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탄력근로제법·서비스발전법·원격의료법·SW산업진흥법 등 20대 국회서 줄줄이 폐기될 듯
코로나·총선 겹쳐…물 건너가는 경제활성화법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월 13일 “경제계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한 모든 사항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문 대통령과 기업인 간 간담회 내용을 브리핑하면서다. 당시 기업인들은 ‘항공 관세 인하’와 ‘중국 공장 방역 물품 지원 확대’를 비롯한 코로나19 대책뿐만 아니라 ‘탄력근로제 도입’을 담은 경제활성화법의 조속한 처리도 건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작년 2월 경사노위 합의를 통해 발의된 법안이 국회에서 잘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여야 모두 ‘4·15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주요 경제활성화법 논의가 뒷전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2월 26일 본회의를 열긴 했다. 하지만 감염병예방법·검역법·의료법 등 일명 코로나3법만 처리하고 경제 법안들은 뒤로 밀렸다. 임시 국회 중이지만 규제 완화 등을 담은 경제활성화법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 일정이 잡힌 상임위는 한 곳도 없다.

◆9월 정기국회 때는 돼야 본격 논의 가능할 전망

이 때문에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인터넷은행법 개정안,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 개정안, 원격의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등은 5월 말 임기가 끝나는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21대 국회가 6월부터 임기가 시작되지만 각 상임위원회 구성을 하는데 최소 2~3개월이 걸린다. 이 때문에 주요 경제활성화법 논의는 9월 시작되는 정기 국회 때가 돼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때 심사가 이뤄지더라도 각 법안마다 여야 간 이견이 상당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일부 법안은 또다시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업들은 올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5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는 만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아 왔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단위 기간을 얼마로 할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보완 입법으로 추진됐다. 탄력근로제는 특정일에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했다면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정 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시간에 맞추는 것이다. 현행법은 노사 간 서면 합의가 있을 때 그 기간을 3개월까지 늘릴 수 있다. 경영계는 3개월로는 턱없이 짧다며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관련법은 지난해 3월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 상정됐다. 하지만 단위 기간 확대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면서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6개월, 미래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1년을 고수하면서 한동안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 바른미래당이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하되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를 함께 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여야는 다시 논의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당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대신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 기간도 3~6개월(현행 1개월)로 확대하는 ‘패키지 딜’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반대하면서 법안 심사에 진전이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 보완 입법이 국회에서 막히자 정부는 시행령을 고쳐 1년 계도 기간을 둬 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유예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18대 국회 때 발의돼 20대 국회까지 처리되지 못해 일명 ‘3선법’으로 불린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기반을 다져 일자리를 만들고 내수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주요 내용을 보면 △서비스 산업 연도별 시행 계획 수립과 추진 상황 점검 ▷서비스 산업 총괄 컨트롤 타워 구성 △기존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서비스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연구·개발(R&D) 유도 △재정·금융 지원 등이다.

이 법안이 2011년 12월 국회에 처음 제출된 이후 18대와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가 다시 제출되기를 반복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은 의료 분야의 법 적용 대상 여부를 놓고 여야 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보건·의료 분야 제외’ 문구를 넣지 않고는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제3조 1항 ‘서비스산업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가 충돌 지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서비스발전법이 제정되면 이 조항 때문에 자칫 원격 의료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불허하는 의료법이 무력화되면서 의료 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는 원격의료가 서비스발전법 통과로 시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의료 공공성을 지킨다는 내용까지는 명시할 수 있지만 보건 의료 부문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중요한 분야 중 하나가 의료인데, 이를 빼면 법안 제정 의미가 퇴색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말 취임한 뒤 법안 처리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여당의 반대로 논의 한 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일부 의료 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법안 처리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이 때문에 이 법안은 20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또다시 자동 폐기 처리되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코로나·총선 겹쳐…물 건너가는 경제활성화법

◆이익단체 반대에 번번이 가로막혀 논의 ‘뒷전’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도 의사협회의 반대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쟁점은 의료법 34조다. 의사와 의사 간 원격 진료는 허용하지만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는 금지하고 있다. 원격 진료가 가능하려면 환자 옆에 의사 또는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 그간 두 차례에 걸쳐 시범 사업이 진행됐다. 1차는 고혈압과 당뇨 등 재진 환자 845명을 대상으로, 2차는 의료인 간 원격 협진과 도서벽지·군부대·원양선박·교정시설 등을 대상으로 각각 실시됐다.
하지만 21년째 시범 사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격 진료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보건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여당 지지층인 시민 단체와 일부 의사 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료법 역시 20대 국회 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가 한시적 대책으로 내놓은 ‘전화 상담과 처방’마저도 의사 단체의 반발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은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어도 인터넷 전문은행 대주주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 확충이 시급한 케이뱅크가 대상이다. 케이뱅크는 자본금 부족으로 거의 모든 대출 업무가 중단된 상태다. 은행 경영을 정상화하려면 KT가 대주주로 나서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이 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 막혀 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KT를 위한 특혜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도 20대 국회 처리가 불투명하다. 이 법안은 소프트웨어 관련 신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대책 강화, 민간 투자형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추진 근거 등을 담았다. 업계는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 시급한 법”이라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이 법안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총선 때문에 의원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