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거짓말과 꼼수가 가득한 것이 ‘현실 경영’…회의·보고·현장방문을 가설 검증의 과정으로
거짓에 둘러싸인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지 않으려면 [박찬희의 경영전략]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학 교과서는 동화책 같은 얘기들로 가득하다. 전략 스태프는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한 조언을 제공하고 경영자는 변화를 내다보고 과감한 결단을 통해 조직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

직원들은 조직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 실력을 키워 가며 서로 격려한다. ‘잘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상적 모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동화 같은 얘기나 외우다가 세상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바보가 된다.

남남끼리 모여 일하는 회사는 천사들의 동호회가 아닌지라 별의별 일이 다 있고 전략의 세계는 더욱 험하고 만만치 않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믿을 사람 없다고 겁에 질려 웅크리고 지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영악한 내시는 도적떼 두목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적나라한 사례를 놓고 생각할 점들을 정리해 보자.

◆ 사례1 -거짓과 꼼수로 가득한 보고와 회의


건설업을 시작한 지 30년째인 A 회장은 최근 활발한 인수·합병(M&A)으로 재계에서 유명해졌다. 본업인 건설업을 넘어 유통·금융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영위하는 사업이 늘어나다 보니 최근 정신이 없다.

복잡해진 사업 구조와 얽힌 이해관계들 때문에 사장들과 중역들의 역할이 훨씬 커졌지만 오랜 시간 일해 온 고참 사장들과 중역들도 어느새 능구렁이가 된 것 같다. 또 새로 인수한 회사 사람들은 속내를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회의와 보고에 시달리다 보니 문득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의 경영자는 1년 365일, 하루 종일 거짓말과 꼼수에 둘러싸여 산다. A 회장은 수십 명의 노회한 사장들과 고위 중역들, 바깥세상의 온갖 험악한 사람들을 상대한다. 이 사람들은 인생 대박을 노리거나 혹은 쪽박을 피하려고 촘촘하게 작전을 짜고 달려든다.

기분 좋을 때나 바쁘고 피곤할 때를 골라 파고들고 마지막 시점까지 숨기다 ‘어쩔 수 없다’고 들이대기도 한다.

사장들의 보고는 알고 보면 ‘회장께 말씀드렸다’는 변명거리를 확보하거나 ‘회장님 어명(御命)’을 내세워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는 짓이다.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고 눈도장을 찍으려는 애절한 처세술도 있다.

‘회장님 결심’을 바란다는 회의는 사실은 도무지 답이 없는 일들을 떠넘기려는 짓이다. 이들과 모여 하는 ‘어전회의(御前會議)’는 사내 정치의 압축판이다. 서로 빤히 눈치가 보이니 사전에 약간의 이견까지 짜 맞추고 이해관계를 맞추거나 부담스러운 내용은 숨긴다.

면담과 회의 대신에 문서로 받아도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다. 복잡한 일들을 몇 장으로 정리하려면 편집이 불가피한데 이 과정에서 서로 눈치 보고 이해관계를 맞추며 내용을 부풀리거나 숨긴다.

그럴듯한 그림에 전문 용어로 포장하면 얼렁뚱땅 넘어가기 딱 좋다. 전문 컨설팅 서비스를 쓰고 비싼 돈을 들여 영상물까지 만들기도 한다.

사업 단위들에 권한을 위임하고 관리 통제 시스템을 갖출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잘 모르는 일을 남에게 맡기면 휘둘리다가 바보가 된다. 면담과 회의는 경영자가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는 장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널리 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과 만나 구체적 내용을 따져 묻고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경영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엉큼한 사내 정치를 깰 수 있다. 그럴 실력이 안 되면 그 사업은 포기해야 한다.

