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책, ‘여성 직장인’ 팟캐스트가 없어지는 날이 온다면
[서평]여성 직장인, 조직 생활의 기술이 왜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김 부장, 신 차장, 이 과장, 문 대리, 박 PD | 한국경제신문 | 1만5000원



[한경비즈니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제목을 보는 순간 의아함이 잠시 스칠지 모른다. 직장인의 슬기로운 조직 생활도 아니고 왜 하필 언니들일까. 언니들이 하는 말인 만큼 여성을 위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언뜻 짐작이 가긴 한다. 짐작은 다시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성만을 위한 조직 생활 이야기가 따로 필요하다는 얘기야.’


다음의 말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프롤로그 일부다. “남자들은 상명하복 문화에 비교적 잘 적응해 조직 생활에 적합한 사람들로 평가되곤 했다. 이런 것들이 달갑지 않고 뒤처지기 싫어 남자같이 행동하면 여자답지 못하다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편견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며 사원과 대리의 시간을 버티던 그때 당장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롤 모델이 절실했다.”


각종 통계와 지표를 가져올 것도 없이 잠시 옆을 둘러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원·대리 직급에서는 여성을 제법 찾아볼 수 있지만 차장·부장 직급으로 가면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임원급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이 참고할 만한 여성 롤 모델이나 여성 선배가 없다는 의미다. 누구든 먼저 가 본 이를 이정표 삼아 배울 부분은 배우고 고충이 있으면 조언을 구해 가며 자신의 미래를 기획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임원은커녕 부장도 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 가장 아쉽고 억울한 일이지만 회사에는 손해다. 여성 임직원의 비율이 높은 회사가 성장률도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와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은 여성 직장인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돼준 동명의 팟캐스트 내용을 기초로 새로 쓰였다. 이 책의 큰 강점은 현실감이다. ‘사직서를 내고 뛰쳐 나오시라’라는 강 건너 불 구경식 조언과 ‘일단 참아야 하지 별수 있겠느냐’라는 허무한 조언과는 거리를 둔다. 많게는 19년 차, 적게는 8년 차 직장인인 멤버들은 다양한 시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지금 회사에 몸담고 있는 만큼 직장인 대부분이 당장 그만둘 수 없고 대들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부당한 차별에 분노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럼에도 당장 사직서를 낼 수 없는 직장인으로서 스스로를 지키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그 결과가 호구 되지 않는 법, 사내 정치 대처법, 회사에서 나만의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법, 유리 천장 깨기, 너무 안 맞는 동료와 함께 일하는 법, 술 못하는 사람을 위한 팁, 진상 상사 앞에서 영리하게 처신하는 법 등이다.


한편 ‘여성 롤 모델이 없다’는 아쉬움에서 출발해 서로가 서로의 ‘손에 닿는 롤 모델’이 돼주기 위한 방향을 찾아가는 저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 서로 힘쓸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여성을 위한’,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는’ 같은 수식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평평한 운동장이 만들어지는 때다. 여자 대학교의 자기 목적은 여자 대학교의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달성되는 역설을 말한 한 여자 대학교 총장의 말처럼 말이다. 저자들은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여자 직장인들이 혼자 아파하기보다 여러 사람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면 과한 욕심일까. 그리고 여자 직장인 팟캐스트가 필요 없는 날이 올 정도로 성차별이 사라지는 그날도 간절히 바란다.” 그런 날이 온다면 여성도 남성도 지금보다 더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하는 것은 물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