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코로나 쇼크’에 빠진 대한민국]
-코로나19에 ‘멈춰선 대한민국’
-소비 위축 어쩌나
-서비스 물가 21년 만에 최저
“17년째 식당 운영하지만 이렇게 안 되긴 처음”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오 모(55) 씨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132㎡(40평) 정도의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월세 253만원과 주방장 등의 인건비를 포함하면 매달 약 1600만원을 고정 지출한다. 음식 재료비는 별도다. 2년 전부터 나가는 돈은 늘어나는 반면 남는 돈은 줄고 있다. 인건비 부담에 4명이던 ‘칼판(칼로 재료를 다듬는 이)’을 1명 줄이는 대신 직접 칼판 역할에 배달까지 나섰다.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뛰었지만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올 들어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가 확산돼 졸업식·입학식 특수가 사라진 것은 그나마 괜찮다. 점심 장사는 물론 저녁 회식 예약도 뚝 끊겼다. 주말 배달 주문조차 확 줄었다. 송파구에서 2월 24일 한 배달 대행업체 소속 배달원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배달 음식마저 꺼리는 가정이 늘고 있어서다.

오 씨는 “주문을 받고 홀 서빙을 담당하는 부인과 가락동에서만 17년째 중국집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이라며 “남기는커녕 벌어둔 돈마저 까먹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자영업자 ‘직격탄’

코로나19 사태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외출 자제 등으로 외식 수요가 급랭한 탓이다. 외식업 등의 상품·서비스 가격이 급락하면서 2월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21년 만에 최저치(0.4%)를 기록했다.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1%에 그쳤다.
“17년째 식당 운영하지만 이렇게 안 되긴 처음”
통계청이 3월 3일 발표한 ‘2020년 2월 소비자 물가 동향’을 보면 2월 서비스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4% 오른 107.40으로 집계됐다. 1999년 12월(0.1%)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전체 소비자 물가 지수도 105.80으로 1.1% 오르는 데 그쳤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0.4%)를 기록하는 등 0% 안팎에 머무르다 올 들어 그나마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외식 물가 상승률이 0.7% 오른 데 그친 영향이 컸다. 2013년 1월(0.7%)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연초에는 보통 인건비 인상 등으로 외식 물가가 오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외식 수요가 줄면서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행업·화훼업 관련 물가도 하락세다. 해외 단체 여행비(-5.8%), 국제 항공료(-4.2%) 등이 큰 폭으로 내렸다. 졸업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생화 가격은 11.8% 급락했다.

특히 근원 물가 상승률은 0.6% 오르는 데 그쳤다. 근원 물가는 소비자 물가에서 대외 변수와 날씨 등에 영향을 받는 농산물과 석유 제품을 뺀 것으로, ‘내수 경기 온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문제는 3월이다.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소비 위축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직원 재택근무제 등을 시행하는 기업이 늘면서 교통량은 물론 신용카드 사용액 등의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17년째 식당 운영하지만 이렇게 안 되긴 처음”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 2월 마지막 주 지하철 이용객은 344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다.

◆고속도로 이용객 18.4% 줄어

주말 외출을 자제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주말인 2월 29일~3월 1일 하루 평균 전국 고속도로 이용 차량은 288만 대로, 2월 첫 주 주말(1~2일)에 비해 18.4% 감소했다.

정부가 밀폐된 대중 교통수단 대신 자가용 이용을 권장하면서 주말 열차 이용객은 더욱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2월 29일~3월 1일 KTX 이용자는 각각 3만1500명, 3만5300명으로 전년 동기 주말에 비해 약 84% 감소했다.

유통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주말 방문객 수가 크게 줄어든 데다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이 확인된 점포에 대해선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임시 휴점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점포에 입점한 자영업자들의 경영난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한·삼성·KB국민·현대·BC·롯데·우리·하나 등 카드사 8곳의 카드 사용액 집계에 따르면 2월 1~23일 개인 신용카드 승인액은 28조2146억원에 그쳤다. 1월 승인액(51조3364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1월 설 연휴 등을 고려하더라도 감소세가 뚜렷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17년째 식당 운영하지만 이렇게 안 되긴 처음”
서울 광진구의 한 복합 쇼핑몰에서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박 모(45·여) 씨는 “보통 입학 시즌이나 신학기가 되면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의 체형에 맞춰 매장에서 옷을 직접 입혀 보고 구매하는 엄마들이 많았는데 올 2월에는 입학을 앞두고도 손님의 발길이 뜸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개인들의 불편도 가중되고 있다. 당장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죄인’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지만 가격(KF94 방역용 기준)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껑충 뛰었다. 판매처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마스크 1장 값은 온라인 기준 800원(오프라인 2000원대 초반) 정도였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온·오프라인 가격이 4000원대로 올랐다.

정부는 2월 26일부터 마스크 공적 물량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수출을 제한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농협 하나로마트·우체국·약국 등 공적 판매처에서 판매하는 ‘1인당 2장(3월 9일 기준)’을 손에 넣기 위해선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을 취소하려는 소비자와 여행사·숙박업소 간 분쟁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절차를 강화한 국가가 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따르면 2월 24일~3월 1일 해외여행 관련 상담 건수는 총 1353건으로 전체 서비스 분야 중 1위를 기록했다. ‘환불 불가’ 조건의 저렴한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가 오히려 거액의 위약금을 떠안게 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전염병 관련 위약금 분쟁 해결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소비자들은 사실상 업체 측의 재량과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전국의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을 3월 23일로 연기하면서 맞벌이 가정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대책으로 마련한 긴급 돌봄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일부 부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은행에 근무하는 김 모(43·여) 씨는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던 친정어머니의 건강이 부쩍 안 좋아져 걱정이었는데 정부 방침에 따라 학교에 이어 학원 개원을 미루는 곳도 늘어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다”며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기업들과 달리 은행 등의 서비스 직군은 제도 도입 자체가 불가능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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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7호(2020.03.09 ~ 2020.03.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