◆ 사례2 -사내 정치에 포획된 2세 경영자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선대 회장이 타계한 지 3년. 새로 취임한 아들 M 사장은 국내외 경쟁 업체들과 소송· 언론전을 마다하지 않는 공세적 경영을 펴고 있다. 회사 안팎에는 오랜만에 긴장감이 감돌고 그의 존재감은 부쩍 높아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만만치 않은 국내외 경쟁 업체들의 반격에 대응하려면 1주일 내내 기획·법무·홍보 담당자의 보고를 받아야 한다. 정부 최고위층에게 설명하고 양해도 구해야 하니 민감한 정보도 수시로 공유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공장이나 연구소, 영업 일선의 사람들에게 M 사장은 구름 위에 사는 왕자님이 되고 그 왕자님을 보필하는 관리 부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M 사장이 관리 부문에 포획된 것이 아니라 회사를 관리 부문 중심의 체제로 바꾸려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른 부문을 더 세심하게 살펴야 ‘모두의 사장님’이 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다.

관리 부문이 회사 권력만 생각하는 사악한 정치 집단이어서가 아니다. 뼛속까지 엔지니어인 M 사장이 공장에만 매여 있어도 안 되고 살아 숨 쉬는 시장과 호흡한다고 1년 내내 영업과 마케팅만 챙겨도 안 된다.

어떤 통치 기구도 중심을 이루는 집단이 있어야 하지만 당장 편하다고 거기에만 기대다 보면 굳어진 기득권 체제에 포획되고 만다.

역사에는 야심만만한 왕족들과 힘센 군벌들에 질려 환관들에게 의지하다가 그들의 꼭두각시가 된 무능한 황제들이 너무나 많다.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관리자라면 자기에게 기대는 순진한 회장님을 깨우쳐 널리 사람들을 찾고 그들 사이에 균형을 잡으라고 조언해야 마땅하다.

세상을 훤히 내다본 선대 회장이 나름의 균형 잡힌 체제를 물려줬다고 해도 이 체제에만 머무르면 바보가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과거의 체제, 과거의 인물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이 때로는 속고 실망하며 혹은 실수하며 새로운 체제와 사람들을 만들어야 실력이 는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회사도 기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며 진화시켜야 한다.

◆ 사례3 -쓸데없이 바빠 큰 그림을 놓치다


K 회장은 작은 부품 공장을 20년 만에 연매출 10조원대의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자동차 전장 부품을 생산해 국내외에 공급하는 KK오토와 차량용 내비게이션 장치와 블랙박스를 상세 설계 후 위탁 생산해 국내외에 공급하는 KK전자를 경영하고 있다.

K 회장은 지금도 공장 구석구석의 안전 점검은 물론 회사의 주요 투자 지출을 직접 챙기고 마케팅과 영업의 구체적인 내용들도 지시하고 확인 점검까지 한다. 최근 청와대·국회·지자체의 행사에도 참석하다 보니 더 바빠졌다.

너무나 바쁜 K 회장은 세상의 흐름을 알아보고 생각할 여유가 없다. 전기자동차 기술 표준의 향방에 따라 KK오토의 전장 부품은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고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역시 자율주행 기술과 정보통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이 요구될지도 모른다.

전 세계로 퍼지는 전염병에 유가 폭락이 겹쳐 금융 시장이 요동 치는 판국에 언제 폭탄을 맞을지 모른다.

K 회장이 자신이 널리 알아보고 구상해 본 큰 그림을 구체적 현실에 비춰 보느라 바쁘다면 이 회사의 미래는 밝다.

미래 기술은 제품과 서비스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출렁이는 세계 경제와 금융은 회사의 자금 흐름과 기업 가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따져볼 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K 회장이 그저 직원들이 더 잘하는 일에 간섭하고 잔소리하느라 바쁘다면 이 회사는 미래가 없다. 눈앞의 작은 일들에 매여 길을 잃는 머슴의 부지런함에 불과하다.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경영자는 없다. 널리 알아보며 생각의 단초를 찾고 이를 사업의 구체적 현실에 비춰 검증하며 답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경영자의 회의와 보고 현장 방문은 이런 가설 검증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지식과 경험이 비판적 사색과 어우러져 발전하는 과학의 세계와 비슷해 짧은 지식과 경험에 안주하면 즉시 정체된다.

마음속에 뚜렷한 화두(話頭)가 없이 마음만 바빠 몸까지 고되면 영악한 사람들에게 휘둘리다 벌거숭이 임금님이 된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무능한 경영자가 최악인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