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생충 열풍’의 숨은 주역, CJ] - 초기부터 ‘봉준호다운 영화’에 꾸준한 지원…선거전 방불케 하는 ‘아카데미 캠페인’ 진행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한국 영화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영화 ‘기생충’이 세계 시네마의 메카 할리우드를 점령하고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고 영화인들의 최대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에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할리우드 정복한 영화 ‘기생충’…25년 CJ 문화 사업 ‘결실’
‘기생충’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미술상·국제 장편 영화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현지 분위기를 비춰볼 때 주요 수상이 유력하다. 봉준호 감독은 두 번에 걸쳐 언론 인터뷰에서 “‘기생충’이 만약 오스카상을 받게 된다면 한국 영화 산업에 큰 의미를 갖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이 ‘산업’을 언급한 부분은 나름의 함의를 가진다. 자신의 영화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 산업적으로 미칠 파급력을 안다는 의미다. 그는 데뷔작을 제외하고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의 필모그래피가 있었기에 ‘기생충’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영화 한 편이 탄생하기까지 감독·배우·스태프들이 전면에 나선다면 뒤에는 숨은 조력자들이 있다. 제작사부터 투자·배급사들이 기획과 자본을 책임진다. 영화 산업의 특징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번 흥행하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지만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 대작 한 편이 참패하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특히 메인 투자를 담당하는 투자·배급사는 총대를 메는 셈이다. ‘기생충’의 투자·배급사 CJ가 ‘기생충’ 성공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살인의 추억’으로 봉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한 CJ는 꾸준히 그의 영화에 투자했다. 특히 좌초될 위기에 처한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가 질주할 수 있도록 메인 투자사를 자처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다. 또한 ‘네트워크 역량’을 통해 글로벌 배급·유통을 지원해 왔다.

‘기생충’이 호평 받는 이유 중에는 봉 감독이 오랜만에 마음껏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 ‘봉준호다운 영화’라는 데 있다. 유럽에선 이미 그의 가치를 알았지만 미국에선 소수의 평론가만이 봉 감독을 인정해 왔다면 이번 ‘기생충’을 계기로 그는 세계 영화 산업의 본진에 우뚝 서게 됐다.

특히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은 한국 영화의 시장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방탄소년단(BTS)’ 이후 다수의 한국 스타들이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의 동반 성장도 그려볼 만하다. 음악과 방송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화 부문의 한류가 더뎠다면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 이제는 할리우드에서 ‘K필름’ 열풍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기생충’ 인기 열풍 어디까지 이어질까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11일 미국 현지 언론과 평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3개 상영관에서 선개봉됐다. 당시 ‘기생충’의 오프닝 스코어는 북미에서 개봉된 모든 외국어 영화의 극장당 평균 매출 기록을 넘어서는 역대 신기록이다.

개봉 후에는 관객들의 입소문이 더해지며 상영관 수를 빠르게 확장했고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이슈가 겹쳐지며 현재는 1060개까지 상영관이 늘어나 앞으로의 흥행 성적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기생충’은 개봉 10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한 흥행세를 유지하며 1월 19일을 기준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누적 매출 3156만7648달러(약 377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북미에서 개봉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 기록이자 북미에서 개봉된 모든 외국어 영화 중 역대 흥행 순위 7위의 대기록이다.

영화 ‘기생충’의 흥행은 비단 북미에서만은 아니다. ‘기생충’은 지난해 5월 30일 한국 개봉을 시작으로 프랑스·스위스·호주·홍콩·대만·스페인·이탈리아·브라질·멕시코·일본 등 해외 49개국에서 개봉됐다.

