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특정금전신탁→재산신탁’으로 무게중심 변화…’내실 다지기’ 집중
재편 앞둔 신탁 시장, 국내 주요 은행들 전략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신탁 시장에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은 분위기지만 은행들 또한 조직 개편 등을 통해 이와 같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DLF 여파로 신탁 사업 부문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이를 계기로 ‘내실 다지기’에 더욱 중점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먼저 KB국민은행은 기존 WM(자산관리)그룹 내 투자상품서비스(IPS)본부와 신탁본부를 통합해 ‘금융투자상품본부’로 확대했다. 상품 설계, 전략 등을 아우르는 개발 조직과 판매 조직을 통합한 것이 특징이다. WM과 신탁부문 간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일원화함으로써 실질적인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대고객 자산 관리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금융투자상품본부장에는 기존 신탁본부를 이끌어 온 김종란 상무가 선임됐다. 특히 KB국민은행은 2012년부터 일찌감치 신탁 조직 내 리스크관리 조직을 구축해 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존에는 특정금전신탁 등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신탁리스크관리팀을 주축으로 전반적인 소비자 보호 체계를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하나은행 또한 기존 연금사업단과 신탁사업단을 합쳐 연금신탁그룹으로 격상시켰다. 신설된 연금신탁그룹은 신탁 업무를 오래 맡아 온 박의수 기업사업본부 전무가 맡았다. ELT 상품 개발과 공급은 물론 연금사업단과의 협업을 통해 대기업·중견기업용 구조화 펀드 회사채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나은행은 2010년 유언대용신탁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시장의 눈도장을 찍은 신탁업계의 선구자다. 특히 그룹의 5대 성장부문(미래금융·IB·자금·글로벌·신탁)의 하나로 신탁을 지명할 만큼 그룹 차원의 지원도 탄탄하다. 하나금융투자와 연계해 신탁에 편입할 파생상품의 다양한 라인업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와 비교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신탁그룹과 WM그룹과의 통합 가능성이 높게 예상됐지만 분리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신한은행은 2016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원신한(One-Shinhan)’을 위한 3대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신탁부문을 선정하고 공격적으로 신탁사업 부문을 키워 왔다. 당시 신한은행은 기존의 신탁본부를 신탁본부·수탁자산수탁부·퇴직연금사업부로 구성된 ‘신탁연금그룹’으로 격상시켰다. 다만 지난해 3월 퇴직연금 관련 부서가 부문제로 분리되면서 현재는 ‘신탁그룹’으로 변모했다. 올해 신탁본부는 당장 양적인 성장보다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내실을 키우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실물자산(주식·채권 등) 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와 함께 WM그룹 내 금융 상품 전략을 총괄하는 IPS(Investment Product & Service)본부를 따로 떼어내 IPS그룹으로 격상시켰다. 당초 IPS본부와 신탁본부를 통합한 GPS(Global Product Solution)그룹 출범이 거론됐지만 조직 개편 결과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IPS본부는 향후 의사결정의 독립성을 갖고 신한금융그룹 차원의 ‘컨트롤 타워’의 기능을 맡게 된다.

우리은행 또한 DLF 사태 이후 ‘자산 관리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이 커지며 WM그룹과 신탁연금그룹의 통합을 검토해 왔다. 두 그룹의 통합을 추진한 데는 무엇보다 그룹 간 경쟁을 방지하자는 취지가 컸다. WM그룹과 신탁연금그룹의 과도한 비이자 수익 경쟁이 DLF의 불완전 판매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영향이다. 하지만 조직 개편 결과 WM그룹은 자산관리그룹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신탁그룹은 신탁연금단으로 조직 규모가 격하됐다. 이에 따라 당장 통합은 미뤄졌지만 신탁그룹의 조직을 다운사이징한데는 향후 두 그룹의 통합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이다. 특히 우리은행은 올해 DLF 후속 조치에 대한 여파로 그간 신탁사업부의 효자 노릇을 했던 ELT 대신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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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