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눈앞에 다가온 총선,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하라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이제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 21대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열린다.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국민의 의사를 국회를 통해 우리의 정치 시스템으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정치 역사를 볼 때 국민의 ‘표’가 중요해질수록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성향 역시 점차 강화됐다. 국민이 원하는 바와 국민이 좋아하는 바를 정치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의 긍정적인 가치를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 상태나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는 정책 공약을 남발하면서 표를 ‘구걸’하는 행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베네수엘라 등 일부 중남미 국가는 반기업·반세계화 정서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후 그 결과 경제 제도가 붕괴하고 경기가 악순환되는 현상을 다수 경험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1999년부터 2013년까지 3번의 임기 동안 석유 외에도 통신·철강·전력·시멘트·식품 등 주력 산업을 국유화했지만 그 이후 해당 국유 기업의 효율성이 점차 악화하고 생산성 역시 하락했다.

단적인 예는 차베스 정권의 식량 정책이다. 열악한 베네수엘라의 보건·기초영양 상황을 개선하고 식량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차베스 정권은 대규모 토지 보유자의 농장 500만 에이커(2만234㎢)를 몰수하며 ‘재산권 보호’라는 경제의 기본적인 틀을 흔들기 시작했다.

또 대기업에 대한 반감을 활용해 애그로이슬레냐·그루마 등과 같은 외국인 합작 대기업을 국유화했다. 국유화의 이유는 해당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 가격 인상 등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유화 이전 애그로이슬레냐의 시장점유율은 51% 수준이었던 반면 국유화 이후 설립된 애그로패트리아라는 공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95%까지 올라가 국유화의 명분이 무색해졌다.

또한 ‘식량 주권 확보’라는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의 수급 조절에 실패해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 기존의 정책 목표마저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경제가 악화되며 환율이 점차 불안정해지자 식량 수입 역시 원활하지 않아 식량 부족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물론 모든 중남미 국가가 포퓰리즘 정책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2006년 취임 이후 소속 정당인 사회주의당과 연립 정부의 파트너인 기독민주당으로부터 칠레의 주력 천연자원인 구리 생산으로 축적되는 수입을 칠레의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데 사용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과감히 거부하고 그 대신 국내총생산(GDP) 1% 이상의 재정수지 흑자분을 축적하는 ‘경제사회안정기금’이라는 국부펀드를 설립했다.

우리 정치 역사에서도 선거 운동 기간과 그 직후 다양한 경제·사회 정책의 수요가 발생하고 그 수요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정수지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미미했고 정책의 효과성을 충분하게 검증하지 않은 채 근시적인 경제·사회 정책이 추진돼 왔다. 경제·사회 정책은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기획되고 추진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법과 질서 규범 아래 국민의 권익을 증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