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석유 수요 늘면서 원유 운반선 발주 확대
-화학, 원가 하락에 ‘방긋’
-항공, 화물 운임 상승에 기름값 부담은 덜어
저유가에 조선·화학·항공주 기지개 켜나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다 국제 유가 하락의 악재가 겹치며 정유 업종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3월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가 틀어지면서 원유 공급 과잉이 불가피해 유가가 올 상반기까지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저유가가 호재로 작용하는 업종도 있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 탱커)을 제조하는 조선 업종이 대표적이다. 항공과 화학업계도 유가 하락 덕에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 유가, 상반기 내내 약세 전망

국제 유가는 OPEC와 러시아의 감산 합의 결렬 이후 부진한 흐름을 이어 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현실화하면서 원유 재고가 더욱 쌓여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항공 여객 수요가 급감하면서 항공유 소진이 둔화된 데다 미국 내 코로나19 환자 증가로 4월 드라이빙 시즌에 따른 휘발유 재고 감소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미국과 유럽 등 다수의 국가가 국경을 걸어 잠그면서 비행기 운항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세계 석유 소비의 약 10%를 차지하는 항공유 수요의 둔화가 불가피하다”며 “국제 유가는 상반기까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를 기준으로 배럴당 20~35달러 수준의 낮은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관련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정유업계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정제 마진 하락과 재고 평가 손실이 확대되면서 정유 업종의 1분기 실적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백영찬 KB증권 애널리스트는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1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8302억원, 5635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국제 유가의 변동성과 조정에 따라 상반기 정유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이 예상되지만 하반기 들어 유가가 안정적 수준을 회복하면서 실적 개선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가 하락으로 초대형 VL 탱커를 제조하는 조선사들은 수혜를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가 내려가면 중동의 원유 수출량이 증가해 해상 물동량이 늘고 이는 탱커선의 발주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특히 최근 글로벌 VL 탱커의 선박량 대비 수주 잔량이 7.2%로, 역사상 최저 수준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하나금융투자는 올해 원유 해상 물동량은 8400만 톤 증가하고 VL 탱커 발주량은 62척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저유가에 조선·화학·항공주 기지개 켜나
VL 탱커 시장의 수혜주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다. VL 탱커는 국내 조선소 수주 잔량의 45%를 차지한다. 두 회사의 세계 시장 탱커 수주 점유율은 60%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은 누적 VL 탱커 인도 실적으로 세계 1위 조선사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낮아진 유가로 석유 물동량이 늘고 있지만 메이저 선주사의 VL 탱커 대량 용선 계약으로 탱커 선박에 대한 부족 현상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유럽과 중동계 메이저 선주사들이 그동안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에만 발주해 온 것을 고려하면 VL 탱커 발주의 수혜는 이들 기업이 거의 대부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예상 밖 호재 맞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여객 수요 급감에 어려움을 겪던 항공업계도 뜻밖의 기회로 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됐다. 국제 유가 하락은 항공 업종엔 수혜다. 항공유 비용이 큰 항공사 사업 구조상 유가가 10% 정도 내려가면 영업이익이 2.5%포인트 정도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로 중국 등을 운항하는 항공편이 감소한 반면 물량이 폭증해 화물 운임이 크게 오른 것도 항공업계에는 호재다.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의 화물 수송은 전년 동기 대비 20.2% 늘어난 21만9000톤을 기록했다. 중국 공장들의 가동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던 국내 기업들이 납기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필요한 원자재를 운송 시간이 짧은 항공 화물을 통해 조달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한준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3월 들어 전월의 두 배 이상으로 급등한 항공 화물 운임은 앞으로도 최소 2개월 이상 지속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대형 항공사들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항공 화물 호황이 실적 방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는 항공업계 실적 회복의 핵심인 여객 수요도 2분기부터 점차 회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항공사들의 운항 노선이 몰려 있는 동아시아 지역은 코로나19 확산세가 뚜렷한 유럽 등과 달리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판단에서다.

강성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사태가 국내 항공사들의 영업 환경에 미치는 충격의 강도는 3월이 정점인 것으로 보인다”며 “동아시아 노선을 중심으로 2분기부터 여객 수요가 천천히 회복되면서 탑승률도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월 26일 기준 대한항공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전년 대비 62.8% 증가한 4191억원이다. 티웨이항공은 흑자 전환되고 아시아나항공과 진에어는 적자 폭을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저유가에 조선·화학·항공주 기지개 켜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업황 악화 우려가 높던 화학 업종도 유가 하락으로 다시 기회를 잡게 됐다. 원재료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익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톤당 511.9달러였던 국제 나프타 가격은 3월 23일 기준 244.9달러로 반 토막 났다. 국제 유가가 하락한 데 따른 영향으로 2003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LG화학·롯데케미칼·대한유화 등의 나프타 분해 공정(NCC) 업체들이 호재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 등 석유화학 기초 원료의 원재료다. 이 원료들로 합성수지·합성섬유·염료 등의 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이지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나프타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제품 가격보다 원재료 가격의 낙폭이 더 커지면서 3월 들어 NCC 업체들의 스프레드(제품가격-생산비용)가 급격히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철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NCC는 유가 하락과 함께 절대 원가(나프타 가격)가 떨어지면 제품의 마진을 개선할 수 있다”며 “코로나19에 따른 제품 수요 감소 측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분기부터 NCC 업체들의 실적이 반등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찬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 유가의 하락은 중·장기적으로 화학 업황에는 긍정적”이라며 “2008년 금융 위기와 2014년 유가 급락 때에도 화학 업종은 원가 하락에 따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이후 제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익 폭을 더욱 키웠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