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와대에선]-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신종 코로나 등 역병 5년 주기설…지지율은 그때마다 달라
정권마다 등장하는 감염병과 지지율 관계는
[김형호 한국경제 기자]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모든 단위에서 필요한 노력을 다하고 있으므로 국민들께서도 정부를 믿고 필요한 조치에 대해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마실 것을 당부 드린다.”(1월 26일 대국민 메시지)
“국민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야 한다. 선제적 예방 조치는 빠를수록 좋고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1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종합 점검 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 이후 청와대가 사실상의 ‘비상 모드’로 전환했다. 정부 부처의 새해 국정 업무 보고 등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일정은 대부분 연기됐다. 문 대통령은 세 번째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1월 26일 첫 대국민 메시지를 낸 이후 현장 방문과 종합 점검 회의를 직접 챙기고 있다.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던 발언 수위도 시간이 갈수록 “필요한 조치는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고 하는 등 한층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우한 폐렴 사태의 컨트롤 타워를 자임하고 총력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도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반면교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우한 폐렴 사태 전개가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여당 관계자는 “초반에 비해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감이 다소 잦아든 면이 있지만 확진 환자가 계속 늘고 있어 걱정”이라며 “전국적 확산과 사망자 발생 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한 폐렴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는 대규모 감염병 5년 주기설이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범유행(pandemic) 수준의 대규모 감염병이 예외 없이 발병하고 있어서다.
◆정권마다 예외 없는 대규모 감염병에 문재인 정부 긴장
정치권에서 대규모 감염병 5년 주기설이 도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이던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를 시작으로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신종 인플루엔자(H1N1, 일명 신종플루), 2013년 박근혜 정부 메르스, 2020년 문재인 정부 우한 폐렴까지 매 정부마다 대형 감염병이 발병했기 때문이다. 발병 시기가 정확히 5년으로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5년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예외 없이 대규모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5년 주기설이 거론된다.
신종플루를 제외한 사스·메르스·우한 폐렴 등은 모두 박쥐에서 유래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신종플루는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전 세계적으로 발병해 약 5000만 명에서 1억 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인 H1N1의 A형이다. 스페인 독감의 최초 발병지는 미국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언론을 통제하면서 중립국이던 스페인에서 처음 독감 유행이 보도돼 스페인 독감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현재 진형형인 우한 폐렴을 제외하면 치사율이 가장 높은 역대 감염병은 35.5%를 기록했던 메르스가 꼽힌다. 당시 국제적으로 2266명이 감염돼 국내 38명을 포함해 804명이 사망했다. 사스는 8096명이 감염됐고 사망자는 774명으로 9.6%의 치사율을 보였다. 국내 사망자는 없었다. 신종플루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감염자 74만 명, 국내 사망자 260명을 기록했다.
지난 3차례 사례에 비춰볼 때 대규모 감염병은 정부 대처와 사망자 규모,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스는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4월 국내 첫 환자가 발병했다. 이후 상황이 종료된 7월까지 114일 동안 범정부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국내 감염자는 3명이었고 사망자는 나오지 않아 체계적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론 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 첫 발병 당시 75%였던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스 사태가 진압된 6월 46.8%까지 급락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스 모범 예방국’으로 평가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방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 원 포인트 중임제 개헌 카드를 꺼내들면서 야당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과도 사이가 벌어지고 이에 따른 국정 혼란 우려가 커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분석이다.
신종플루는 이명박 정부 2~3년 차에 발생했다. 2009년 5월 첫 국내 감염자가 나와 3개월 뒤인 8월 첫 국내 사망자가 나오면서 국민적 불안감이 커졌다. 2010년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감염자는 74만 명, 사망자는 260명을 기록했지만 치사율은 0.00035%에 그쳤다. 그해 5월 37.9%였던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망자가 발생한 8월 40.5%로 오히려 올랐다. 2009년 10월 일부 진보 시민 단체에서 “이명박 정부가 신종플루 백신을 새로 구매하지 않아 백신의 마지막 구입 시기를 놓쳤다”며 정부의 미흡한 대책을 질타했음에도 지지율은 54.3%까지 상승했다.
이후 2010년 4월께 신종플루 사태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48.4%로 떨어졌다. 신종플루가 당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지지율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게 여론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사태는 지난 3번의 대규모 감염병 사례 가운데 대통령 지지율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준 것으로 꼽힌다.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병한 2013년 5월 40.8%였던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뒤인 6월 31%로 급락했다. 당시 국내 환자 186명 가운데 38명이 사망해 사망률이 20.4%에 달했다. 발병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이웃 나라인 중국은 단 한 명의 감염자와 ‘무 사망자’를 기록해 더욱 국민적 공분을 샀다.
당시 메르스 사태가 국정 지지율에 직접 영향을 미친 데는 미흡한 정부의 초동 대응 탓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병원을 통한 2차 감염이 확인되면서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정보 공개 불투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실명을 즉각 공개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6월 급락했던 국정 지지율은 그해 7월 35.1%로 반등한 데 이어 11월에는 54.4%까지 치솟았다. 대규모 감염병이 단기적으로 국정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그 외 다른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는 의미다.
◆정치 상황과 정부 대처, 사망자 규모가 지지율에 영향
우한 폐렴 사태에 청와대가 총력 대응 태세로 전환한 것도 대형 감염병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다. 특히 과거와 달리 총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두고 대규모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돼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방에서 2, 3차 감염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일 대응 점검 회의를 통해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한순간의 방심도,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비상한 각오로 우한 폐렴 사태 종식에 나서겠다”며 각별한 각오를 주문하고 있다. 리얼리터가 2월 5일 발표한 여론 조사에서 정부가 우한 폐렴 사태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55.2%로 ‘잘못 대응하고 있다(41.7%)’보다 높게 나타났다. 같은 여론 조사 기관이 2월 6일 발표한 대통령 국정 지지율도 48.0%로 전주 대비 3%포인트 상승했다. 부정 평가는 47.8%를 기록해 3주 만에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앞섰다.
정부의 초반 총력 대응 태세를 국민은 아직까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추가 확진 환자가 계속 늘고 있어 향후 지지율 추이는 확진 환자 증가 속도와 국내 사망자 발생 여부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확진 환자의 첫 퇴원 사례가 나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2, 3차 감염자가 계속 나오고 있어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방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에서 확진 환자 속도가 언제 꺾이느냐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