에게 디딤돌이 돼 줘야 한다”고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비례대표의 절반을 2030세대에게 주는 ‘청년 비례대표 50% 할당’을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기존 세대는 2030세대가 대거 들어올 수 있는 일종의 ‘프로모터’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인재를 영입하면서 청년·여성 친화 정당의 모습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영입된 분들이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 인재를 불러놓고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바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21대 총선의 시대적 요구는 세대교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의 청년 영입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전문성이나 정치 경험을 존중하기보다 ‘1회용 표 팔이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치 리더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선거를 앞두고 정치와는 거리가 먼 스토리와 화제성 인물 위주의 영입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좋은 경력·스토리를 갖춘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청년 표심을 겨냥한 이벤트와 포장에만 신경 쓴다는 얘기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일회용 추잉껌에 비유하며 “유통 기한은 정확히 단물이 다 빨릴 때까지”라고 비판했다. 과거에도 스토리성 있는 청년들을 발탁해 놓고 4년간 별다른 활동을 못한 채 ‘병풍’ 노릇만 하다가 정치에서 퇴장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도 40세에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35세의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34세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같은 정치 리더들을 가질 때가 됐다고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 국가들은 젊고 유능한 정치 리더들을 배출할 수 있는 정치 문화와 시스템을 갖췄다. 선거에 임박해 스토리와 스펙만 보고 부랴부랴 청년 인재라는 이름으로 꽃가마를 태워 데려오는 바람에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 한국과 너무나 다르다.

◆유럽, 10대 때부터 밑바닥 현장에서 정치 배워

유럽의 젊은 정치 리더들은 어느 날 갑자기 꽃가마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10대, 20대부터 정당 조직에 가입해 정치를 배워 왔다. 기초의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경험을 쌓은 뒤 중앙 무대에 데뷔하는 것이 이들의 정치 코스다. 나이는 30대, 40대이지만 정치 경험은 20년 안팎 되는 정치 전문가들이다. “저는 원래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소시민이었다”는 우리의 젊은 영입 인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권도 장기적 관점에서 정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수혈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정치에 과감하게 도전하게 하고 스타로 키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김혜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당 내 청년 정치인 육성에 소홀한 점이 있다”며 “청년 정치인을 정당 내에서 육성해 성장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우 한국당 의원도 “정치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며 “정치 리더를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도 “이번 총선을 통해 젊은 세대들의 감각과 언어, 행동 양식이 구현되는 장을 마련해 줘 젊은 세대들을 정치권에 많이 진출시켜야 한다”며 “그러기 위한 정당의 교육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철희 의원은 “2030세대도 스펙 좋은 사람을 공천하지 말고 경제 현장에서 뛰어본 사람들, 경제를 좀 알고 창업해 본 사람들, 규제 때문에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을 국회에 나오게 하는 게 좋다”고 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