이 중 프랑스·터키·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베트남·인도네시아·호주·독일·이탈리아 등 해외 25개국에서 현지 개봉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올해도 영국·핀란드·인도·아르헨티나·불가리아·아랍에미리트 등에서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기생충’이 지난해 5월 30일 한국 개봉을 시작으로 전 세계 40개국에서 올린 극장 수익은 지난해에만 1억2970만 달러(약 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포브스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2월 9일까지 글로벌 수익이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CJ 관계자는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이후 북미에서의 스크린 개수가 다시 확대되는 등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기생충’의 티켓 파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초 개봉된 일본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또 인도·영국·노르웨이·핀란드·칠레·아르헨티나 등에서도 올해 상반기 개봉이 예정돼 있어 ‘기생충’의 세계적인 흥행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기까지 CJ의 지원 사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이뤄졌다.
할리우드 정복한 영화 ‘기생충’…25년 CJ 문화 사업 ‘결실’

‘기생충’ 드라마틱한 지원 사격 나선 CJ
먼저 감독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일련의 과정을 함께하며 메인 투자사로서 전폭적인 뒷받침에 나섰다. ‘기생충’ 엔딩 크레디트에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이름을 올린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또 한편에서는 아카데미상 지원군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오스카상은 심사 과정이 작품 출품과 초청 형식으로 이뤄지는 여타 영화제와는 다르다. 칸 영화제가 위촉된 심사위원 10명이 최고 작품을 선정한다면 아카데미상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올해는 전 세계 약 8400명의 회원들의 표심이 향방을 가른다. 그래서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아카데미 캠페인이 벌어지는 게 오스카상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과거 1000만 달러 제작비의 영화를 위해 2000만 달러 홍보비를 쓰기도 했다”고 한 영화 관계자는 설명했다.


실제로 CJ는 지난해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아카데미 캠페인 준비에 돌입했다. CJ그룹의 최고경영진도 투 트랙으로 힘을 보탰다. ‘기생충’이 이런 성과를 얻기까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전략가’, 이미경 부회장은 ‘실행가’ 역할을 자처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CJ ENM 영화 커뮤니케이션의 윤인호 팀장은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생충’ 관련 모든 활동이 넓은 범주에서는 모두 ‘아카데미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며 “작년 8월 말 ‘기생충’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국제장편영화상)’ 대한민국 후보로 확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결국 ‘아카데미 캠페인’은 예산·인력과 글로벌 영화계 네트워크,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모두 결합돼야 하는 복합적인 글로벌 프로모션인 셈이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아카데미 캠페인 전담팀’이 조직 내 상설돼 있는 반면 한국 최초로 ‘조직적인 아카데미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CJ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부닥쳐 가며 해결하는 것이었다.

CJ는 우선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맡고 있는 네온(NEON)과 역할을 나눴다. CJ ENM 영화사업본부 해외배급팀에서 전체 캠페인 전략을 총괄하며 캠페인 예산 수립부터 전 세계 ‘기생충’ 개봉 현황 관리, 관객·오피니언 리더 대상 타깃 시사회 개최, 광고·이벤트와 같은 현지 프로모션 등을 총괄했다. 현지 노하우가 풍부한 네온은 북미 프로모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시사회 진행, 북미 영화제 출품 등 실무를 맡았다.

무엇보다 직접 투표권을 가진 오피니언 리더들의 표심을 잡는 프로모션이 중요하다. CJ는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관) 공식 상영(6월, LA)을 비롯해 2019년 9월부터 2020년 1월 사이에 AMPAS 회원을 대상으로 수십 회의 시사회를 가진 것은 물론 같은 기간 미국감독조합(DGA)·미국배우조합(SGA)·미국프로듀서조합(PGA) 등 미국 영화계 주요 직능 단체를 대상으로 시사회도 개최했다. 시사회 전후에는 리셉션과 파티 등 이벤트를 개최하며 소위 ‘기생충 대세론’ 여론 만들기에 집중했다.

봉 감독과 배우들은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도 북미 프로모션에 동참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수상 이후 한국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배우 송강호 씨가 콜로라도에서 열린 텔루라이드 영화제를 돌아다니다가 쌍코피가 터졌다는 일화를 밝힐 정도로 바쁘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기생충 열풍’의 숨은 주역, CJ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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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